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초청장

2018.12.04 13:20

이우철 조회 수:4

어떤 초청장

-고향교회의 'home coming day'에 참석하고-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이우철

 

 

 

 고향교회에서 'home coming day' 라는 초청장이 왔다. 지난날 교회를 다니다 떠난 믿음의 가족들을 초청하여 친교를 나누는 행사다. ‘옷은 새옷이 좋고 사람은 옛사람이 좋다’ 고 하는데 오랫동안 헤어져 살았던 옛 성도들을 만나리라 생각하니 마음이 설레고 애틋한 그리움이 앞섰다.

 

 내가 살던 순창은 경관이 뛰어난 강천산이 있고, 고추장으로 이름난 고장이다. 해마다 10월이면 장류축제를 벌이며 식도락가들의 구미를 자극하기도 한다. 금년 행사에는 나도 참여하여 허물없는 고향친구들을 불러 파전, 부추전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머니의 손맛은 장맛으로 대표되듯이, 예로부터 ‘그 집 장맛이 좋으면 1년이 편안했다’지 않던가. 순창은 이름그대로 인심이 순박하고 경관이 아름다운 곳이다. 그러기에 고향 처녀들이 시집을 가면 어디서든 인정을 받으며 잘 살았다.  

 

 나는 중학교 2학년때부터 기독교신앙에 발을 디뎠다. 어릴적이니 교리가 어떻고 깊은 진리가 어디 있는지를 따지지 않고 순수하게 받아들였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5:3)’는 말씀에 따라 가난한 자들도 구원받을 수 있으리라는 위로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더구나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으니 일거양득이었다. 당시 교회는 천장에서 비가 새고 마루 밑에서는 쥐가 들랑거리는 허술한 건물이었지만, 어디에서도 맛 볼 수 없는 따뜻한 사랑과 친교가 이루어졌다.  

 

 ‘교회에 가면 밥이 나오느냐, 돈이 나오느냐’ 아버지의 완고함은 이루 말할수 없었지만, 친구들과 교우들을 만나며 신앙의 기반을 쌓아갔다. 사춘기시절 몇몇 후배 여고생들도 있었으니 그들을 보기만 해도 마음이 설레지 않았던가? 주로 찾던 곳은 인근마을의 귀래정(歸來亭), 조선초 신말주(申末舟)라는 선비가 정착하여 정자를 짓고 여가를 보내던 곳이다. 이곳이 아지트가 되어 우리는 수시로 찬양과 친교를 나누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해질녁 배가 고파지면 그 마을의 S형이 따끈한 고구마와 감자를 삶아와 주린 배를 해결해주었다.

 

 벌써 50여 년 전의 일이다. S형은 지금 어디서 살고 있을까? 이리저리 수소문하니 광주에 살고 있었다. 당시 취직이 되어 K모 고등학교에서 직장생활을 했단다. 전화로 통화를 하며 목소리를 들으니 반갑고 눈에 아른거렸지만 모습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가을에 나뭇잎이 울긋불긋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듯이 그 형도 고희(古稀)를 넘겼으니 어찌할 수 없는 할아버지가 되었을 것이다. 깜짝 반가와 하며 언제 한 번 만나자고 했지만 몰라보게 변해버렸을 그 형을 생각하니 벌써 가슴이 두근거렸다.

 

 행사일정에 맞추어 지난 10월 교회에 도착하니 한복으로 곱게 차려입은 여집사님들이 순서지(주보)를 나누어주고 있었다. 예배순서는 초대받은 손님들을 위해 다양하게 진행해 나갔다. 먼저 그 당시의 사진을 모아 화면으로 보여주니 애틋한 감정이 앞섰다. 철없던 나의 모습을 보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서울 광주 제주등지에서 온 분들도 자연스럽게 추억을 이야기하며 악기연주 등 장기자랑을 했다. 제주에서 온 S집사님은 당시 먹구름속에서 헤매던 가정환경과 지난날을 이야기하며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추억은 그리운 것, 누가 이처럼 지난날의 흔적을 모아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해줄 수 있을까? 열악한 환경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한 가족으로 남아있음을 감사드리며 행복에 젖었다.

 

  고향은 내가 태어나서 자란 곳이다. 조상들이 대대로 살아온 터전이요 부모와 친구들의 얼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논두렁에서 메뚜기를 잡고, 휘엉청 달밤이면 강가에서 붕어와 송사리를 잡아 반찬거리를 만들어 먹었다. 다리밑에서 목욕하던 여인들에게 불을 밝히며 애를 태우던 개구쟁이들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요 그리움이다. 어릴적 흔적이 그대로 서려있기를 바라지만 점점 멀어져가고 부모의 자리는 이미 우리차지가 되어버렸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는 내적 확신이나 사랑의 태도이다. 눈으로 보거나 실체를 만질 수도 없지만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잔잔한 행복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16:32)”고 했다. 조석으로 변하려 하는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늘 자신을 채찍질하며 모난 성품을 다듬어야 했다.

 

 마음이 흔들릴 때 신앙은 정신적 지주가 되었고, 포근한 안식처가 되어준 고향교회는 당시 삶의 터전이었다. 이렇듯 힘을 모아 아담한 교회를 건축하고 잊혀져 가는 선배들을 초청하여 멋진 추억을 선물하고 있으니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신앙안에 있음이 행복이요 참된 기쁨이었다.

                                                                       (2018.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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