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한마디

2019.02.12 16:41

한성덕 조회 수:5

그 한마디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한성덕

 

 

 

 

  나는 운동이라면, 육상을 비롯한 갖가지 구기 종목에서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것으로 족하게 여긴다. 좋아하는 운동순위를 정하라면 축구, 배구, 탁구, 야구 순이다.

  요즘은 배구시즌이어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그 시간에 맞춰 배구경기 중계를 시청한다. 좋아하는 팀의 순위를 매길 때 첫째는 현대캐피탈이요, 다음은 대한항공, 오케이 저축은행, 우리카드 순위로 이어진다.

  누가 ‘나는 대한항공을 좋아하는데, 왜 당신은 현대캐피탈이냐?’고 묻는다면 선수보다 감독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연고지는 전북전주가 아니고 충남천안이다. 외국인선수 파다르나, 꽃미남 문성민 선수 때문이 아니다. 돈이 궁해 전전긍긍할 때 캐피탈에서 쉽게 대출받았나? 그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면 자회사가 든든한 구단이어서 부도날 리 없다는 ‘안심논리’ 때문인가? 그야 뭐 든든하긴 타구단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실은, 특정한 선수에게 매료돼 그를 좋아하는 팬들 때문에 구단이 운영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좋아하는 선수에게 집중돼 울고 웃으며 펄쩍펄쩍 뛰다보면, 덩달아 팀까지 좋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않는가?

  큰딸 송이는 운동에 별 취미가 없었지만, 축구 서정원 선수를 그렇게도 좋아했다. 결국은 그가 속한 팀까지 좋아해 어쩔 줄 몰라하며 방방 뜨곤 했었다. 둘째딸 샛별이 역시 축구선수를 좋아했는데, 언니와는 달리 홍명보 선수였다. 그가 그라운드에 나타나면 난리법석을 피웠다. 결혼까지 한다고 했으니 알만하지 않는가? 어쩌다 딸들 방에 들어가면 서정원과 홍명보선수가 갖은 폼을 취하며 소리쳤다. ‘아빠는 날 좋아하지 않느냐?’고 말이다. 사진 속 두 선수의 별별 포즈들이 빼곡하게 있어서 하는 말이다.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아 시들하더니, 지금은 좋은 남자들과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    

  나도 한 때는 축구선수 차범근에게 끌려 무작정 좋아했던 적이 있었다. 왠지 이제는 선수보다 감독에게 더 시선이 쏠린다. 물론 그 만큼 성숙한 면도 있지만 나이든 탓이리라. 프로 배구에서도 현대캐피탈을 좋아하게 된 이유라면 선수보다 감독의 영향이다.

  대한항공의 박기원 감독은 노련미를 갖춘 탁월한 지도자요, 삼성의 신치용 감독은 오랫동안 팀을 이끌면서 많은 우승을 차지했던 명망가다. 이전의 현대 김호철 감독은 이기고 지는 것을 극적으로 표현해 웃음의 전령사 같은 지도자로 느꼈는데, 우리카드의 신영철 감독은 예리한 통찰력으로 팀을 상승시키는 지략가다. 그야말로 한국배구를 좌지우지하는 쟁쟁한 분들이다.

  그 분들에 비하여 현대 캐피탈 최태웅 감독은 어떤가? 2015년 시즌을 마치고 감독이 되었을 때의 나이가 39살이었다. 최연소뿐 아니라 코치도 거치지 않은 선수가 사령탑에 올랐으니 새내기였다. 현대구단은, ‘한국 배구계의 차세대 지도자 1순위로 꼽혔다’는 사실에 고무돼 감독으로 영입했다는 이유를 명쾌하게 밝혔다. 당연히 모험이라고 생각했지만 잘하고 있지 않는가?

 

  내가 본 감독 최태웅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이 없다. 선수들을 바라보는 눈, 큰 눈을 껌벅거리며 지시하는 말, 실수한 선수에게 넌지시 던지는 미소, 메모판을 늘 들고 있는 학구적 태도, 서둘거나 다그치지 않는 차분함, 극적으로 이긴 순간에도 잔잔한 박수 몇 번으로 끝나는 냉철함속에서 상대팀을 배려하는 마음을 보았다. 그리고 선수들을 책망하는 눈빛이나 언사를 본 적이 없다. 그 의젓함에 꽂혀 감독 최태웅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선수를 잘 키우고 있으니 나무랄 데 없는 감독이다.  

  얼마 전 현대캐피털 세터 이승원을 쉬게 하고, 신인 이원중 선수를 기용한 적이 있었다. 매 경기마다 덜 중요한 경기가 어디 있으랴마는, 승리한 뒤 세터 이원중 선수의 인터뷰가 있었다. 첫마디가, ‘너는 신인이 장점이니까 마음껏 해 보라’는 감독님 말씀에 ‘부담이 없어서 이긴 것 같다’고 했다.

  만약, ‘너에게 좋은 기회니까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했더라면 신인선수로서 얼마나 부담이 컸을까. ‘신인이 장점’이라는 말 한마디가 당찬 용기를 갖게 했으며, 그건 신인에게는 황금의 조언이었다. 그 선수로서는 평생 잊지 못할 명언이 아닐까 싶다.  

 한마디의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익히 알고 있지만, 신인 선수의 혼을 달구었던 최 감독의 말, ‘너는 신인이 장점’ 이라는 그 한마디가 내 가슴을 퍽 울렁거리게 했다. 전부터 최 감독을 좋아해서 눈여겨 본 바 있지만, 이원중 선수에게 한 말 때문에 최 감독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2019.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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