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모이

2019.02.09 13:04

정남숙 조회 수:2

말모이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정남숙

 

 

 

 

  '말 모아, 마음 모아, 우리말 사전, 한 번 해보자구요!'

 영화 '말모이' 포스터에 쓰인 문구다. 우리말 사용이 금지된 1940년대, 까막눈 판수(유해진)가 조선어학회 대표 정환(윤계상)을 만나 사전을 만들기 위해 비밀리에 전국의 우리말과 마음까지 모으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말모이>가 개봉(2019,1,9) 19일째 내가 본 27, 누적 관객 수 400만 명을 돌파할 것이라 하며 굳건한 흥행세를 이어가고 있다.

 

  200만 돌파를 맞아 <말모이>의 주역들이 감사인사를 했다. 유해진, 김홍파, 우현, 김태훈, 민진웅, 조현도, 엄유나 감독이 관객들을 향한 감사의 마음을 담은 인증샷을 공개해 눈길을 모았다. 공개된 사진에는 조선어학회 회원들이 전국의 말을 모은 것처럼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전국 각지 사투리로 적은 종이를 들고 있어 더욱 뜻이 깊었다. 표준어인 ‘감사합니다.’부터 ‘고맙드래요.(강원도), ‘감사혀유~(충청도), ‘감사합니데이’(경상도), ‘감사하당께’(전라도), ‘고맙수다’(제주도), ‘감사합네다.(함경도)까지. 전국 각지의 사투리와 각자의 개성 넘치는 표정으로 진심어린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었다.

 

  '말모이'는 주시경 선생이 한일합병 초기인 1911년에 시작했으나, 선생의 죽음으로 미완성으로 남은 최초의 국어사전 원고를 일컫는 말이다. 영화 속에서는 조선어학회가 사전을 만들고자 전국의 말을 모았던 비밀작전의 이름이기도 하다. 점점 더 극악해지는 일제의 감시망을 피해 조선어학회에 심부름꾼으로 취직한 까막눈 ‘판수’와 조선어학회 회원들을 주축으로 말을 모으는 과정은 그 자체로도 극적이며 흥미를 선사한다. 조선어학회의 심부름꾼이 된 까막눈 '판수' 역을 맡아 진솔하고 친근한 매력으로 캐릭터를 완성해낸 유해진과 조선어학회의 대표 '정환'역을 맡은 윤계상은 표현하기 쉽지 않은 시대의 지식인으로 완벽 변신한다.

 

 특히 유해진은 사전을 만드는 까막눈 주인공이라는 신선한 설정 속에 어떤 순간에도 웃음을 불어넣는 그만의 능력으로 지루할 틈 없이 적재적소에 재미를 자아낸다. 여기에 매 작품마다 강렬한 캐릭터로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김홍파와 우현이 조선어학회의 큰 어른 '조갑윤 선생'과 술과 사람을 사랑하는 시인 '임동익' 역을, 섬세한 감정 연기로 어느 역할이든 자연스럽게 표현해내는 김태훈, 김선영, 민진웅이 잡지책 '한글'의 기자 '박훈', '문당책방'의 주인 '구자영', 조선어학회 막내 회원 '민우철' 역을 맡아 우리말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모습이어서 극의 몰입을 더할 수 있었다.

 

 1910829일 한‧일합병이 되자 일제는 조선의 국권을 피탈하고 민족말살정책을 폈다.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등 각 분야에서 억압과 수탈을 자행하는 무단통치를 실시했다. 주시경 선생은 문명강대국은 모두 자국의 문자를 사용하고 있음을 깨닫고, 일본은 우리를 침략했으니 우리의 말과 글도 빼앗으려 할 것임을 알았다. 우리의 말과 글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통일되지 않은 말과 글을 모아 사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한 나라의 정신은 문화이고 문화를 지탱하는 것이 말이다. 제일 먼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이후 후손들은 한글을 하찮은 것으로 취급하여 수백 년이 지나도록 재정립에 소홀했던 것을 알고 사전(辭典)연찬작업을 시작하게 된다.

 

  조선어학회의 대표 '정환'을 연기한 윤계상의 외골수 연기는, 우리의 고유 말 '한글'을 지킨 건재(健齋) 정인승 선생의 실제성품과 닮았다고 한다. 전북의 자랑스러운 인물로 소개하고 있는 정인승선 생은 전라북도 장수태생으로 전북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신 분으로 전북대 교정에 조각상이 새워져 있다. 건재선생은 민족의 파멸을 막는 방법은 우리 고유의 말과 글인 한글을 지키는 것이라 판단하여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했다. ‘기미년 삼월일일 정오’ 삼일절 노래가사를 지으신 위당 정인보 선생에게 큰 감명을 받은 선생은 졸업 후 고등보통학교 교사로 일하면서도 한글 연구에 힘쓰셨다 한다.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이 극에 달했던 시대, 최현배 선생의 권유로 조선어학회에 가입. 주시경 선생이 못 다한 ‘한글 맞춤법 통일안’ 개정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나의 중학교 교과서에 최현배 선생이 지은 ‘말본’이 있었다. 외솔 최현배 선생의 ‘말본’은 1945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말본'은 국어의 문법 체계를 집대성한 한국어 문법책이다. 일제 식민지시대에 한글을 연구한 학자들은 단순히 학문적 차원의 문제를 뛰어 넘어, 민족차원의 문제라 생각했다. 빼앗긴 주권을 다시 찾았다는 의미의 광복(光復)은 단순한 해방이 아니었다. 생명을 잃어버린 분들이 태반이었고, 광복이후 겨우 살아남은 분들도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며 조선어학회 회원들이 다시 모였다. 압수당한 원고를 우연히 찾아 조선말 큰 사전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일본어가 아닌 한국어의 복권, 잃어버린 우리말을 되찾은 민족의 기쁨을 보여준다.

 

  ‘말모이’ 영화의 영상이 채 가라앉지 않은 흥분을 안고 국립한글박물관을 찾았다.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사전(辭典)의 재발견’ 전이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말사전의 탄생’, ‘외국인이 만든 조선말사전’ 등의 알림이 있고, 크고 작은 많은 사전들이 여기저기 놓여있었다. 사방 유리벽에 사전 속 내용을 그대로 옮겨 놓고 있어, 페이지를 넘기지 않아도 많은 낱말을 찾아 볼 수 있었다. 사전에는 옛말, 속담, 사투리와 같은 다양한 말들이 실려 있어, 사전은 낱낱의 말들을 켜켜이 모아둔 우리말의 보물창고로 시대와 지역을 아우르는 우리 문화가 담겨있어 ‘문화를 담은 곳집’이라는 말이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1940년대,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이 극에 달했던 시대의 경성을 무대로 한 '말모이'는 일제의 감시망을 피해 비밀리에 우리말을 모으는 '말모이' 작전을 통해 관객들의 마음속에 뜨거운 울림과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말은 민족의 단위를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이고, 말의 단위가 곧 민족의 단위이므로 우리말이 곧 우리 겨레다.’라고 말한 분도 있다. 일제 식민지시대에 한글을 비롯한 국학연구는 단순히 학문적 차원의 문제를 뛰어 넘는, 민족적 차원의 문제라 생각하며 우리말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는 쉽게 한글을 사용하고 있다. 조선어학회의 노력이나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 쓰고 있는 한글 맞춤법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글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쳐 일한 조선어학회의 회원들은 ‘언어가 있어야 곧 국가도 있다’고 생각했던 독립운동가들이었다. 조선어학회가 추진하던 <조선말큰사전>, 주시경 선생이 한일합병 초기인 1911년에 시작한 이후, 1957년 마지막 6권을 출간하기까지 46년 만에 마무리되어 완성한 우리민족의 존엄을 대내외에 드러낸 쾌거라 할 수 있다. 국어사전의 모범이 되었고, 국어의 발달에 커다란 기여를 한 ‘말모이’는 어린아이로부터 어른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는 뜨거운 공감을 공유하게 한다.

 

   영화 속에는  사실이 아닌 것도 있겠지만, 그 당시 그러한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을 알 수 있게 해준 ‘우리말을 모으다.’는 국민영화인 것 같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요상한 말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은 극중 인물들에게 조금 미안하지 않을까 싶다. 조선어학회 대표 ‘류정환’ 역할을 맡은 윤계상과 ‘판수’의 귀요미 딸 ‘순희’ 역할을 맡아 관객들의 뜨거운 사랑을 얻고 있는 박예나가 자신의 얼굴이 그려진 그림을 들고 감사인사를 한다. 나도 ‘한글을 아끼고 사랑해야지’ 하고 다짐해 보았다.

                                                                      (2019.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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