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의 온기

2018.12.06 00:25

김성은 조회 수:4

커피 한 잔의 온기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김성은

 

 

 

 

 

 종이컵에 뜨거운 물을 받아 믹스 커피를 탔다. 임상실 소파에 앉아 우두커니 시계만 만지작거리는 학생에게 한 잔 건넸다. 20년 전에 교통사고로 두 눈을 잃었다는 이형곤 학생은 현재 60대 중반이다. 딱히 안마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졌다기보다는 집을 벗어나 어떤 활동이라도 규칙적으로 해볼 요량으로 학교에 입학했다. 교실 바로 옆에 위치한 남자화장실을 혼자서 오가는 것도 그분에게는 일종의 미션이다.

 이형곤 학생의 일과는 매우 단조롭다. 만나는 사람이 한정적이고, 오가는 동선도 고정적이다. 사실상 수업 전반에 참석하기에는 체력적으로도 힘겹다. 바쁘게 안마실습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이형곤 학생의 존재감은 흐려지고 만다.

 

  시아버님 생신을 맞아 안동에 다녀왔다. 작년에 팔순잔치를 하신 아버님은 지금도 강철체력을 자랑하신다.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인 자리에서 건강한 웃음과 소주를 나누는 차씨네 식구는 다복하다. 시댁에 가거나 낯선 장소에서 내가 느끼는 아주 사소한 불편 중 하나는 마음대로 커피나 물을 찾아 마실 수 없다는 점이다. 쓰레기통을 찾을 수 없어 쓰레기를 주머니에 넣고 집까지 가져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밖에 나가면 화장실이 불편해서 일부러 음료나 커피를 마시지 않을 때도 많다. 하지만 내가 자유의지를 발휘할 수 있는 안전한 내 공간에 있을 때면, 책상 위에 한 잔의 커피는 필수다. 이형곤 학생도 커피를 즐긴다. 1년 가까이 그 학급에서 수업을 하는 동안 동급생들이 이형곤 학생에게 살갑게 커피를 타 건네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사양하는 법이 없다며, 핀잔과 웃음을 섞어 커피를 챙기는 학생들의 모습은 정겹다.

 

  나는 2007년 가을에 결혼했다. 나에게 시댁은 무척 특별하다. 나보다 더 나의 장애를 거부하고 싶어 했던 남편으로 인해 억지로 맺어진 인연이었으므로. 사실 세상에 그 어떤 며느리인들 시댁이 어렵지 않을까? 하물며 두 눈이 다 멀어 버린 내 입장에서야,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결혼식 전 날, 예비 시어머니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통곡하는 아버님의 울음 소리를 들려 주셨다. 찢어지는 가슴으로 통곡하는 당신도, 그 소리를 똑똑하게 들으라고 전화를 거신 어머님도 피눈물을 흘리시긴 마찬가지였으리라. 내 장애 자체가 이미 형벌임을 세포 하나하나에 새기듯 고통스러운 통화는 영영 끝나지 않을 것처럼 길었고, 아팠다. 온가족의 눈물로 결혼식을 올렸다.

 신혼 여행을 다녀와서 시댁에 갔을 때 아버님은 남편을 불러 조용히 내게 화장실 위치를 일러줄 것을 당부하셨다고 했다. 집구조도 낯선 데다가 어렵사리 한 식구가 된 시댁 어른들 앞에서 나의 거동은 부담 그 자체였다. 뻣뻣하게 긴장한 표정과 동작은 그들의 눈 앞에 나를 더 장애인스럽게 만들었다. 그렇게 내 입에는 형님, 어머님, 아버님, 아주버님이라는 생소한 호칭이 담겼다.

 

  2007년에 4학년 꼬마였던 조카는 독도 경비대원으로 듬직한 군인이 되었고, 둘째는 이번에 수학능력시험을 보았다. 말도 붙이기 힘들었던 시누는 다정하게 내 손에 커피를 쥐어 주시고, 우리 멋쟁이 아버님은 막내 며느리가 좋아하는 떡을 주문했다가 한 상자 차에 실어 주셨다. 재치 만점 아주버님은 교도관이라는 무시무시한 직업과는 다르게 한마디 한마디에 폭소가 터진다털털한 큰언니 같은 우리 형님은 꾀꼬리 같이 맑은 목소리로 곰탱이 동서를 챙겨 주시고, 착한 여자의 전형을 살고 계시는 우리 어머님은 모자란 막내 며느리를 절대 질책하지 않으신다.

 나는 우리 시댁 식구들이 참 좋다. 선량한 마음과 검소한 생활 습관, 군더더기 없는 강건한 체력은 그 누구와 견주어도 단연 으뜸이다. 커피를 한 잔 타 들고 업무용 책상 앞에 앉았다. 향긋한 커피향이 빈 교실을 채운다. 뜨거운 커피 한 잔의 온기가 내 마음을 녹여준다.

                                                            (2018.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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