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 기행

2019.01.29 05:27

박제철 조회 수:5

소록도(小鹿島) 기행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박제철

 

 

 

 

 3년가뭄에 하루 쓸 날 없다는 말이 있다. 무엇인가 해보려면 비가 온다는 말이다. 우리 마을 경로당에서 한 달여 전부터 소록도여행을 가기로 한 날이 오늘이다. 남부지방은 60미리까지 많은 비가 내린다는 기상예보가 있었다. 그렇다고 버스는 물론 해설사까지 예약했으니 가지 않을 수도 없지 않은가? 우산 하나씩을 챙겨들고 여행길에 나섰다.

 

 남해쪽으로 갈수록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고흥시내를 지날무렵 해설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장대비가 내리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는 것이었다. 도착해서 상황을 보자고 했다. 20여 분을 더 달려 소록도 주차장에 도착했다.

 "그렇게 쏟아지던 비가 멈추었네요. 어르신들이 오신다니 하늘도 도와주네요."

 미리 안내를 부탁한 홍순희 해설사가 비옷을 입은 채 다가와 웃으면서 인사말을 건넸다.

 소록도는 행정구역상 전남 고흥군 도양읍에 속하며 마치 섬모양이 작은 사슴과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하지만 예쁘고 작은 사슴과는 달리 일제 때 한센병환자들을 강제로 격리시키기 위하여 사용되었으며, 그곳 한센병 환자들은 강제노역은 물론 죽은 뒤에는 해부의 실험대상자가 되어야했던 한 많은 곳이라 한다.

 

 맨 먼저 찾은 곳은 소록도 입구에 있는 수탄장(愁嘆場)이다. 지금은 보리피리 휴게소가 자리잡고 있다. 소록도를 돌아보고 나오면서 텁텁한 막걸리 한 잔에 애환의 한을 씹어볼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옛날에는 한센병환자와 그의 자녀들이 눈으로만 만날 수 있는 장소였다고 한다. 신작로를 가운데 두고 부모와 자식들이 양쪽으로 늘어서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눈으로만 볼 수 있었단다. 격리시킨 자녀들의 감염 예방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지만 얼마나 한스러웠으면 그 장소를 일러 수탄장이라 했을까?

 수탄장에서 그들의 애환을 생각하며 바닷가 소나무 숲길을 잠시 걷다보면 중앙공원 입구 애환의 추모비에 이른다. 잔악한 일제로부터 해방이 되자 소록도 원생들은 소록도의 자치권을 요구했다한다. 이를 거부하는 진압군에 의해 84명의 협상대표가 처참하게 학살당하여 묻힌 그곳에 이들을 추모하기위해서 2002822일에 세워졌다한다. 해방된 우리나라에서 같은 민족 끼리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애환의 비() 뒤에서는 그들의 억울함을 하소연이라도 하려는 듯 바닷물이 철석거리고 있었다.

 

  다음은 소록도의 애환과 그들의 삶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게 국립소록도병원 뒤의 벽화였다. 벽화에 새겨진 인물은 실제 거주했던 한센인의 모습을 새긴 것이라고 한다. 벽화의 맨 앞에는 붉은 피로 물든 사슴이 있다. 이는 상처받은 한센인의 상징이고, 맨 뒤에 있는 노란사슴은 평화를 되찾은 소록도를 조명한 것이라고 한다. 소록도는 지금 평화의 사슴처럼 평온한 생활을 하는 곳이란다.

 

 일제의 최고 잔악성이 그대로 간직된 감금실과 검사실로 향했다. 감금실은 방 한쪽 구석에 변기 하나가 덩그러니 있을 뿐이었다. 반항하는 환자를 감금하는 곳이었으나 착취를 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했다한다. 검사실은 사망한 한센인들을 해부하는 곳이란다. 조그만 방 가운데 놓여있는 검사대는 보기에도 소름이 끼쳤다. 한센인은 세 번 죽는다. 처음엔 한센병에 걸렸을 때이고, 한 번은 이곳 검사실에서 시신의 해체를 당할 때이며, 마지막은 화장을 당할 때다.

 

 두 주먹을 불끈 쥐게 하는 감금실을 뒤로하고 자료실을 경유하여 아름답기로 유명하다는 중앙공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름다운 이 작은공원이 한스러운 저주의 땅으로 불렸단다. 지금은 없어지고 말았지만 중앙에는 붉은 벽돌을 만들어내는 공장이 있었단다. 공장의 굴뚝이 있던 자리에 십자가가 자리 잡아 옛 벽돌공장임을 말해주고 있다. 손발이 문드러져 없어진 한센인들이 진흙을 짓이기고 뜨거운 벽돌을 꺼내면서 다치기도 하고 죽기도 했다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더구나 4대 원장으로 취임한 일본인 수화라는 원장은 한센인들을 오직 착취의 도구로 삼아 강제노동을 시켜 자기의 동상까지 세워놓고 참배를 시켰다니, 더 이상 할 말을 잃었다. 강제노동과 착취를 견디지 못하고 원생 이준상이 원장을 살해했단다. 사람을 살해했다는 설명임에도 속이 후련해지는 느낌은 나만이 아닌 성싶었다. ‘잘했다, 시원하다.’ 라는 소리가 조용히 들렸기 때문이다.

 

 ‘한센병은 났는다.’ 라는 구라탑(求癩塔) 앞에는 20여 톤이나 되는 너럭바위가 있었다. 그 바위에는 한하운의 <보리피리>라는 시가 새겨져있었다. 20톤이 넘는 바위를 어디서 어떻게 옮겨왔을까? 지금 같은 장비도 없던 시절 몸도 성치 못한 사람들이 저렇게 큰 바위를 옮길 수 있는 힘이 어디서 생긴 것일까?

 아름다운 공원을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금이야 아름답게 꾸며져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들이지만 당시에는 가시넝쿨이 우거진 거친 산이었을 것이다. 건강하지도 못한 한센인들이 오로지 삽과 괭이로 험한 산을 허물고 일구어낸 공원일 게다. 어쩌면 이런 일들이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까 싶었다.

 

 피눈물로 만들어진 한스러운 공원 내에는 천사 간호사의 공적비가 있다. 악몽의 세월이 가고 그래도 이역만리 오스트리아에서 가방 하나씩만 둘러맨 천사가 날아왔단다. 간호사인 마리안느와 마가렛 천사다. 1962년과 1966년 꽃다운 나이로 소록도에 날아와 살포시 내려앉아 오로지 헌신적인 봉사를 했단다. 2005년 고령과 건강악화로 더 이상 일할 수 없자 “부족한 이국인으로서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아 대단히 감사드린다.”는 편지 하나만 남긴 채 조용히 한국을 떠났다고 한다. 지금은 80대로 고향에서 암과 치매와 투병중이라고 한다.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그나마 마음의 위로를 받는 것은 노벨평화상 수상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천사 두 분의 건강을 기원하며 노벨 평화상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두 분의 천사가 있었기에 붉은 피의 아기사슴 벽화가 평온을 되찾은 노란 아기 사슴으로 변했나 보다.

 

 마지막으로 마을 뒷산에 있는 화장터를 가리켰다. 한센병환자가 한 많은 세상을 뒤로하고 마지막 죽는 장소라고 했다. 때로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때로는 눈시울을 붉히며 소록도여행의 문을 닫았다. 해설을 들으며 공원을 도는 내내 비는 오지 않았다. 하늘이 통한의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은 점심을 먹고 귀갓길에 오르면서부터였다. 한 많은 소록도와 해설사의 배웅을 뒤로한 채 귀가길에 올랐다.

 

 장대비가 차창을 때렸다. 상념에 젖었다. 일제강점기의 잔해라 하여 많은 것을 치워버렸다. 군산의 근대역사박물관이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소록도는 통한의 건물들을 보존함으로써 산 교육장으로 활용할 수 있지 않은가? 오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아렸다.

 "뭘 그리 생각해? 오늘 여행이 최고였네! 소주나 한 잔 들라고!"

동행인이 소주잔을 내밀었다. 이미 차창 밖은 어둠이 깔렸다. 그리고 세찬비가 그 창을 두드리고 있었다. 소록도의 애환을 알아주어 감사하다는 듯이 말이다.

                                                      (2018.11.8.)

 

 

 

 

 

 

댓글 0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47 제비 김학 2019.02.06 53
446 침묵이 그리운 세상 임두환 2019.02.06 62
445 목포에서 옛생각에 잠기다 정명숙 2019.02.05 63
444 환갑을 맞이한 얄개전 정명숙 2019.02.05 45
443 수필가 김학의 수필쓰기 김학 2019.02.04 82
442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설날 최연정 2019.02.04 22
441 설날 두루미 2019.02.04 55
440 아버지노릇 김학 2019.02.03 58
439 물은 약이다 두루미 2019.02.02 49
438 인어아줌마의 화려한 외출 김성은 2019.02.02 48
437 고양이 천국 이우철 2019.02.02 2
436 황소를 몰고 온 남자 윤근택 2019.02.01 2
435 손편지 곽창선 2019.02.01 4
434 빈 들녘 소종숙 2019.01.31 5
433 선물로 받은 막내아들 김창임 2019.01.30 4
432 아름다운 마무리 임두환 2019.01.29 4
431 모데미풀 백승훈 2019.01.29 6
» 소록도 기행 박제철 2019.01.29 5
429 독신주의 김세명 2019.01.28 3
428 촌년 10만원 두루미 2019.01.28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