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말모이'와 선교사

2019.02.07 13:18

한성덕 조회 수:2

영화, ‘말모이’와 선교사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한성덕

 

 

 

 

  어렸을 때 유난히 큰 집은 조상의 덕이었다. 너른 마루 한쪽에 나락을 가득 담아놓은 뒤주, 넓은 마당의 작은 산 같은 두엄, 무궁화 울타리와 포도나무 밑의 촉촉함, 등은 모두 닭들의 모이 창구였다. 닭이 먹이를 모으는 일은 전혀 문제되지 않았음에도, 할아버지는 아침마다 ‘구구구’ 하시며 모이 주기를 잊지 않으셨다. 가끔은 나를 불러서 ‘닭 모이를 주라’고도 하셨다.

 며칠 전에 영화 ‘말모이’를 감상했다. 유년시절에만 닭을 키웠으니 그 뒤로는 ‘모이’라는 말을 사실상 잊고 살았다. 그런데 할아버지로부터 들었던 ‘닭 모이’란 말이 새삼스럽게 떠오르면서 ‘그 모이와 말모이가 같은가?’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영화가 매우 인상 깊었다는 뜻이다.  

  ‘말모이’는 ‘말을 모은다.’는 순 우리말이다. 영화의 대사에서 “말모이가 뭐야? 말모이인지 소모이인지!” 하면서 한바탕 웃는 장면이 나온다. 그 말이 동심을 건드려 할아버지가 떠오르면서 ‘닭 먹이’가 ‘닭 모이’라는 걸 알았다. 사전에서도 ‘모이’는 닭이나 날짐승의 먹이 등 사료라고 밝혀놓았다.

  말의 어원을 찾으려는 게 아니다. 목사로서 영화 ‘말모이’를 감상한 소감과 함께, 선교사들의 한글 사랑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작년(2018) 영화에서 사람들의 눈물샘을 가장 많이 자극한 작품이 ‘택시운전사’라면, 2019년을 가슴 아프게 할 눈물의 영화는 ‘말모이’가 아닐까 싶다. 물론 섣부른 결론일 수 있지만, ()이 많은 민족이어서 그만큼 사람들의 공감대를 얻고 있으며, 눈물에 약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영화 속의 1940년대는 우리민족사에서 혹독한 시련기였다. 한국의 해방을 감지라도 한 듯 조선을 가혹하게 다루었으니, 강점하려는 태도가 노골적이었다. 그 대표적인 게 ‘창씨개명’ ‘일본어 사용’ ‘단발령’이었다.

  영화 ‘말모이’는, 일본어 사용을 반박하는 내용이면서 한글의 가치와 우수성을 한껏 높였다. ‘진실’이 ‘사실’을 외면하는 시대의 억울함을 극적으로 표현한 영화였다. 한글 사랑에 따라붙는 고통을 어찌 다 말할 수 있으랴? 순간순간의 장면에서 그토록 눈물이 쏟아졌다. 아내와 딸, 그 옆 사람들까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뻔히 아는 사실이라 자칫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배우들의 열연과 적당한 해학(諧謔) 속에서 잔잔한 애국심을 끌어냈다. 더욱이 한글학회 회장이었던 허웅 선생께서 ‘말에는 얼이 있고, 그 얼이 빠진 우리 민족은 더 이상 ‘우리’란 있을 수 없다.’는 말이 퍽 인상 깊었다.  

  선교사들의 한글사랑은 총신대학교에서 배운 바요, 지방 신학교에서 ‘한국교회사’를 가르쳐 익히 알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선교사들의 최대 과제이자 선교전략은, 그 나라의 말과 글을 배우고 익히는데 있다. 우리 딸과 사위도 1년 반에 걸쳐서 영어로 말하고, 설교할 정도가 된 뒤에야 선교사로 떠났다. 그 나라에 들어가서는 2년 동안 언어습득에 전념했다.

 

 1985, 미국의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조선의 선교사로 입국했다. 그 중 언더우드는 5년 뒤에 ‘한영자전’과 ‘한영문법’ 사전을 잇달아 펴냈다. 한영문법은 영문으로 된 한국어 기초문법서다. 품사에 따라 문법을 체계적으로 기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것을 조선 땅에 온 선교사들이 교과서처럼 사용했으며, 입국한 지 3년이 되면 한글시험을 치르고, 낙제하면 무조건 귀국시켰을 정도로 강력한 한글정책을 폈다. 이 얼마나 고마운 분들인가?

  그 당시 캐나다사람인 ‘제임스 게일(James Gale)’ 선교사는 한글 전문가였다. 많은 선교사들이 ‘천하고 교정되어야 할 문화’, ‘스스로 일어 설 수 없는 빈곤한 정신을 가진 조선’이라고 말할 때, 그는 조선의 문화와 풍습을 존중하고, 그 토양에 맞게 일어서도록 도와준 선교사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게일 선교사는, 1895년 우리나라 최초로 ‘천로역정’을 한글로 번역했다. 1925년에는 ‘게일 번역 성경’을 한글로 출간하기도 했다.

  독립신문은, 1897424일자 기사에서 ‘조선 사람은 이 땅에서 몇 천 년을 살면서도 말을 규모 있게 배우지 못했는데, 외국교사(선교사)가 이런 책을 만들었으니 어찌 고맙지 아니하리오? 조선 사람은 누구든지 조선말이나 영어와 한문을 배우고 싶거든, 이 책을 사서 조선의 글자들을 어떻게 쓰는지 배우기를 바라노라’고 외치면서 게일선교사를 극찬했다.

  한글학회와 선교사들의 ‘한글사랑’이 맞물려, 일제하에서도 우리글과 말을 잊지 않았으니 한민족의 축복이다. 한글학회의 고통이야 그럴 수 있다지만 타국인은 어디 그런가? 그런데도 우리글을 존중히 여기고 사랑하며 지켰으니 선구자답다. 그 당시의 애국심을 눈여겨 볼 수 있는 대목들이다.

  영화에서는 한글학회 이야기로 가득하지만, 그 에못지않게 한글을 사랑하고 지켜준 분들이 선교사란 점을 밝히면서 그 이면의 애국자라 말하고 싶다.

                                                  (2019.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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