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풍경

2019.02.06 18:18

김학 조회 수:6

설날 풍경

김 학

역귀성을 하지 않고 맞은 설날은 여느 날보다 더 쓸쓸했다. 텔레비전에서는 한복을 입은 출연자들이 하하호호 웃으며 시끌벅적하다. 그들은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주려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지만, 내게서 웃음을 자아내지는 못한다. 집안은 여전히 조용하고 쓸쓸하다. 이래서 혼자 사는 이들이나 미혼 여성들이 반려동물을 키우는가 보다.

내 나이 희수(喜壽)가 되고 보니, 설날인데도 세배 갈 곳도 없고, 나에게 세배를 올 가까운 친척도 없다. 어머니 살아계실 때가 생각난다. 그때는 설날이면 아내는 세배객들 다과상 준비하느라 종일토록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었다. 어머니의 친정 식구들, 두 분 고모님네 식구들, 동생네 식구들, 내 처가 식구들이 번갈아 세배를 왔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오면 나는 세뱃돈을 주어야 했다. 그러기에 설이 다가오면 은행에서 빳빳한 지폐를 두툼하게 미리 준비해두어야 했다. 돌이켜 보니 그게 재미였다. 세배를 받고 세뱃돈을 준다는 게 큰 기쁨이었음을 나는 그때 깨달을 수 있었다.

설날인데도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다. 아파트 단지로 나가 보아도 역귀성하고 귀향하는 이들이 많아서 그런지 한산하고, 안골 네거리로 나가 보니 옛날 평양거리처럼 조용하다. 자동차도 듬성듬성하고, 오가는 이들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때때옷을 입은 어린이들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한복차림의 어른들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설날 모습이 옛날에 비해 많이도 달라져 버렸다.

옛날이 그립다. 옛날 시골에 살 때는 또래들이 많아서 좋았다. 설날이면 서둘러 세배를 마치고 또래들끼리 만나서 놀이 삼매경에 빠졌었다. 딱지치기, 자치기, 제기차기, 연날리기, 널뛰기, 윷놀이, 등을 하느라 추운 줄도 몰랐었다. 방안놀이나 바깥놀이도 많았었다. 설날이라 집집마다 먹을거리도 많을 때였으니 신바람이 날 수밖에. 그 시절이 마냥 그립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영화를 보려고 메가박스로 갔다. 아내와 나란히 앉아 이병헌 감독의 『극한직업』이란 영화를 보았다. 개봉 15일 만에 관객 1,000만 명을 돌파했다는 영화다. 방학이라 그런지 청소년들이 많았다. 마약반 형사 다섯 사람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였다. 류승용 ‧ 이하늬 ‧ 진선규 ‧ 이동휘 ‧ 공명이 출연하여 낮에는 치킨장사를 하고 밤에는 잠복근부를 하며 111분간 진행되는 코믹 액션 수사물이었다.

목숨을 걸고 범인들과 싸우는 형사들의 활약상이 리얼하게 잘 그려졌다. 범인들을 일망타진한 뒤 다섯 명의 형사들이 모두 정복을 입고서 나란히 서서 일 계급 특진을 하게 되자, 객석에서는 우레 같은 박수가 터졌다. 오랜만에 본 감동적인 영화였다.

이번 설 연휴에 맞추어 개봉된 영화중에는 이『극한직업』이 단연 흥행신기록을 세우는 것 같았다. 형사들이 출연한 영화도 코미디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영화를 보고 처음 알았다.

‘1분도 쉬지 않고 쉴 새 없이 터지는 웃음’ ‘웃다가 복근 생길 영화’ ‘최고의 코믹 수사극! 이렇게 웃기는 영화는 없었다.’ ‘111분 논스톱 웃음폭탄! 유쾌하고 중독성 강한 역대급 코믹 액션 수사물의 탄생!’, 상상 그 이상의 극한 코미디가 탄생했다는 선전 문구가 결코 허풍이 아니었다. 영화관을 나서는 나의 발걸음이 무척이나 가벼웠다. 설날 같은 명절날 좋은 영화를 감상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고 명절이 가져다 준 보너스다.

(2019.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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