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래가 된 낙엽

2019.02.13 04:35

곽창선 조회 수:4

술래가    낙 엽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곽 창 선

 

 

 

 갑작스런 이상 기온으로 바람 끝이 매서워졌다. 아름답던 단지에 수놓인 단풍잎들이 바람이 불 때마다 우수수 떨어진다. 추풍낙엽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단풍나무 밑엔 오색 실크 카펫, 은행나무 밑에는 노오란 잎이 비단이불을 깔아 놓은 듯 아늑한 모습이다. 낙엽들은 오솔길과 주차장을 덮고 있다. 빗자루를 든 아저씨들이 낙엽을 쓸지만 그때뿐 낙엽은 다시 쌓인다. 구슬땀을 흘리는 아저씨가 힘들어 보인다. 오죽하면 나무에 달린 잎을 흔들어 떨어뜨릴까? 단풍잎을 즐기던 나는 순간 아저씨들이 야속했다. 쉴 새 없이 쓸고 있는 경비원 아저씨와 내 입장이 서로 다를 뿐 느끼는 아름다움은 같을 것이다. 세상사 묘한 아이러니다.

 

 나의 기다림은 아름다운 단풍을 보는 것이요, 관리원 아저씨는 낙엽을 쓸어야 하니 생각이 같을 수 없다. 기대 또한 입장에 따라 다르다. 각각의 처지와 환경에 따라 기준이 다를 뿐이다. 잠깐 피었다 지는 꽃들의 화려함보다 봄부터 가을까지 동행할 수 있는 나뭇잎이 나에게는 기대의 대상이다. 기다림이란 설렘과 기쁨의 시간이다.

 지난 12월 앞산에 올라 양지 바른 곳에서 홀로 남은 낙엽 한 장에 눈길이 끌렸다. 고운 빛 가신 채, 홀로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해 몸부림친다. 그 아름답던 자태는 간데없고 말라 비틀어진 채 바람 앞에서 벌벌 떤다. 왜 모두 떠난 자리에서 저리 고생할까? 어찌 보면 인생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저리다.        

 

 요즘 날씨는 실내에서 활동하기에는 알맞은데 밖에 나가면 바람의 영향으로 웅크려 진다. 전형적인 초봄의 몸짓이다. 햇볕이 따스해지면 휴면기를 거친 나무들의 탄소동화작용이 시작된다. 뿌리를 통해 물과 양분을 받아서 햇볕 속에 얻어진 탄산가스와 어울려 탄수화물을 생성하게 된다. 이때는 뿌리에서 올라오는 물과 양분을 축적하고 찌꺼기는(산소) 버리고 필요한 탄소를 받아들이는 통로가 필요해 진다. 추위에 닫혔던 뗄켜가 열리며 잎이 움터 오른다.  잎은 엽록소를 품어 햇살을 받아 광합성을 통해 에너지를 만든다. 동물은 필요한 에너지를 얻기 위해 먹이를 구하지만 나무는 뿌리에서 얻은 물과 양분을 줄기와 물관을 통해 잎으로 보내고 잎에서 광합성으로 만든 탄수화물을 필요한 곳에 보내 나무의 성장을 돕는다. 나무에서 영양분이 제일 많은 곳은 잎이다. 많은 영양분이 쌓이면서 엽록소가 짙어지며 푸른 숲을 이룬다.  

 

 검붉게 짙어지는 숲을 보면 가을이 다가 옴을 느낀다. 점점 깊게 짙어진 잎에 안토시안 색소가 생성되며 잎 속에 엽록소가 줄어들며 서서히 탄소동화작용과 신진대사가 멈추며 겨우살이가 시작된다. 성장이 멈추면 병균의 침투나 당분이 빠져 나가는 통로인 잎을 떨쳐냄으로써 영양분과 물 빠짐을 스스로 막아 준다. 이 때 떨켜작용으로 잎이 가지로부터 떨어지는데 이것을 낙엽이라 부른다. 바짝 말라버린 잎은 잔잔한 바람에도 몸을 뒤척인다. 가지에 기대기에도 너무 힘들어 보인다. 이슬의 무게에도 버거운 듯 함초롬히 젖은 모습이 안쓰럽다. 남김없이 버린 나무들은 잎을 떨어뜨리는 순간 새로운 탄생을 알리며 부활의 길을 걷게 된다. 나무가 잎을 떨어뜨리는 것은 ‘한 몸에 삶과 죽음을 동시에 지녔기’ 때문이리라. 음영과 윤기와 색채가 퇴색해 가며 초록이 자취를 감추어 버리면 산야는 꿈을 잃고 앙상한 나뭇가지는 하늘만 바라본다.

 

 홀딱 벗은 나무를 보며 또 다른 숲을 기다리는 것은 성급한 내 성미 탓이다. 나뭇잎은 본향인 흙으로 돌아가려고 몸부림을 친다. 산은 적막이 흐르고 황량해진다.

 

 어느덧 내 인생의 노을 길도 깊어지고 있다. 늘 푸르던 잎새들의 당당함도, 기백도, 소멸되어 가듯, 내 삶에 풍요를 노래하고 싶은 욕망도 사라져 간다. 세파를 헤치며 희망을 뿜어내던 용기와 환희의 함성도 이제 빛을 잃었다. 점점 노을 길은 서쪽하늘 붉은 늪으로 떠밀려 가고 있다. 얼마 되지 않아서 짙게 깔린 어둠이 오리라. 하얗게 내리는 무서리에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처럼 모든 욕망이나 아집, 권세와 부귀영화도, 덧없이 흐르는 빛바랜 자화상이다. 한 시절 황홀했던 빛깔도 매혹의 향기도 체내에 힘차게 흐르던 맑은 피도 검붉게 변해 버렸다. 이제 뱃속에 들어온 음식물을 체내에서 취사선택 후 버리듯 마음에 욕심과 아집도 걸러 버려야 한다. 삶 속에 쌓인 묵은 찌꺼기가 좀 많은가? 쌓아두고 보니 모두 헛되고 무망한 것들이다. 무슨 미련 때문에 붙들고 있는가? 욕심 때문인가? 나무에게서 배운다. 버릴 것은 버리고 비울 것은 비우면 가벼워진다는 것을.

 낙엽은 발에 밟히면 사각사각 가위소리를 낸다. 욕심을 버린 가벼움에서 오는 몸짓이요, 썩어져서 새 생명의 젖줄이 된다는 희망의 소리다. 삶속에 번뇌와 욕심을 버리지 못하면 자유로움이나 아름다운 행복을 꿈 꿀 수 없다. 나무처럼 비우면서 넉넉해지는 황혼을 맞이하자. 진정 깊은 향기는 모든 것을 비울 때 더욱 짙게 풍긴다. 초록의 환상은 묻어두면 다시 피어날 희망이다. 모두 버리고 산야를 지키는 나무들의 겨울나기는 새로운 희망을 꽃 피우는 기다림이리라. 모든 세상사世上事 돌고 다시 도는 윤회輪의 술래잡기가 아닌가?

                                                                  (2019. 2. 12.)

 

 

◎떨켜= 꽃등 각 기관의 기부(basement)에 발달된 이층에서 분리되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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