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벗바리

2019.01.08 23:54

한성덕 조회 수:3

내 인생의 벗바리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한성덕 

 

 

 

 

  사람들이 잘 쓰지 않는 우리글의 ‘벗바리’란 말이 눈에 들어왔다. 국어대사전을 뒤적거렸다. ‘뒷배를 봐주는 사람’ 또는 ‘곁에서 도와주는 사람’을 가리키는 순수 우리말이었다. ‘뒷배’가 뭔지 궁금해서 다시 사전을 펼쳤다. ‘겉으로 나서지는 않고, 남의 뒤에서 보살펴주는 사람’이라고 적혀있었다.  

  자신에게 생각지도 않은 호재가 생겼을 때, 사람들은 흔히 ‘너 누구의 빽이냐?’ 하면서 부러워한다. 그 ‘빽’은 영어로 ‘백그라운드(back ground)’를 말한다. 혼란했던 미군시절, 돈이나 연줄이 없으면 안 된다는 풍조에서 생겨난 말이다. 순 한글의 ‘벗바리’와 비슷하다.

  무주고등학교는 1학년 입학할 때부터 한 반이었다. 3학년이던 197012, 우리 반 50명 동기생들 중에서 대학 2, 3군사관학교 3명을 제외하면 취직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부르셨다. 교장실로 안내하시더니 교장선생님께 소개하셨다. 며칠 뒤 다시 불렀을 때는 무주초등학교 교장선생님도 와 계셨다. 무슨 영문인지 어리벙벙했다. 그러면서도 절반은 좋고, 절반은 무슨 잘못이 있나싶어서 괜스레 겁이 나기도 했다.  

  세 번째 부르실 때는 일주일쯤 지나서였다. 끝도 밑도 없이 “성덕이 축하한다”고 하셨다. 무주군교육청에 특별채용됐다는 게 아닌가? 귀를 의심하고 있는데 담임선생님이 무척 기뻐하셨다. 교육청에서 무주초등학교 서무실에 파견되면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누구의 빽이냐?”는 질문이었다.

  근무지에서 사퇴하고 육군에 입대했다. 훈련을 마치자 한 중대에서 8명이 보병 32사단으로 전속되었다. 그중에서 유일하게 사단 부관참모부 인사과 인사행정병으로 발탁되었다. 더블 백을 멘 채 내무반에 들어서자마자 목청껏 “충성!”이라고 외쳤다. 얼마나 궁금했으면 거수경례한 손이 내려오기도 전에 “야, 인마! 넌 누구 빽이야?”하는 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군 복무를 마치고, 총신대학교에 들어가 7년의 신학과정을 마쳤다. ‘담임전도사로 갈까, 큰 교회 교육파트를 맡을까?’ 하다가 전라북도 익산의 한 농촌교회 담임전도사로 부임했다. 내 나이 33살에 120여 명이 출석하는 교회의 담임전도사가 되었다. , 중고등학생들까지 합치면 200명이 넘었다. 친구들의 관심사 역시 ‘누구의 빽이냐?’ 하는데 있었다.

  결국은, 모든 것의 벗바리가 누군지 궁금하다는 게 아닌가? 굳이 대답을 원한다면 고향산천이라 말하고 싶다. 그곳의 산과 나무와 돌들, 또는 시냇물과 꽃들과 바위를 보라. 의연함과 올곧음의 표상이다. 스산한 바람마저도 자리를 지키듯이 살랑살랑 스치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나는 자연과 벗이 되어 쫑알거리며 아기자기하게 자랐다. 그 사이에 대자연의 성실과 정직함이 내 안을 채웠다. 그것이 내 속에서 스멀스멀 솟아오르는가 보다.

 

  나이를 조금은 먹었다. 이쯤에서 달라진 게 있다면 세상을 보는 눈이다. 작은 몸짓이나 표정이나 말에서 사람의 됨됨이가 보인다. 학창시절엔 공부를 잘 한 것도, 돈이 있는 것도, 리더십이 출중한 것도 아니었다. 가난 때문에 까칠하고 그저 평범한 학생이었다. 다만, 한 가지 있다면 ‘성실’이었다. 매사에 성실함으로 열심히 한 것뿐인데, 그것이 어른들의 눈에 찼던가 보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이 ‘누구의 빽이냐?’고 물으면, ‘대자연의 선물’이라는 대답을 준비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놀라기는커녕 묻지도 않는다. 남을 의식하며 우쭐하던 시절도 다 지나고, 부러움의 시선도 사그라졌다. 허전함이 밀려와 씁쓸하다. 잠 못 이루는 밤이 점점 늘어난다. 생의 바퀴가 삐그덕거리는 것 같다. 이 땅에 가치와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자들의 전형적인 ‘허무’가 아닐까 싶다.

  그 와중에서도 내 안을 채우는 게 있었으니 하나님께 대한 열망이다. 그 분은 내 인생의 시작이자 든든한 ‘빽’이요, 삶의 동반자시다. 언제나 길을 인도하시고, 사랑해 주시며, 눈동자처럼 아끼시는 ‘벗바리’시다. 수없는 소원을 들어주셨건만, 지금도 앞으로도 변함없음을 확신한다. 단 한 번도 귀찮다거나, 지겹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나는 그 분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른다.

  2019년 새해가 되었다. 어제처럼 오늘도, 그 분의 벗바리를 앙망하고 하루하루 희망을 쏘아 올린다. 변치 않는 자연, 그 이상의 것을 창조하신 분이 나의 아버지요, 내 인생의 ‘진정한 벗바리’가 되시기 때문이다.

                                                    (2019.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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