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노래자랑과 어머니

2018.11.21 16:13

김윤배 조회 수:2

전국노래자랑과 어머니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김윤배

 

 

 

  나는 지난 일요일 ‘전국노래자랑’이란 TV 프로그램을 보았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국민 MC ‘송해’의 구수한 목소리와 입담으로 진행하는 서민들의 노래자랑 프로그램으로서, 우리나라 국민이면 모두 다 알고 있는 최고의 장수 프로그램이다. 가수의 꿈을 꾸던지 그냥 즐기던지 크게 관심 없이 출연자들은 저마다 즐겁게 노래하고 각 지역의 특산물과 관광지를 소개 하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이번에는 우리 고장 임실군 편이 방송되었다. 난 한참 TV를 보다가 어머니 생각이 떠올랐다. 출연자 중에 나이 드신 한 분이 생김새도 그러하거니와 말투나 행동이 어머니와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25년 전쯤에 나의 어머니는 전국노래자랑 군산시 편에서 ‘송해’와 이야기를 나누셨는데 그 자리에 지금은 다른 분이 서 계신다.

 우리는 가끔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을 하곤 하지만 또 한참동안은 잊고 살아가기도 한다. 그 당시의 부모님을 떠올리면 어렵고 힘든 시절이었기에 모두 다 애잔한 마음으로 그리워 하지만, 난 항상 낙천적이고 웃음을 잃지 않으며 막내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주셨던 어머니를 그리워하면서도 같이했던 행복한 시간들을 떠올려 보기도 한다.

 

 어머니는 75세에 타계하셨다. 살아 계셨다면 ‘송해’보다 세살 많은 95세시다. 나의 어머니는 활달한 성격으로 6남매를 기르고 막내인 나와 평생을 같이 사셨다. 어머니는 여러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시는 분이었다. 코믹하면서도 위트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따랐다. 그래서 우리 집엔 항상 손님들이 찾아왔고 어머니는 사람들과 대화하며 함께 노는 시간을 즐겨하셨다. 또한 모임도 많이 했으며 어떤 모임에서든 어머니가 참석 못하게 되면 모임을 연기했다고 할 정도로 주변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아마 요즘 시대처럼 연예계로 진출했으면 틀림없이 코미디언으로 대성하셨으리라.

  어느날 어머니가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해야겠다고 하셨다. 평소 꼭 한 번 나가고 싶다고 말씀하셨지만 정말로 나가신다니 교직에 몸담고 있던 나도 약간은 당황되었다. 어머니가 전국노래자자랑 나간다는 말을 듣고 형님과 누님들은 창피하다며 극구 반대했다.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되면서도 난 낙담하고 계신 어머니를 위로하며 적극 후원해 주기로 생각을 바꾸었다. 난 예선전에 접수를 해놓고 가족들에게는 비밀로 하면서 어머니를 모시고 연습을 하기 위하여 일주일 내내 노래방에 모시고 걌었다. 선곡은 당시 유명했던 ‘들고양이’라는 젊은 가수가 부른 경쾌하고 빠른 박자의 ‘마음약해서’라는 노래였다. 런데 어머니는 그 노래를 처음 반 박자를 쉬고 노래해야 하는 못갖춘마디 노래인데도 첫 반 박자를 놓치니 끝까지 반 박자씩 맞지 않았다. 수십 번 나의 반복 지도를 받아가며 열심히 연습하셨고 결국 예선전 통과되었다. 가족들은 전혀 모른 채 본선을 위하여 계속하여 노래방에서 함께 연습을 했다.

 

 드디어 본선 날, 나도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큰 사건이 발생했다. 어머니는 이모를 비롯한 수많은 친구들과 함께 행사장으로 먼저 가셨고 난 광고사에 가서 ‘삼학동 할머니 파이팅! 인기상 수상!’ 이라는 플래카드를 찾으러 갔다.

 녹화 시작 전에 리허설을 할 무렵 이모들과 어머니 친구들에게 앞에서 플래카드가 잘 보이도록 잡으라고 부탁하고 나는 따로 떨어져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드디어 녹화가 시작되었고 조금 뒤 어머니가 출연하셨다. ‘송해’와 마치 오랜 친구였던 것처럼 여러 가지 살아가는 이야기와 도롯도· 차차차· 탱고· 부루스 등의 춤을 번갈아 추시면서 60대 후반의 MC ‘송해’를 리드해가며 무대 전체를 장악했고 마치 다음 출연자가 없는 것처럼 계속 이어지는 재미있는 성대묘사와 즉흥 만담에 이르기까지 20여 분 이상 녹화되었다. 나중엔 너무도 웃기고 재미있게 하시니 ‘송해’가 너무 웃어 눈물 콧물까지 흘렸고 자기대신 아주 사회를 보라고 마이크까지 건네주었다. 노래도 처음 반 박자 쉬고 적시에 들어가서 틀리지 않고 코믹한 춤까지 곁들어가며 끝까지 잘 마쳤다. 그동안의 방송 출연에 대한 염원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내려오셨고, 관객들도 오랫동안 배꼽이 빠질 정도로 웃었다. 그 뒤 군산에서 어머니는 유명 인사가 되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플래카드를 챙기러 갔던 나를 보지도 않고 인기상을 수상하고 내려오자마자 이모와 택시로 나의 아내가 근무하던 병원으로 향했다. 이모와 친구들은 자리에 없었고 플래카드는 한쪽 구석에 나뒹굴어 있었다. 난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맨 먼저 같이 후원해준 아내에게 어머니가 마침내 인기상을 수상했다고 연락을 했다. 아내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빨리 와요. 어머니 팔이 골절되었는데 수술해야 한대요.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가? 조금 전까지 송해와 춤까지 잘 추었는데! 난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고 어머니는 나를 보고 웃으며

“난 괜찮다. 소원을 풀었으니 이제 여한이 없다.”

라고 하시는데 엄청 아프신 것 같았다. 옆에 있던 이모가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사실은 출연하러 가는 도중에 주차장 표지판에 걸려 넘어져 뒹굴면서 오른팔이 부러지셨던 것이다. 이모와 친구들이 바로 병원으로 가자고 하셨는데도 어머니는 완강히 거절하며 막둥이 알면 출연 못하게 하니깐 알리지 말라고 신신 당부하시며 꼭 출연해야 한다고 하셨단다. 팔이 부러진 상태로 그 아픔을 참고 오랜 시간 차례를 기다리다가 송해와 그렇게 웃고 노래하며 성대묘사와 만담에 춤까지 추었다니, 그 정신력이 도대체 어디서 나왔단 말인가? 그러면서도 어머니는 병원에 들어서며

 “에미야, 나 인기상 먹었다.”

 하시면서 가슴에 메달을 걸고 자랑스럽게 등장하셨고, 담당 의사는 그 얘기를 듣고 엄청 아팠을 텐데 어떻게 참았을까 하면서 어이가 없어 했단다. 그날 저녁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께 크게 혼쭐이 났고 형제들한테도 욕을 엄청 많이 먹었다.

 

  그러다 일주일 뒤, 온가족이 모여 TV를 보았는데 형제들도 박장대소하며 시청하였고, 가족에게 엄격하셨던 아버지도 궁금하셨던지 딴일 하는 척 왔다갔다 하시면서도 살짝 살짝 웃음을 지으며 끝까지 보시고 나서 마당으로 나가셨다. 그제야 형제들은 마음이 다 풀어졌는지 오히려 나보고 효도했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어머니는 방송 출연 전에도 그 후에도 가끔씩 전국노래자랑을 보았지만 편집되었는데도 한 사람이 노래 외에 5분 이상 길게 방송이 송출되거나 재미있었던 적이 별로 없었다. 아마도 그 당시 PD도 너무 재미있고 시청률이 오를 것 같아 그리 오랜 시간 방송하기로 결정했던 것 같고, 전국노래자랑 사상 어머니가 최대분량의 시간으로 출연한 셈이 되었다. 아마도 ‘송해’는 틀림없이 어머니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때 무대에서 함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다가 90세 즈음에 출연해서 다시  만나기로 손가락을 끼고 약속까지 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 ‘송해’ 옆엔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다.

 난 녹화방송 CD를 형제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지금도 우리 형제들이 모이는 날이면 어머니의 손자들과 함께 늘 같이 보곤 한다. 그리고 나는 이런 어머니를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내 아이들에게도 매사에 긍정적인 생각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과 더불어 봉사하고 배려하며 지혜롭게 살아가도록 가르친다.

 

 나의 어머니는 그렇게 낙천적이고 끼와 재능이 넘치는 분이셨지만 오랜 당뇨병 합병증 때문에 그리 오래 살지는 못하셨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도 중환자실에서 혈압이 어느 정도 돌아오면서 정신이 들고 기분이 좋아지시니 노래를 부르셨던 분이다. 간호사와 의사가 얼마나 당황했겠는가?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한 분위기속에서 사경을 헤매는 수많은 중환자들 앞에서도 소리 내어 노래를 부르셨던 분은 나의 어머니뿐이었으리라!

 그리고 나선 쫒겨 나다시피 일반 병실로 옮기신 뒤 다시 회복하지 못하시고 일주일 만에 돌아가셨다. 이미 생로병사의 이치를 터득하고 끝까지 죽음에 대한 두려움 없이 이 세상을 웃으며 아름답게 바라보고 행복하게 노래하며 놀다 가신 나의 어머니! 나는 어머니 가시는 길에 반짝 반짝 빛나는 전국노래자랑 인기상 메달을 가슴에 걸어드렸다. 아마 하늘에서도 메달을 걸고 망자들과 함께 노래하며 행복하게 지내실 것이다. 하늘나라에도 노래자랑이 있을까?

 

‘아, 그리운 나의 어머니!’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하신 어머니의 그 장면을 다시 보고 싶다.

                                                  (2018.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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