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빵모자를 쓰다

2018.11.23 04:53

윤근택 조회 수:4

 농부, 빵모자를 쓰다

                                     윤근택(수필가/문장치료사/수필평론가)

   이 겨울, 땔감을 장만하러 지게를 지고 산으로 오르거나, 군불을 지피러 아궁이 앞으로 나서거나, 저 아랫녘 구판장에 막걸리를 사러 내려가거나 할 적엔 거의 완전무장(?)을 하는 편이다. 두툼한 점퍼를 입고, 솜바지를 입고,농부용 가죽장갑을 덧끼는 등. 그리고 마지막에 빠뜨리지 않고 착용하는 게 있다. 바로 빵모자다. 그러면 얼음구덩이에 들어가도 살아남을 것만 같다.
   빵모자, 농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부터 겨울이면 애용하는 필수월동장비다. 나한테는 세 개가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두 눈만 빠끔 나오는, 복면강도용(?) 빵모자다. 마스크 기능까지 겸하는 것이다. 이 빵모자들이 그렇게 유용할 수 없다.  볼과 귀와 머리밑을 이내 덥혀주어 웬만한 추위도 견딜 수 있다.  나아가서, 매일마다 감기도 싫은, 반백(半白)의 머리를 감쪽같이 감춰주기도 한다. 사실 이 빵모자를 쓰고서 농협이며 면사무소며 슈퍼마켓이며 여러 곳에 나다니기도 한다. 하여간, 편리하고도 따사롭게 해주는 모자임에는 틀림없다.
   일전, 넷째누님 내외분이 이 농막에 방문한 적 있다. 그때도 나는 빵모자를 쓴 모습으로, 그 손위 동기(同氣)를 맞았다. 누님은 그러한 나의 모습을 보는 순간, 선친(先親)의 살아생전 모습 그대로라며 무척 안타까워 했다. 이 무슨 이야기냐고? 겨울이면 당신은 지금의 나처럼 빵모자를 쓰고, 산에서 나무를 해오거나 아궁이 앞에서 쇠죽을 쑤거나 못다 한 콩타작을 하거나 하였다. 세상을 떠나던, 당신 누린 나이 84세까지 그렇게 농부로만 지냈다. 말년에 이르러서도 잠시도 쉰 적 없다. 자녀인 우리들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세월이 꽤나 흐른 지금에 이르러서도 그 모습이 나의 모습에 오버랩되어 누님을 더욱 안타깝게 한 모양이다.
   “이 사람아, 이 꼴이 뭔가? 그 좋던 직장을 좀 더 오래 버티지 않고서… .”
   어차피 내가 결정한 일이고,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대수랴.
   오늘,누님이 그렇게 던지고 간 말로 인하여 내 아버지를 다시 떠올리게 될 줄이야! 아버지, 당신은 빵모자를 즐겨 썼으되, 나와 사뭇 달랐다. 당신은 늘 까까머리였다. 내 기억으로는 이발소에 간 적도 없다. 언제고 큰형님한테 일러, 머리깎기로 당신의 머리를 박박 깎도록 하였다. 농부인 당신이 늘 흙먼지를 뒤집어 쓰게 됨을 알았고, 씻기도 쉬운 그 방식을 택했던 것이다. 번거로움을 아예 근원적으로 없앴던 것이다. 그리고는 허전하고 차가운 머리를 빵모자로 그렇게 가리곤 했던 것이다. 그뿐도 아니다. 언제 한번 옷매무새 단정하게 지낸 적도 없다. 작업복에다 깜장고무신에다 ‘목닳이 양말’에다… . 나도 이제금 당신처럼 빵모자를 즐겨 쓰기는 하지만,당신에 비하면 아직은 신사다. 제법 짧게 깎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이발소에 가곤 한다. 나도 당신처럼 아침저녁으로 농사를 하기는 하지만, 당신처럼 업보(業報)인 양 여기지는 않는다. 내 딴에는 쉬엄쉬엄 하는 편이다.  그런데 그런데… . 요 며칠째 살아생전 당신처럼 머리를 박박 밀어버릴까 벼르게 된다. 이제 고작해야 일주일에 한번, 주일미사에 참례하러 바깥출입을 할 뿐이기 때문이다. 온전히 농사꾼으로만 살아가고자 하는 나한테 이제 머리카락마저도 거추장스럽다는 말이기도 하다.  정말로 심각하게 고려해봐야겠다. 다만, 본디 못 생긴데다가 두상(頭相)마저 못 생겨서 남들한테 어쩌다가 혐오감을 주지 않을까 적이 걱정되기는 한다. 대승(大僧), 동자승(童子僧), 비구니 등의 삭발 모습은 하나같이 고결해 보이더라만… .
   이 즈음에서, 빵모자와 관련이 깊은 ‘삭발’에 관해서도 좀 더 이야기 아니 할 수가 없다.  이미 위에서 선을 보였지만, 삭발은 종교의식으로 이루어지는 예가 많다. 종교활동의 새로운 단계에 들어서는 걸 상징한다지 않던가.  아마 번민을 끊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즉, 과거와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자꾸자꾸 외형에 신경을 쓰게 되는 걸 미리 없애, 본질 내지는 진리에 다가가려는… .  그런가 하면, 요즘은 다른 의미로 삭발을 감행하는 일도 있다. 자신의 주장이나 신념을 관철시키기 위해 삭발식을 하고 단식까지 하는 경우다.  일제강점기 상투를 자르라고 내려졌던 단발령. 조선인들은 이에 죽음을 불사하고 항거했다고 한다. 당시 뿌리깊은 유교문화,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 .’에 근거했음은 두루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요즘은 항의의 표시가 그 반대인 삭발로 행해지니, 이 또한 격세지감(隔世之感)일 것이다. 삭발과는 다소 다르지만, 여성이 머리 모양을 확 바꾸는 경우는 변심(變心)했다는 의미라고 하였다. 어쨌거나, 삭발은 자신의 의지표현이다.  다소 거창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으나,삭발은 ‘코페르니쿠스적인 대전환’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거니와, 나도 곧 머리를 박박 깎을는지 모르겠다. 그리고는 내 아버지처럼 빵모자를 늘 쓰게 될는지도 모른다. 이에 관해 아내와 두 딸아이에게 넌지시 말해 본 적 있다.  그랬더니, 한사코 반대했다. 누가 하지 말라고 말리면 더 하고 싶은 게 인간의 본성.  학창시절, 교칙에 따라 스포츠머리를 해야 함에도 몇 센티 더 길러보겠다던 친구들.  그들은 생활지도교사한테서 소위 ‘바리깡 고속도로 개통식’을 당하곤 했다.  머리 중간에 외줄이 나도록 머리깎이로 관통(?)되는 걸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도 반항아는 그런 모습으로 교모(校帽)를 쓰고 다니기도 하였다.  그깟 머리모양이 무엇이길래, 그깟 머리길이가 무엇이길래, 양측 다 집착했던 것일까?
  내 이야기는 다시 빵모자로 돌아간다.  내가 장차 삭발을 하든, 아니면 이대로 비교적 짧게 머리를 깎는 걸 지속하든 그게 본질은 아니다.  세 개의 빵모자는 농부인 나의 겨우살이를 도와줄 것만은 확실하다.  실로, 이 세 개의 빵모자면 족하다. 그렇더라도 내 고운 이가 이 소식을 접하고서 빵모자 하나쯤 선물로 부쳐온대도 굳이 사양치는 않을 것이다.

* 이 글은 인터넷(한국디지털도서관>윤근택>작품/논문>미발표작)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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