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닭이 나를 깨워

2018.11.16 07:17

윤근택 조회 수:5

새벽닭이 나를 깨워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산속 외딴 농막(農幕)에서 호젓이 사는 나. 나이 탓인지, 밤잠도 없는데다가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편이다. 겨울철 기준으로는 늦어도 새벽 다섯 시 무렵이면 그렇게 일어난다. 사실 내 생체리듬이(?) 나를 잠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만들곤 한다. 바로 뒤가 마려워서다. 얼른 찬물 한 대접을 마시고, 외등(外燈) 스위치를 누르고, 담배를 꼬나물고, ‘복면강도인양 빵모자를 쓰고 밖에 나선다. 그때쯤이면 내 닭장의 닭들과 건너편 최 아무개네 닭장의 닭들이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발성연습을 하듯, ‘꼬끼오!’하곤 한다. 이 일련의 행사들이(?) 산속에 동이 터 옴을 알려주는 첫 신호이기도 하다.

   그러한데 내가 여태껏 태무심(殆無心)했던 몇 가지 사항들이 있으니... . 오늘 새벽에 줄줄 연상의 고리가 엮일 줄이야!

첫째, ‘어느 왕을 위해 10년간 매일 밤마다 똑같은 노래를 4곡씩 불렀던 어느 사내 가수가 떠오른다. 참고적으로, 그 가수에 관한 이야기는 나의 작품 농부 수필가의 음악 이야기(19)’에도 있으니, 신실한 나의 애독자들께서는 아래 링크를 따라가기 바란다.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19)

                            2014.04.21.

  요컨대, 그 사내는 이러한 사람이었다.

 

  < 그는 남자 성악가이면서도 여성의 음역인 소프라노 또는 콘트랄토 성부를 노래한 가수였다. 그러한 가수를 카스트라토(castrato)’ 또는 에비라토(evirato)’라고 부른다. 카스트라토의 특징과 출현 배경은 다음과 같다.

넓은 음역, 유연성, 힘을 지닌 이들의 소리이며 사춘기 전에 거세를 함으로써 얻었다. 카스트라토는 여성들이 교회 성가대나 무대에 서는 것을 금지하였던 16세기에 나타났고,17,18세기 오페라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카스트라토는 비인간적, 불법적인 거세 행위로 나왔지만, 성인 남자의 폐활량과 신체적 중량에서 비롯되는 대단한 힘을 지닌 성인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목소리의 독특한 음질과 대단히 어렵고 화려한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강한 훈련 끝에 태어나게 되었다. 카스트라토 가수는 오페라 청중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렸고, 이탈이아 오페라가 전 유럽에 퍼지는 데 기여했다. 18세기 남성 가수의 상당수가 카스트라토였으며, 가장 유명한 이탈리아 카스트라토는 그였다. (이 단락은 인터넷 브리태니카에서 죄다 따옴.)

그의 본명은 카를로 브로스키(Caro Broschi)이며, 그는 1705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태어나 1782년 향년 77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그가 바로 카스트라토의 전설, ‘파리넬리(Farinelli)’. 그의 일대기는 영화로도 나왔다. (이상은 본인의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19)’의 일부임.)>

 

  내가 이 이른 새벽에, 첫닭울음소리를 듣다가 카를로 브로스키를 떠올린 이유는, 분명 따로 있다. 내 닭장의 수탉들도 사실 여러 배. 봄철부터 시행착오 끝에 여러 차례 자동부화기로 순차적으로 부화시켜 왔던 녀석들. 해서, 어른수탉·청년 수탉·소년수탉·아가수탉 등이 두루 섞여 있다. 자연 그것들 목소리도 제각각이다. 특히, 내가 주목하는 목소리는 소년수탉의 그것이다. 위에서 소개한 카를로 브로스키의 목소리를 연상케 하는... . 이를테면, ‘소년수탉의 울음소리는 우리네 변성기마저 떠올리게 한다. 옛날 옛적에 내 고향집에서, 초여름에, 이제 볏이 제법 자란 햇닭들이 꼬끼오!’하던 걸 다시 떠올린다. 그때쯤이면 화단에 닭벼슬꽃(닭볏꽃; ‘맨드라미를 우리는 그렇게 불렀다.)’도 피어났다. 또한, 붉은 접시꽃도 피어났다. 변성기였던 우리 형제들은 그 접시꽃 꽃이파리를 따서 코에다 붙이고, 그 소년수탉들 울음소리를 곧잘 흉내내곤 했다. 너무도 상쾌했던 초여름 아침. 참말로, 소년수탉들의 울음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청아하기만 하다.

   둘째, 닭이 울어 아침이 오는 것인지, 아침이 오기에 닭이 우는지에 관한 생각이다. 물론 후자(後者). 수탉들이 주로 우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녀석들이 자기 영역을 표시하기 위함이란다. 아울러, 높은 횃대 따위에 놀라서 그렇게 소리를 지른다는 것 아닌가. 닭을 비롯하여 참새, 까마귀 따위의 조류(鳥類)들도 그러하단다. 이를테면, “얘들아, 동이 터. 얼른 일어나서 아침밥을 먹고 우리 함께 오늘도 재밌게 놀자꾸나.”하는 아침인사.

   사실 조류는 빛에 민감하단다. 그들 뇌 속 송과체는 피부로 들어오는 빛을 직접 감지하게 된다고 한다. 해서, 우리네 늦잠꾸러기들과 달리, 여명(黎明)을 온몸으로 감지하게 되어, 이웃들한테 아침이 되었음을, 또 장닭답게 자기 살아있음을 표시하는 셈이다. 만약에 빛을 차단하면, 닭들은 울지도 않을뿐더러 알도 제대로 낳지 않는단다. 그래서인지, 양계장에는 상시(常時) 전등을 밝히고 있었다. 닭은 동이 틀 무렵 울지만, 그 회수나 주기는 정해진 바가 없다는 거 아닌가. 그야말로 닭의 마음이다.

   끝으로, 천주교인인 나는 첫닭울음을 들을 적마다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그의 본명은 시몬, 그의 나중 이름은 베드로[Pietro; Petrus; ‘Petra(암석 혹은 반석)’에서 따온 이름임.]직업은 무지렁이 고기잡이꾼. 그는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자기 동생 안드레아와 함께 아니, 아예 세트, 나이 든 아버지와 고기잡던 그물을 팽개친 채 예수님을 뒤따랐다. 그는 예수님의 12제자 가운데에서 가장 총애받았던 이. 예수님은 마지막 날 그에게 예언하신다.

  루카복음 2261~62절에서는 이렇게 적고 있다.

  <그리고 주님께서 몸을 돌려 베드로를 바라보셨다. 베드로는 주님께서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너는 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다.>

 

  그러했음에도, 예수님 당신께서는 그를 가장 아끼셨다.

마태오복음 1618~19절은 이렇게 적고 있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Petra)’이다. 내가 이 반석(petra)’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자, 이처럼 글을 두서없이 적고 있자니, 동이 텄다. 농막 세 개의 유리창에 드리웠던 커튼도 이제는 활짝 걷어야겠다. 온갖 산새들이 지저귄다. 사실 내 닭장의 수탉들이 합창으로 기상나팔을 불었던 덕분이다. 이제 내 컴퓨터도 저장 후 종료한 다음, 일복으로 갈아입고 밭으로 나서야겠다.

, 상쾌한 산골 아침공기여! , 아름다운 늦가을의 산야(山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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