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말할 것 같으면

2019.01.11 13:45

정남숙 조회 수:1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정남숙

 

 

 

 

 

  요즈음에는 직장이나 포상, 각종 모집 등 선발하는 곳에 제출하는 이력서에 따라붙는 것이 있다. 자기소개서다. 자기소개서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알리려고 작성하는 자기자랑 글이다.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이유는 단시간 안에 자신의 장점, 성격, 생각 등을 알려야 할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동아리, 단체 가입, 회사채용 면접 등에 지원할 때 자기소개서를 제출하게 된다.

 

  남편이 마누라 자랑하거나 부모가 자식자랑하면 팔불출 소리를 듣던 시대엔, 자기자랑은 엄두도 내지 못했었다. 성리학에서 인간의 본성과 도덕적 감정을 말하는 사단(事端) 사양지심(辭讓之心)은, 겸손(謙遜)이 사람의 으뜸 되는 도덕적 기준이 되기 때문에, 절대 셀프자랑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기 PR시대이고, 자기가 자기를 제일 잘 알기 때문에 남의 말이나 생각을 빌리지 않고, 너도 나도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것 같다.

 

  자기를 알리는 방법으로 옛날 젊은이들은, 시골 동네에서 대처로 나가려면 동네 어른이나, 지역 저명한 분들의 서간(書簡) 한 장씩은 봇짐 속에 넣고 떠났다. 지금 같으면 인우보증(友保證)이나 추천서(推薦書) 같은 문서대용이다. 부탁을 받은 사람은 알맞은 일자리를 골라주어, 서로의 친분과 우의를 다지며 교제를 이어가고 있었다. 6~70년대에는, 입시, 채용, 포상, 각종 모집 등에서 자기소개서 대신 타인(他人)의 추천서가 필히 따라다녔다. 추천인은 담당 교수나 담임선생님, 그를 잘 아는 저명인사들의 소개 글이었다. 그 부분에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대상자를 선별하여 그 대상에 대한 추천의 글을 작성한 문서로 객관적 신뢰성을 얻는 것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말을 하려면 제일 먼저 “내가 왕년에”하는 친구가 있다. 지금처럼 엄격한 시험을 치르고 직장에 들어가기 전이어서, 추천서 한 장이나 친분관계의 부탁과 소개로 직장을 들어가던 때의 일이다. 군청에서 같이 근무하던 인사담당 동료에게, 맨 말단에서 임시로 근무하던 외사촌 동생을 정식으로 임용해 달라 부탁을 했다. 부탁을 받은 친구는 그 동료의 출신지 시골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면사무소에서 사환(使喚)으로 있는 동료와 같은 성씨를 찾아 군청으로 옮겨주었다. 외사촌이니 성씨가 같지 않음을 뒤늦게 알았으나, 채용된 사람은 연고도 없는 엉뚱한 다른 사람의 덕을 보았고, 시청과 동사무소에서 평생을 근무하다 동장으로 정년퇴직하기까지, 자기가 어떻게 정식 공무원이 되었고 정년을 맞았는지, 정작 본인은 지금도 모르는 채 “내가 왕년에”를 말하고 있다.

 

 “옛날에 우리 집에는 금송아지가 있었거든!

이 말은, 어렸을 적 친구들이 모여앉아 자기 집 자랑을 하는 자리에서 과장된 과거를 자랑하던 말이다. 친구들의 자랑을 듣고 있던 또 다른 친구는, 자기도 자랑을 하고 싶은데 자기 집에는 도무지 자랑거리가 없었다. 한참을 고민하다 생각해보니 쥐가 많은 것이 생각났다. 그래서 큰 소리로 “우리 집에는 쥐가 많다.”고 자랑을 했다. 그 얘기가 온 동네에 퍼져, 어른이 될 때까지 동네사람들은 그를 보면 ‘네 집에는 지금도 쥐가 많으냐?’ 놀림을 받던 친구도 있었다. 이런 친구들에게 자기소개서를 쓰라면 어떻게 자기 자랑을 했을까 짐작이 되지 않는다.

 

  얼마 전, 어느 강의 시간 직전이다. 한자리 건너 앉았던 노인 한 분이 스마트폰을 열고 있었다, 갑자기 노랫소리가 크게 들려 바라보니 화면에는 무대 동영상이 떠있었다. 강사가 들어와도 그치질 않았다. 얼른 멈추고 닫을 줄 알았는데 그대로였다. 따가운 눈총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내가 민망해 바라보니 팔을 쭉 뻗어 내 앞으로 내밀며 같이 보자는 것 같았다. 옆에 앉아 있던 탓에 창피함과 부끄러움은 내 몫이었다. 얼른 외면하고 내 스마트폰을 꺼내 진동으로 돌려놓았다. 잠시 후, 휴식시간에 강의실 뒤 긴 나무의자에 또래들이 앉아있었다. 얘기하는 큰소리가 들렸다. 아까 그 분이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옆 사람이 듣든말든 눈치 없이 본인자랑을 하고 있었다.

 

  우리지역 인문계 일류고등학교와 서울 SKY대 중 하나인 K대를 나와 공직자로 있었다며 젊었을 때 잘 나갔었노라 잔뜩 어께에 힘을 주며 자랑을 해도 누구 하나 대꾸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계속 말을 쉬지 않고 했다. 강의시간 전, 자신이 했던 행동이 미안했던지 핑계를 대고 있었다. 퇴직 후 많은 봉사를 했으며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강사는 목에 탈이 나면서 고만 두었기에, 지금도 노래나 무대를 보면 신이 나고 좋다고 했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이 행복이란 말도 곁들이고 있었다. 아무리 과거가 훌륭하고 능력이 있었을 지라도 지금 그가 하고 있는 언행은 늙은이의 주책 그 자체일 뿐이다.    

 

  젊은 대학생과 수강하는 중국어시간에, 같이 수강하는 남자 명예대학생 한 분이 있었다. 교수님에게 2학기 종강 한 주 앞서, 나만의 조기 종강을 전하고 마지막 수업 전, 그 동안 고개만 끄덕이던 그에게 나의 종강을 알리며 그저 인사로 점심을 같이하자고 했다. 그는 주저 없이 승낙했다. 강의를 마치고 교수 식당으로 가는데 여학생들을 데리고 왔다. 식당까지 가는 동안 나는 속으로 자기가 점심을 사려나보다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었다. 식당 앞에 닿았으나 식권을 구입하지 않았다. 엉겁결에 예상외의 식권을 구입하여 식판을 들고 자리에 앉아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데리고 온 키르키르스탄 여학생들을 소개했다. 자기가 나중 여행하려면 잘 알아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식사자리에 같이 왔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본인이 그 유학생들을 대접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나로 말할 것 같으면”으로 본인을 소개한다. 잘 나가는 고급공무원으로 정년퇴임를 했으므로 연금은 보통사람보다 훨씬 많아 세계여행을 자주 다닌다고 자랑했다. 지역 내 인사들과 몇몇 교수들과의 관계를 거론하며 필요이상으로 자기위상을 과시했다. 거창한 자기자랑을 실컷 했으니 식사 후 커피라도 사겠다 할 줄 알았다. 그러나 헛된 기대는 그대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식사 잘 했노라며 그냥 휙 나가버렸다. 그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나 스스로를 탓하고 있었다. 나의 경망스러움을 후회하며 유학생들의 사정과 과정들을 들으며 타국에서 불편하거나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며 전화번호를 입력시켜주고 돌아왔다.    

 

 누구나 자기 잘 난 맛에 산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남들이 “나로 말할 것 같으면”으로 시작하거나 “내가 왕년에” 할 수 있는 자랑거리가 없다. 지금 만약 자기소개서를 쓸 기회가 주어진다면 몇 줄이나 메울 수 있을까? 그러나 자랑거리가 없다고 자존감마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진심을 다해 신뢰감을 얻을 수 있는 자기소개서를 써보고 싶다.

                                                             (2019.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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