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을 맞이한 얄개전

2019.02.06 00:21

정명숙 조회 수:2

환갑을 맞이한 얄개전

                                              정 명 숙

                                              msookch@hanmail.net

 

2015년은 1955년 청소년잡지에 학원사에서 나온 <얄개전>이 탄생60주년을 맞았다. 조흔 파가 학원잡지에 일년반 연재한 것을  책으로 묶어 단행본으로 나온 것이 19554월이고 그 인세(印稅)로 우리는 6월에 결혼식을 올렸다. 남편은 구제품을 줄여서 입었는데 철없는 신부는 종로 화신백화점 옆에 있는 신라주단에서 제일 비싼 나일론 옷감으로 맞추어 입었는데 나일론이라 땀을 뻘뻘 흘렸던 기억 밖에 없는 우리의 결혼도 환갑을 맞은 것이다. 흔파는 생전 표창이나 상을 받은 일이 없는데 2012년 국립 중앙도서관에 조흔파 작품 및 유품과 중요자료인 고서들을 기증해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감사패>를 받았다. 그가 우리곁을 떠난지 35년만에 감격스러운 보은의 상을 받으며 감동했다.  매년 12월이 되면 크리스마스다 연말이다 모두가 들뜰 때 나는 심란하고 우울하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남편이 가던 그날의 일들이 너무나 생생하게 내게서 떠날줄 모르고 영상처럼 돌아가기 때문이다.  배우자의 죽음만큼 큰 일이 어디 있겟는가. 아직도 그는 내 곁에 살아 있는 것처럼 그가 보던 책갈피에 옛날 주인장(朱印)처럼 몇백년 내려오는 부하에게 내리는 명령서나 지침서 같은 글들이 나와 나를 놀라게 한다. 그가 60세에 갔는데 그 흔적들이 여기저기 책을 뽑아들 때마다 불쑥 나타나 맴돌며 떠날줄 모른다. 너무나 짧은 생을 아쉬워했음인지 딸의 초경일 메모와 언젠가 먼 훗날 딸의 손을 잡고  들어가는 결혼식 장면이 그려진 메모등  별걸 다 기록하는 남자라는 생각을 하며 숙연해진다.  얼마전  1957년 부산 해운대에서 아내에게 보낸 편지가 나왔다.

 

   무사히 왔소.주위가 퍽 조용하고 멀리 가까이 파도소리가 들릴뿐, 호텔柱礎를 씻고 해변가    고급호텔 객실 전망이 너무 좋아서 제법 도시에서 찌든 먼지를 씻어줍니다. 그러나 글쓰기    에는 도무지 안되고 높은 안락의자와 낮은 탁자 여기서는  이 편지 쓰기도 어려운 형평이요    게다가 식사조차 만만치가 않아 역시 당신곁 내 초라한 서재로 곧 돌아가려고 항공사에      문의했던바, 오늘은 좌석이 매진이라하니 하는 수 없이 예정대로 다음날 떠나려     하오     희미한 조명등 여기는 글쓰기보다 술 마시가가 안성맞춤이구려, 이번 여행른 완전히        ,그러나 얻어진 것이 없다 못하겠소 전에 여기를 왔을 때는 비행장에서부터 한 시간 쯤     걸어서 사촌 형 집에 돈 꾸러 갔던 것이고,이번은 호기롭게 돈을 쓰려고 온 것이니 그것도    다르거니와 여유있게 관찰하였기에 앞으로 집필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듯하오. 객사에서      편지 쓰면서 맛보는 나그네의 향수, 그러나 비행기로 한시간 반 만에 왔는지라 도무지 멀리    떠났다는 기분이 아니어서  참으로 유감이오. 곧 돌아가리다. 어쩌면 이 편지가 나보다 늦      도착할른지 모르겠소.               19571024  흔파

 

 이 편지는 얄개전이 1955년 나오고 2년 뒤 잡지마다 연재가 나가는데 매일 집으로 처들어오는 악동같은 글벗들의 심술궂은 방해에 견디다 못해 글 써오겠다며 도망치듯 떠난 길에 아내에게 쓴 편지인데 내가 읽고 두꺼운 책속에 넣어 두었던 것이 50여년만에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지난해 2015년 말 어느 출판인 모임에서 저녁 초대를 받았다. 요즘 나는 저녁초대는 모두 사양하고 있는데 초대한 편의 인사들도 6.70대여서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실은 얄개전을  마지막 간행했던  유연식사장이 주관하는 모임이었다. 조흔파를 기억해 준다는 것이 너무 고마워 나갔더니 모두 얄개전과 자기들 청소년기를 회상하며 기리는 사람들이 었다.

 

 영화, 출판, 잡지, 방송등 얄개전 의 추억이 많은  분 들인데 그들도 일선에서  은퇴한 퇴역이라는 데에 다시 한번 놀랐다. 그 중에 장학출판사와 육민사 사장도 모두 고인이 되고 그 아들이 나왔는데  육민사 사장 최태열선생이 1975년 출판한 <월간중앙연재>한 만주국(滿洲國)이 요즘 인문학의 대두로 빛을 보게 되었다는  소식이다. 1973<만주국>에서 이미 동북아의 역사를 구상하고 썼다는 것은 조흔파의 인문학적 업적이라 할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소위 <동북공정>정책을 펴며 만주 일대를(엣 고구려땅) 자기네 역사에 편입하러 들고 있다.  한편으로는 일본의 아베 정권이 허구적인 <임나일본부>설을 부활시켜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 수록하기 위해 만주에 세워진 고구려<광개토왕릉비>를 몇 구절 지워 일본임나일본부설을 정당화하려는 조작극을 재부상 시키고 있는데, 조흔파는 이를 이미 예견하고 허구의 옷을 입혀 이 문제를 장편소설 <만주국>으로 50년 전에 집필한 것이 빛을 보게 되었다니 기쁜 일이다. 당시 항간에서 “얄개전을 모르면 빨갱이라”할정도로 그 인기가 대단했다.

 사실은 조흔파는 역사소설을 많이 쓴 작가이다. 얄개전은 5,60년대 공전의 대히트로 흔파가 역사물을 쓴 것은 완전히 묻히고 말았는데 사후 30년이나 지나서 빛을 보게 되었다니 감개무량하다. 흔파가 쓴 역사물들은 소설국사,대한백년, 사건 백년사(日譯), 주유천하,양녕대군,세검정,길삼봉,이성계, 만주국, 소설한국사전16,소설성경전9권등을 남겼는데 독자들은  그런 사실은 기억하지 않고 조흔파하면 얄개전으로만 기억한 것 같다. 어떻든 한 작가에게 히트 작품은 하나로 족해야 하나부다. 남편이 생전 인세 들어올 때마다 하던 말로 나에게 욕심내지 말라는 경고였던 것 같다.

 그가 19801224일 사망하고 그 해 흑백테레비전에서 컬러테레비시대가 되자 세상은 너무 험해져서 죽은자의 작품을 제멋대로 훔쳐가거나 뻔뻔스럽게도 방송작가라는 사람들이테레비에 라디오에 마구 쓰고 있어서  저작권협회에 제소하기도 했지만 너무 많아 손을 쓸수 없었다. 산 사람 것도 훔쳐 표절하는 세상에 하물며 죽은 자를 보호할 길은 정말 미미했던 아픈 기억들만 남았다.

 얄개전은1955년 출간하여 2004년까지 100만부가 나간 장수도서였다. 1976년 한국일보에 <신고전을 찾아서>에 일곱 번째로 나간 장수서적으로 기록되었다. 얄개전탄생   60주년이 되었는데 할아버지와 손자가  대물림하며 주인공 나두수의 기발한 활동에 웃음을 함께한다는 신화를 남겼다. 사망한 선배에 대한 대접이 고작 유작들을 훔쳐 마구 쓰는 표절이나 날강도보다 더한 짓을 하는데 기가 막힌 일들을 겪으며 그래도 흔파의 아내가 아직 살아 증언할수 있어 정말 다행이라 생각한다.  작가는 공부 즉 독서가 제일이라 하던  그 넉넉함과 호방한 성품 웅장한 체구, 익살스러운 너털, 능청스러운 풍자, 기교넘치던 해학, 어릿광대같은 기지, 누구도 못 따를 풍류, 깔끔이 지나쳐 결벽증 환자같던 그 사람, 자는 시간도 아깝다던 바지런함 그 큰 꿈을 어찌하고 홀연히 떠난 사람.

 얄개전이 영화화된 것이 1965년 제일영화사 신상옥필림의 이형표 감독,에서 1992년 거성필림 김응천 감독까지 8번이고 그 이외 서울의 집웅밑, 주유천하, 와룡선생상견기, 브라보 청춘, 도심의향가, 태조 이성계, 임꺽정, 에너지 선생, 이별의 강, 강명화, 윤심덕, 돌지않는 풍차등 작품이 신상옥감독을 비롯한 최 현,유한철,한형모, 안현철,김수용,임권택, 정승문, 최훈,강대진, 석래명, 김응천감독등에 의해 26편이나 영화화되어 영화진흥공사 기록관에 있다니 놀랍다.

 10여년전 서대문 화양극장에서 얄개전을 상영하기에 어디서 상영허가를 받았는가 문의 했더니 토월회 최초의 배우였던 복혜숙선생의 조카 복철이라는 것이다. 몇일 후 달려와서 죽을 죄를 지었노라 사과하는 어처구니 없는  어찌 이것 뿐이 겠는가? 이런 사기꾼들이 도처에 있는

 한편에는 2014년 어느 시골극장에서 상영을 허가해 달라는 사람이 왔던 일이 있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아주 드문 일이였다. 대개는 은근 슬쩍 얼마든지 하는 것을 나는 알수 없다. 아마 나도 죽었을거라 맘 놓고 자행하는 것이다.

 

  1960년대 얄개전은 경기 서울고등학교에서 영어로 번역하여 부교재로도 쓰기도 했고 연극때문인지 2004년부터 <구몬학습>이라는 곳에서 마지막 2페이지 사용하기로  약정되어  아직도 저작권협회에서 일년에 얼마간의 복사료로 입금되어 온다. 반백년의 작가의 족적이다. 역사란 한 개인의 과거를 조사 발굴할뿐만 아니라 자기자신이 그역사의 일원이여서 잊을수 없는 사실이였다.  과거역사 불과 50여년 내가 체험했던  기록은 내 가슴속에도 있었다. 우리부부의 역사 이제까지 나개인의 가슴속 깊은 곳에 잠자고 있었던 현대사가 그것이였다.

 한 작가를 60년 기억해준다는 것은 작가의 승리라 생각하며 환갑인 2015년 한식날에는 모란공원 흔피묘소에 가서 축배를 드려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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