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거닐다

2018.11.17 05:37

이연 조회 수:9

숲을 거닐다

 

                                                               이 연

 

 

 

  여행은 새롭고 낯선 풍경만을 보는 것이 아니었다. 멀리 떠나와 낯선 사람들의 역사와 삶을 듣고 보고 느끼며 새롭게 눈을 뜨는 것이라 생각한다. 뉴질랜드, 그곳은 어디에 카메라를 들이대도 그림보다 더 아름다운 사진이 찍혀 나오는 곳이었다.

  건강여행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건강을 위해 또는 건강을 잃었을 때 사람들은 숲으로 향한다. 숲과 하늘과 나만이 존재하는 곳에서 자신의 내면에 깊게 몰입하는 시간을 갖는다. 몸과 마음이 상처받아 지치고 힘들 때 숲은 위로와 평화를 주고 누구라도 가리지 않고 언제든지 품어 주는 곳이다. 심리적으로 안정을 되찾게 해주는 숲은 몸속의 유해물질을 중화시켜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한다.

  뉴질랜드 북쪽 섬 오클랜드에서 3시간 거리 로토루아에서 해풍을 맞고 자란 레드우드 숲을 찾았다. 빡빡한 일정과 힘들었던 여행 막바지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아무렇게나 부려놓고 싶어졌을 때 만난 아늑하게 다가오는 여유로움이었다.

  고개를 한참 뒤로 젖혀 100미터 가까이 자란 나무 끝을 올려다보았다. 하늘 높이 반듯하게 자란 우듬지 가지들은 하늘을 덮었고 나뭇잎들은 멀리 남태평양 잉크 빛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땅위로 비집고 나온 굵은 뿌리들이 오랜 연륜을 말하는 듯 서로 단단하게 얽혀 있었다. 그 큰 나무의 뿌리는 불과 몇 십 센티미터에 불과하다고 한다. 나무의 키와 크기에 비해 뿌리가 깊지 않아도 반듯하게 자랄 수 있는 것은 땅밑으로 뿌리끼리 서로 얽히고설키어 힘을 보태고 어깨동무를 하며 땅을 딛고 서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거기에 높이 매달린 나뭇잎이 머금은 바닷바람은 물을 머금고 올라오는 긴 가지에 힘을 더한다.  

  하늘과 땅을 아우르는 대자연을 웅장하다는 말 한마디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세 사람이 팔을 벌려도 품에 안기려하지 않는 거대한 체구의 나무들이 끝도 없이 줄을 잇고 서 있었다.

  푹신하게 낙엽이 쌓인 숲을 걸으며 그윽하게 퍼지는 숲의 향기에 자취 없이 스며들고 싶어졌다.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는 나무의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핸드폰 카메라 파노라마를 위아래로 움직여야 했다. 세월의 더께가 앉은 이끼 낀 나무에 기대어 섰다. 무한대로 펼쳐진 높고 넓은 숲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지는 듯했다. 문득, 내가 껴안고 있는 하잘 것 없는 삶의 찌꺼기도 욕망도 털어내고 싶었다. 하늘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나무를 닮을 수만 있다면….

  태곳적부터 그 자리에 서 있었을 나무들이 다정한 친구처럼 다가온다. 언젠가 등산길에서 ‘이번 생은 네가 나무고 꽃이었으니 다음 생은 내가 너였으면’ 이라 붙여 놓은 나무로 된 조그만 팻말을 보았다. 눈을 떼지 못하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기억이 난다. 숲을 거닐며 다시 머리를 어지럽히는 생각들…. 이번 생이 끝나고 다음 생이 가는 곳이 있다면 아늑하게 팔을 벌려 안아주는 숲이라면 좋겠다.

 

  나무가 되어 해마다 봄을 기다릴 것이다. 여름에는 더 무성해질 숲을 꿈꾸며 밤잠을 설치고, 가을에는 오만 집착을 모두 벗어버리고 싶다. 겨울에는 가던 길 잠시 멈추어 명상에 잠길 수 있는 나무의 삶이라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먼 나라 독일 하이델베르그에는 ‘철학자의 길’이 있다고 한다. 괴테도 야스퍼스도 베버도 그 숲속 오솔길을 걸으며 생각을 추스르고 명상에 잠기며 수없는 깨달음의 순간들을 만났을 것이다. 시작과 끝이 있는 숲길을 걷는다는 것은 사색의 실마리 저 아득한 원류를 찾아가는 것일 터.  

  하늘을 머리에 이고 푸르게 서있는 나무의 삶이 우리네 삶과 다르지 않음을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돌아보면 지나온 날도 내가 가고 싶은 곳이나 머물고 싶은 곳에 서 있지 못하고 흔들리며 살아온 삶이었다. 거센 비바람을 맨몸으로 맞아가며 바람처럼 살고자 했던 지난날들이 나무의 삶과 다르지 않았다. 내가 살아온 만큼의 무게로 나무가 되어 다시 태어난다 해도 무겁다 말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몇 번인지 모를 태풍과 눈보라와 뜨거운 여름날이 힘들지라도 초록색을 더해가며 반듯한 나무처럼 서 있을 것이다.

  생각에 잠겨 걷다가 언뜻 그대로 숲속으로 빨려 들어가 헤어 나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숲에 갇혀 길을 잃고 말 것만 같았다.

  돌아서 나오는 길에 기이한 나무를 만났다. 이미 오래전에 쓰러져 길게 누워버린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썩어가는 나무를 발판삼아 일곱 그루의 나무가 나란히 자라고 있었다. 죽지 않고 살아있음을 생각게 한다. 죽어서도 밀알이 되어 살아있는 나무에 잠시 앉아 보았다. 한동안 걸어 아픈 다리를 쉬어갈 수 있게 편안함을 선사했다.

  여유롭고 분주하지 않아서 마음도 걸음도 느려지는 곳에서 시간도 늘어지는 듯했다. 다른 사람보다 앞서 가려고 애쓰지 않아도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초록색 지평선이 나그네의 발길을 붙잡고 때 묻지 않은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곳이었다. 사람이 자연을 가꿀 때 풍요로움으로 보답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나라였다. 보여 줄 것이 자연밖에 없다며 200년 역사의 젊은 땅에 사는 그곳 사람들은 지구가 더 힘들어하거든 와서 함께 살자는 말을 스스럼없이 건네는 소박한 사람들이었다. 수채화처럼 아름다운 자연을 가슴에 담고 숲이 주는 감동에 가슴이 먹먹하던 그곳에서 만났던 순간들을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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