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에서 봄을 만나다

2018.11.09 06:12

이진숙 조회 수:5

프라하에서 봄을 만나다

-프라하에서 89일-

 

 신아문예대학수필창작 수요반 이진숙

 

 

 

 

 기온이 많이 내려간 듯 제법 쌀쌀하다. 벌써 털외투에 부츠까지 신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하면 반팔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까를 교’를 활보하는 용감한 청년도 보였다. 여행 전부터 이곳의 날씨는 서울보다 기온이 조금 낮다고 하여 단단히 준비한 덕에 날씨의 변화에도 걱정없이 돌아 다닐 수 있었다.

 조금 이른 시간에 숙소 근처에 있는 ‘존 레논의 벽’에 갔다. 우리가 한창 청춘을 즐기던 시절에 지금의 ‘방탄소년단’처럼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을 열광시키던 영국의 그룹인 ‘비틀즈’가 있었다. 그땐 팝송 가사를 모조리 외우며 흥얼대곤 했었는데, 그 중심엔 언제나 ‘비틀즈’가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그들 이름을 모조리 기억하고 있다. 존 레논, 폴 매가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 이렇게 이름을 부르고 보니 당시 우리의 영웅이던 그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중 ‘존 레논’은 어느 광팬의 권총을 맞아 죽었는데, 그가 이곳 프라하에서 살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가 죽고 난 뒤 그를 그리워 하는 많은 팬들이 그가 있었던 곳의 벽에 낙서를 시작했고, 그 낙서는 하루도 같은 날이 없이 매일 팬들의 새로운 낙서로 가득 채워지는 벽이 되었다. ‘비틀즈’의 팬으로 당연히 둘러보아야 할 장소였다. 나보다 더 부지런한 사람들이 벌써 사진 속에 그 벽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신혼여행을 온 듯한 젊은 남녀가 너무 사랑스러운 포즈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참 아름다운 모습이다. 나도 그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슬며시 바라보곤 했다. 잠시 사춘기 소녀 시절의 감상에 빠지며 그들의 대표곡인 ‘yesterday’를 흥얼거렸다.

구 시가지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상점 곳곳에 ‘굴뚝 빵’의 모형이 결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생긴 모양이 굴뚝 같이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빵 속이 터널처럼 뚫려 그 속에 과일이나 아이스크림, 또는 생크림을 넣어 먹는 간식거리이다. 우리도 다른 사람들처럼 빵에다가 나는 생크림을, 딸은 아이스크림을 넣어 먹으면서 돌아 다녔다. 제법 요기도 되고 맛도 괜찮았다.

 

 여행 중 유일한 교통수단인 두 발로 걷고 또 걸어서 간 곳은 우리나라의 ‘광화문 광장’ 같은 ‘성 바츨라프 광장’이었다. ‘성 바츨라프’는 우리나라의 ‘세종대왕’처럼 지와 덕을 겸비한 10세기 왕이었다고 한다. 그분의 동상 아래는 지금도 간간히 꽃다발이 놓여 있는 것을 보고 그곳 사람들이 그분을 얼마나 존경하는 지를 알 수 있었다.

 ‘광화문 광장’하면 우리는 ‘촛불 혁명’을 생각하게 된다. 이곳 ‘성 바츨라프 광장’은 ‘프라하의 봄’을 생각나게 하는 곳이다. 1968년 체코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으로 불법 침략한 소련군의 군사 개입사건으로 수십만의 당원이 제명 또는 숙청되었던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 곳이 바로 ‘성 바츨라프 광장’이다.

 지금 이곳은 길 양편에 현대식 건물들이 들어서 있고 광장 주변에는 언제나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다. 그 광장에 있는 ‘성 바츨라프’ 동상 아래 오랜 시간 앉아서 오가는 사람들의 활기 찬 모습과 우리와 같은 여행자들의 한가한 발걸음에 눈을 맞추며 모처럼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앉아서 햇볕을 즐겼다.

 

 그 곳을 벗어나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걸어 다니다 보니 다시 구 시가지와 신 시가지가 나뉘는 시점 옆으로 ‘화약 탑’으로 불리는 높이 65m의 어둡고 칙칙한 건물이 있는 곳으로 오게 되었다. 프라하 구 시가지의 대부분의 건물들은 화려하고 다양한 색상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과는 극명하게 대조되는 건물이었다. 화약탑과 나란히 있는 길은 신 시가지, 탑을 지나면 구 시가지가 각각 시작되는 곳이다. 우리나라의 ‘경복궁’이 서울 한 복판 높은 빌딩 사이에 있는 것과는 아주 다르다.

 마침 식사 시간이 되어 ‘꼴레뇨’를 잘 한다는 곳으로 가 음식을 시켜 먹고 남은 음식을 포장해서 가지고 나왔다. 영수증을 보니 포장용 봉투 값이 따로 청구되어 있어 놀랐다. 물론 우리 돈으로 70원 정도의 아주 싼 값이지만, 어찌 보면 합리적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야박하다고 해야 할까? 음식 값을 계산할 때 으레 팁을 요구하는 것을 보면 그 정도쯤은 서비스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시간이 조금 남아 근처 ‘하벨시장’을 구경하기로 했다. 여전히 쌀쌀한 날씨에 바람까지 세차게 불었다. 아기자기한 물품들과 과일도 예쁘게 담아 파는 모습에 눈이 가기도 했지만, 날씨가 추워지니 구경보다는 따뜻한 곳을 찾아 가고 싶었다. 근처를 둘러보니 마침 카페가 보여 들어갔다.

 우리는 커피숍이나 음식점에 들어가면 무조건 빈자리를 찾아 앉으면 되는데, 이곳은 들어가서 서 있으면 직원이 사람 수를 묻고 그 직원이 안내하는 곳에 가서 앉는 것이 보통이다. 마침 우리가 앉고 싶어하는 안락한 자리에 안내 되었다. 딸은 아메리카노 커피를, 나는 에스프레소 커피를 시켰다.

 유럽 여행을 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느꼈겠지만 화장실이 문제였다. 언제나 주머니 속에 동전 몇 개는 넣고 다녀야 된다. 모든 화장실이 돈을 받으니까. 그러다보니 이러한 카페에 들어가면 무조건 화장실에 들려야한다 우리도 앉자마자 번갈아 가며 화장실에 다녀왔고, 나오기 직전에 또 한 번 다녀오고….

 커피가 나왔다. 한 모금 마시니 입과 머리가 행복해지는 느낌이었다. 우연히 들른 곳의 커피 맛에 홀딱 반해 버렸다. 불과 며칠 되지 않는 여행기간 동안에 그곳에 한 번 더 가서 음료도 마시고 *브런치도 시켜먹고 오래 앉아 이야기를 하다가 맛있는 커피도 한 잔 마시고 나왔었다.

 여행 중 먹었던 음식과 술 특히 맥주, 그리고 커피가 이 글을 쓰는 내내 입 속에 침이 고이게 했다.

                                                    (2018. 11. 5.)

 

 

*브런치(brunch)

아침식사시간과 점심식사 시간 사이에 먹는 이른 점심.

또는 아침 식사 때 회담을 하면서 간단히 먹는 식사.

breakfastlunch의합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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