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들 속에서

2019.01.11 00:36

곽창선 조회 수:2

손주들 속에서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곽 창 선

 

 

 

 

 

  "할아버지, 복 많이 받으세요!" 기해년 아침해가 밝자, 외손주가 새해인사를 했다.

  "그래, 우리 현성이도!"

 "저 몇 살인 줄 아세요?"

  "응, 몇 살이지?"

 "그것도 몰라요? 여섯 살이야!"

 외손주는 이제 50개 월이 좀 지난 사내아이다. 며칠 전부터 한 살 많아진다며 쫑알대더니 그렇게 좋은가 보다. 기해 첫 인사를 손주한테 받고 보니 기분이 남다르다. 올해는 황금돼지의 해라는데 아프지 말고 모두 건강하게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억의 저편에 묻혔던 가정사를 떠올려 보려니 아쉽기 그지없다. 아이들 키우며 힘들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며 아쉬운 순간순간이 가슴을 저리게 한다. 나는 슬하에 딸만 둘을 두었다. 조금 늦은 나이에 첫딸을 얻고서 돌이 지나서 또 딸을 얻게 되었다. 하나도 힘든데 연년생이라서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당시만 해도 모든 조건이 열악해서 키우는데 이만저만 애로가 아니었다. 더욱 작은 전세집이라서 아이를 돌볼 사람도 둘 수 없었다. 온 집안이 분유통과 기저귀, 아기옷으로 널렸고 놀이기구 등도 구석구석에 쌓여 어수선했다. 아이 돌보는 일도 힘들었지만 부수적인 일이 더 많아서 기뻐해야 할 육아문제는 고난의 길이었다. 또한 맞벌이를 하다 보니 아침마다 달래서 떼어 놓고 출근하려니 종일 죄지은 것 같은 마음이었다. 남들은 아들 하나 두라고 말하지만 아내의 힘든 모습을 보며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둘만 키우기로 하고 단산수술을 받았다. 망서려지기도 했지만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당시 사회풍조가 결심에 보탬이 되었다. 물론 부모님이 계셨으면 사정은 달라질 수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결정을 하니 홀가분했다. 장모님이 다시 생각해 보라고 하셨으나 괜찮다고 웃어 넘겼다.

 

 늦게 얻은 딸이고 보니 애지중지 키워 남 주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딸들이 이십대 중반까지만 해도 그 마음 변함이 없었으나 30이 다가오니 조급해졌다. 순간적으로 혼기를 넘기게 되었다. 시집을 가야 할 텐데 딸애는 전혀 생각이 없는 듯 태연하다. 속이 타는 부모는 안중에 없고 제 할 일에 바쁘다. 정년을 마치고 30을 넘긴 딸들을 보니 더욱 초조했다. 여기저기 중매를 부탁하며 서두르니 아빠도 30이 넘어서 결혼을 했으면서 때가 되면 갈 테니 기다리라며 태연했다. 애비 속도 몰라주는 그 마음이 야속했다. 어느 날 남자 하나를 데리고 와서 결혼을 하겠다기에 두말없이 허락했다. 그리고 그해 4월 큰딸은 우리 곁을 떠났다.

 

 어느 날 아내가 전화로 딸 임신소식을 알려주었다. 순간 묘한 희열감이 들었다. 결혼이 늦어서 은근히 걱정이었는데 마음이 놓였다. 축하꽃을 학교로 보내 주었다. 10월 어느 날, 아내가 어느 음식점에서 만나자고 했다. 평소 외식을 하자면 집에서 하겠다던 자린고비인데 말이다. 식사 후 커피를 마시며 무언가 망설이더니 이제 쉬고 싶다고 했다. 명예퇴직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잘 생각했다고 격려해 주었다. 딸들이 출가하고 집안이 빈집 같아 혼자 하루를 보내기가 외로웠는데 잘된 일이었다. 딸 출산일이 가까이 다가오니 아내가 출산 걱정을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키워 주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우리도 힘들게 키웠으니 딸을 돕자며 동의를 구했다. 나에게 묻는 이유는 도와 달라는 뜻이다. 싫다고 할 수도 없고 좋다고 할 수도 없는 문제였다. 그래서 뜻에 따르겠다고 했다. 어떤 고통이 뒤따르더리라도 돕겠다며 혼자 말처럼 각오를 다지는 모습이 비장했다. 어머니 마음은 한이 없어라는 노랫말이 떠올랐다.

 

  그러자 이웃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아이 돌보다 병만 처지고 나중에는 정만 난다며, 노골적으로 말리는 이웃들이 많았다. 경험에서 얻은 값진 교훈을 전해준 것이다. 열에 6,7할은 후회할 것이라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모두가 다 후회만 남지 않고 보람도 있을 것이다. 늙고 힘들어 아이 돌보기가 쉽지 않을 텐데 나도 걱정이 앞섰다. 사람의 앞길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장 다니며 애 키우노라 겪던 애로가 너무 커 딸에게는 육아의 괴로움을 덜어주려고 한다며 아내는 요지부동이었다. 첫애를 낳고 둘을 더 낳아 셋이나 되니 애로는 두 배 이상이었다. 온 집안이 난장판이었다. 서로 어울려 울고불고 부수고 뛰는 소음이 보통이 아니었다. 이러한 아이들 속에서 힘들어 하는 아내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도우미 아줌마가 힘든 일은 돕고 나도 도와주지만 못 마땅한 눈치였다. 결국 아이를 돌봐야 할 일은 아내의 몫으로 남기 마련이다. 그러나 아내의 눈치를 보며 지내는 나도 힘들 때가 많다소음으로 아래층 사람들의 눈치가 보여 항상 허리를 굽히며 산다. 이래저래 육아는 힘든 일이었다.  

 

  점점 자라는 손주들은 나의 벗이다. 그저 서로가 필요로 하는 친구다. 이제 큰애는 불럭쌓기나 로봇조립도 제법이다. 밖에서 공도 차고 킥보드나 자전거도 탄다. 영감과 꼬마신랑의 소꿉놀이도 곁들이다 보면 하루가 지난다. 때묻지 않은 동심과 벗하다 보면 나도 철부지가 된다. 이제 머리가 커졌다고 성격이 민감하고 웃고 울며 응석을 부리기 일쑤다. 그래도 어르고 달래며 뜻을 받아준다. 남아와 여아는 하는 짓이 전혀 다르다. 서로의 취향을 모르면 하루가 피곤하다. 보람이 있다면 내가 이들과 친구가 된 것이 보람이다. 나에 도움이 필요로 하는 그들과 함께하는 것을 큰 위안으로 삼고 불편함을 삭인다. 퇴직 후 몇 년은 낙이 없이 지냈는데 아이가 태어나고 곁에서 뒷바라지를 할 수 있으니 한결 마음이 편하다. 짜증이 나고 힘들 때도 어리광 부리는 아이들의 천진스런 놀이 속에 빠지고 보면 즐겁다. 사실 내 딸들보다 손주는 더 예쁘고 귀엽다.

 

 현성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하더니 엄마아빠를 먼저 배우고 할머니를 불렀다. 아마 가까운 순서로 배우는 것 같다. 이럴 때면 피로에 지친 아내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어나며 '오, 내 새끼!' 하며 뽀뽀를 해준다. 아장 아장 비틀거리며 걷는 모습에 온 식구가 박수를 치며 한바탕 웃고 나면 쌓인 피로가 씻은 듯 사라진다. 현성이가 한글을 소리내어 읽고 가끔 동요도 부른다. 5월 철쭉이 만개한 금산사에서 오층탑 돌계단을 엉금엉금 기어오르기도 하고, 북 마이산에서 전기차를 타고 산중턱 계단을 넘어 탑사까지 다녀오며 땀을 뻘뻘 흘리던 기억이 새롭다아이크림을 사 주니 그렇게 좋아했다. 역시 아이는 아이였다. 돌아오는 차속에서 잠이 들었다. 새근거리며 곤히 잠든 모습이 아무런 불안이 없어 보였다.

 

  다섯 살, 세 살짜리 남매가 어느 종교에서 운영하는 유아원에 다닌다. 집에서 가까워 운동 겸 데리고 걸어간다. 횡단보도를 지나며 파란불이 켜지면 오른 손을 들고 지난다. 유치원에서 배운 것을 눈여겨보며 종알대는 모습들이 대견하다. 그때마다 가지고 다니는 사탕 하나를 주면 그렇게 좋아한다. 요즘 아이들은 어른 못할 말을 할 때가 있고 질문도 많다. 질문할 때면 설명하기가 애매하여 얼버무리기 일쑤다. 대화 중 사투리를 쓰면 흉도 보고 쓰레기를 버리면 나쁜 친구라며 놀린다. 지진이나 화재 시 대피 요령을 배우더니 집에서 대피연습을 한다고 소란을 피운다. 이렇게 스펀지처럼 받아들이는 아이들에게 바르게 가르치지 못하는 내 자신이 부끄럽다.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니 체면이 말이 아니다. 이제 아이들에 관한 상식을 익혀야 되겠다. 둘이나 유치원에 다니니 아침에 유아원 등교 준비가 제일 번거로운 일이다. 이때가 제일 바쁘고 힘들다.  

 

  아이 낳기가 두렵다고 한다. 육아방법이 우리 때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사회풍습이 서구화되며 가르치고 먹이고 입히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세대 간 견해차가 있다. 이는 가족 간 육아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해야 될 일이다. 육아비용도 직접비용뿐 아니라 간접비용도 커서 지출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키우기 힘들고 비용 또한 커지니 아이 갖기를 기피하게 된다. 국가가 요란한 출산장려책만 즉흥적으로 남발하지 말고 획기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다. 지금 출산율이 세대당 o.95명이라니 큰일이다. 재정에 한계가 있다면 다자녀 부모에게 재택 시간이나 승진 가산점을 주는 등 국민 모두 고통을 분담하는 차원에서 다각적으로 지원책을 마련해야 할 것 같다. 젊은 세대들이 아이 낳기에 동참하도록 획기적 부양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자라는 아이들은 돌보는 차원을 떠나 학습하며 돌볼 수 있어야겠다. 스펀지처럼 받아들이는 아이들에게 나의 잘못된 습관이나 언어를 따라 배울 것 같아 조심스럽다. 점점 자라는 아이들과 어울리다 보면 아이들한테 배우는 것도 많다. 모두 나에겐 값진 보람의 사간이다. 아이들 속에서 웃다가 보면 어느덧 힘든 하루가 지난다. 하늘의 꽃은 별이요, 땅위에는 꽃이며, 인간에게는 아이들인 성싶다. 나는 오늘도 하루를 아이들과 함께 시작한다.

                                                                   (2019.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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