프라하에 내 발자국을

2018.11.07 13:49

이진숙 조회 수:3

프라하에 내 발자국을

-프라하에서 89일-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이진숙

 

 

 

 인천공항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내려오는데 거세게 비바람이 몰아쳤다. 휴게소에 정차하였으나 내리지도 못하고 차 속에 그냥 앉아 있어야 만 했다. 다시 출발하여 논산쯤 오니 언제 비가 왔었느냐는 듯 말짱했다.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여 캐리어를 끌고 휴게실에서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고 간단한 점심요기를 한 다음 택시를 탔다. 집에 막 도착하여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휴게소에 도착할 때 내렸던 것처럼 하늘이 새카맣게 변하더니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쳤다. ‘휴, 다행이다!’ 아이들에게 카카오 톡으로 무사히 집에 왔음을 알렸다. 단풍놀이를 간 그에게도 내가 도착했노라고 알려 주었다.

 비바람 때문에 옆집 과수원에서 떨어져 날린 감나무 잎과 배나무 잎으로 마당이 온통 포장이 되어 버렸다. 가방을 풀어 빨랫감을 빨래바구니에 내 놓고 정리를 하고 따뜻한 차 한 잔을 손에 들고 거실 의자에 앉았다. 생각하니 지난 여드레가 꿈만 같았다.

 

 지은이가 카카오 톡으로 ‘엄마, 프라하에 같이 가실래요?’하고 물어왔다.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좋아!’하고 답을 보냈다.

 아주 오래 전부터 꼭 가보고 싶은 도시 중 한 곳이다. 틈만 나면 ‘프라하’를 입에 달고 살다시피 했었다. 그렇게 그곳에 가고 싶어하는 것을 안 남편이 흔쾌히 내가 경비를 줄 터이니 모처럼 딸과 오붓하게 여행을 하라며 나에게 통장을 내밀었다.

 딸이 회사에서 23일 프라하 출장을 가는데 주말을 포함해서 여행을 할 수 있게 휴가를 냈다며 출장기간에 혼자 도시를 구경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물론 나의 대답은 주저 없이 ‘그럼, 얼마든지!’였다. 그 사이 에딘버러에 살고 있는 오빠 내외와 연락하여 프라하에 올 수 있느냐는 의견을 내고, 그들도 휴가를 얻어서 프라하에 34일 정도는 올 수 있다는 연락이 왔다. 이게 무슨 횡재인가? 동유럽의 도시 프라하에서 아들 내외를 만나 여행을 하게 되다니, 마치 철없는 아이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구 흥분이 되었다.

 받아 놓은 날은 쏜살같이 내 앞에 다가왔다. 미리 챙겨 놓은 가방을 들고 차에 올랐다. 터미널에 오는 내내 혼자 남게될 남편에게 그 동안 준비해 놓았던 먹을 것들에 대해서, 또 평소에 다니는 수영장에도 빠짐없이 나가라. 모임에 나가서 술은 적당히 마시고 오라 등, 터미널에 도착해서도 당부의 말은 끝이 없었다.

 공항버스가 드디어 인천공항 2터미널에 도착했고, 시간에 맞춰 딸도 나왔다. 여유있게 나와 수화물을 부치고 해외 출장이 잦은 딸 덕분에 대한항공 라운지에 들어가 간단한 요기를 하고 맛있는 커피까지 마신 뒤 시간에 맞춰 비행기에 올랐다.

 무려 11시간 20여 분 만에 프라하 바츨라프 하벨 공항에 도착했다. 언제부터인가 ‘프라하’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갖게 되었다.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나 민주화운동에 대한 기억이 지금도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 그때가 감성적으로 가장 예민한 시기인 나의 고등학생시절이었다. 한창 주체의식이니, 주인정신 등을 읊어대던 나름 의식 있는 학생으로 자부하던 시기였다. 지금은 사라진 소련군의 무차별적 군사개입사건을 포함한 체코사건은 한참 가슴이 뜨겁던 시절에 있었던 ‘프라하의 봄’이 나의 머릿속에 뚜렷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또한 아주 오래 전인 2005년에 모 방송국에서 방송했던 인기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이란 드라마에 푹 빠져 있었다. 그래서 내 기억에 슬프고 불행한 ‘프라하 연인의 이야기로 가슴 설레게 했던 드라마로서의 ‘프라하’가 있었다. 그러한 연유로 막연한 환상에 젖어 있었다.

 

 지금이야 소련에서 모두 분리되어 동유럽의 여러 나라 중 하나가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었던 곳이었기에 더욱 프라하에 대한 환상이 생겼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한 환상의 땅 ‘프라하’에 딸과 함께 내 발자국을 남기게 되다니….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구시가지에 있는 숙소로 가는 내내 서로 말은 없었지만 차창을 스치는 시가지 풍경 속으로 이미 몸과 마음을 맡겨 버렸다. 숙소에 가방을 내팽개치다시피 하고 곧바로 가파른 언덕길을 숨차게 올라 간 곳이 ‘프라하 성’이었다. 이제부터 오로지 발에 의지하여 눈과 가슴으로 동경했던 프라하를 담아 가며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프라하 성’으로 들어갔다. 성 광장은 무료 입장으로 24시간 개방이다. 그러나 성 안에 잇는 여러 건물들은 유료입장이고 이미 관람 시간이 지났다. 프라하 시에서 높은 곳에 위치한 ‘프라하 성’을 둘러보고 멋진 해넘이까지 보며 아직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딸의 손을 잡고 내려왔다.

 시내를 관통하는 ‘몰타바 강’위의 여러 다리 중 가장 으뜸인 ‘까를교’의 수많은 관광객들 사이를 뚫고 저녁을 먹으러 유연히 들른 곳은 재즈연주를 하는 레스토랑이었다. 체코속담에 ‘맥주 값을 올리는 것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 일이다.’라는 믿거나 말거나 하는 속담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먼저 맥주를 한 잔 시켰다. 그것도 처음 본 ‘그린맥주’, 맥주의 빛깔이 연한 초록색이었다. 맥주와 함께 ‘굴라쉬’라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프라하의 대표 음식을 시켜 먹으며 재즈 음악과 더불어 프라하의 첫날밤을 보냈다. 생각해 보니 우리 아이들에게도 ‘프라하’는 특별한 곳이다. 딸 지은이는 지금 아이 셋을 낳고 잘 살고 있는 핀란드인 남편 떼로를 이곳 프라하에서 20여 년 전에 만났었다. 그리고 아들 기룡이는 신혼여행을 이곳 ‘프라하’로 13년 전에 왔었다. 모두 ‘프라하’에 대한 여행을 기대하며 시간을 보내리라 기대한다.

                                                     (2018.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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