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들녘

2019.01.31 04:34

소종숙 조회 수:5

빈 들녘

안골은빛수필문학회 소종숙

 

 

 

  아무도 오가는 이 없는 빈 들녘은 고요한 평화가 흐른다. 햇살이 겨울 같지 않게 포근한 날씨다. 허리가 불편하여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디스크에는 걷는 운동이 좋다기에 호성동 밭을 목적지로 정하고 길을 나섰다. 걷다가 힘들면 가로수에 허리를 잠깐 기대어 쉬었다 걸으며, 시내버스 정류장 따뜻한 의자에도 앉아서 쉬면서 걷다보니, 어느덧 농로에 다달았다.

 

  농로입구에는 꽃을 재배하는 하우스가 자리하고, 주유소와 시내버스 정류장이 있다.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인데 농로에 접어들고, 논배미가 보이면 공기가 완연히 달라짐을 느낀다. 토지가 가까워질수록 가슴을 누르던 돌덩이를 내려놓은 듯 마음이 가벼워지고 안정감이 든다. 땅기운이 주는 힘일까?  

   우리 밭에 놓인 콘테이너 박스가 멀리 보이더니 거리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왠지 가슴이 설렌다. 그곳에 도착하니 땅이 나를 반가이 맞아주었다. 멀리 떨어져있던 자식을 만나는 것만큼이나 정겹다. 곡식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데 자주 가보지 못해서 미안하다. 지금은 겨울이라 개울물이 얼어붙었고, 들판이나 둔덕을 덮었던 꽃들과 수풀은 찾아 볼 길이 없고 황량하다. 그런데도 넓은 들녘은 쓸쓸하고 공허한 것이 아니라 고요하고 평화가 넘친다. 나의 눈망울은 어느덧 들녘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길거리에 나서면 홍수처럼 밀려오는 선전광고물, 집안에 있으면 텔레비전에서 정신을 산란하게 하는 오락거리와 매체들, 내게는 무의미한 프로그램을 보면서 머리가 멍해진다. 그러다가 빈 들녘을 바라보니 가슴이 확 트이면서 내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은 자유로운 영혼이 된다. 죄악이 소용돌이치는 세속을 벗어난 느낌이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쉬신 것처럼, 허허벌판 빈 들녘도 인간에게 필요한 열매를 주님 말씀 따라 다 내어주고, 고요히 안식하고 있는 모습이다. 여기에 목화솜 같은 흰 눈이라도 내려서 덮이면 아무도 오가는 이 없는 빈 들녘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밭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이 땅을 처음 보았을 때 화학약품 탓인지 몹씨 지쳐 있었다. 한 해 동안 가꾸면서 노력한 대가인지 땅이 비옥해졌다. 행복은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매일 집에서 나오는 과일껍질과 계란껍질 등을 모아서 밭에 가져다주었다. 식물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을 아는 듯 마늘잎이 파릇파릇 인사를 했다. 자두나무에서 떨어진 잎들이 흙에 스며들어 걸음이 되었다. 혹독한 추위를 겪어야만 아름답게 꽃이 피는 홍매화나무에 핑크빛 망울이 꽃등을 걸 준비를 시작하고, 청매는 질투라도 하는 듯 새침한 푸른빛 꽃망울이 살짝 나에게 윙크를 한다. 이와 같이 자연은 매일 변화하기 때문에 보고 또 보아도 싫증 이 나지 않는다. 시금치와 봄배추도 겨우 고개를 들어 잠에서 깬 갓난아이처럼 살며시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본다.

 

   자라나는 생명들을 바라보니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모든 병이 마음에서 온다는 의사들의 말이 맞는 것 같다. 마음이 가벼워지니 몸도 가벼운 느낌이 들면서 몸이 서서히 움직여진다. 남편이 아무데나 던져놓은 자연퇴비를 밭에 있는 장갑을 끼고 과일 나무아래에 한 줌씩 놓아주었다. 여름에 무성했던 잡초들을 뽑아서 쌓아놓았더니 예쁘게 걸음이 되어 조금씩 가져다가 덮어주고 다독거려주었다. 쓸모없이 태어난 존재들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해가 바뀌었는데도 아직도 떨어지지 않은 사과나무 잎이 과거를 상징하는 듯, 나무에 매달려 애처롭게 달랑거리고 있다. 그 모습을 보니 ‘O 헨리의 마지막 잎새’에 나오는 존시가 창밖으로 보이는 담쟁이덩굴에 달려있는 ‘마지막잎새’를 바라보면서 그 잎새가 떨어 질 때 자기의 목숨도 떨어질 것처럼 안타깝게 바라보던 모습 같다. 자연은 때로는 과거, 현재, 미래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한다. 자연을 바라보고 있으면 온갖 시름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위해 만드신 자연은 다 유익한 것들이다. 우리 인간은 땅만을 거처로 삶고 있지만, 대자연은 새들과 물고기들과 들짐승을 기르고, 새들은 공중을 날고, 물고기와 짐승들을 땅에 어울려놓고, 관목과 과일나무들과 땅위의 집들을 통하여 생육하고 번성하고 자기들을 보호하며 살도록 하셨다.

  ‘창세기 131절’에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지으신 천지만물을 보시며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다. 저 넓은 들판 위를 유유히 날고 있는 새떼들을 바라보며 그것들 안에 하나님의 창조의 손길이 숨겨져 있음을 본다. 때로는 짐승들이 인간의 재능과 지력보다 뛰어난 점을 가지고 있는 것도 많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들에게 대자연을 다스리고 지배할 수 있는 역량을 주셨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넓게 트인 빈 들녘을 바라보면서 묵언을 한다. 세속에서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는 독백이 필요하다고! ‘백세 된 어느 철학자’는 돌아보니 삶도 여행이었다. 자연이 준 선물을 누리는 것도 행복이라고 했다.

  21세기에는 정신질환자가 증가할 것이라는 전북대학교 의대학장이셨던 신경정신과교수님이 20여 년 전 주부대학에 오셔서 강의해 주신 기억이 떠오른다. ‘다니엘서1 24절’에 보면 세말에는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많은 사람의 지식이 더하리라’ 인류역사 배후에서 선한 영과 악한 영들 간에 전투가 벌어지는 환상의 장면이 나온다.

   현실은 통신이 빨리 왕래하고 지식과 지혜는 4차원 산업혁명을 부르짓는 지금이다.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정신적인 힐링이 필요한 시대라는 생각이 든다.

   먼 길 떠나는 여행이 아니고, 산장이나 바닷가가 아니어도, 도심에서 가까운 농로를 따라 넓은 들판을 바라보면서 빈 들녘 사잇길을 걸으면 세속에 묻은 때가 씻겨지는 듯, 정신이 맑아지고 평온해진다.

   남녀소 모두는 정신적으로 피곤한 삶속에서 감정이 약해지고 마음이 예민해질 때, 번잡한 도시를 떠나 빈 들녘을 바라보면 정신적인 휴식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고요한 평화가 흐르는 빈 들녘을 바라보는 것은 현대인의 힐링이 될 것이다.                          

                                        (2019.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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