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기

2019.02.17 04:41

전용창 조회 수:2

온기(溫氣)

꽃밭정이 수필문학회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전 용 창

 

  "사과 사세요. 사과 한 보따리에 5천원입니다. 귤 사세요. 귤 한 보따리도 5천원입니다." 사과와 귤을 사라는 아줌마의 목소리가 차가운 겨울 골목길을 가로지른다. 가느다랗게 들렸는데 어느새 귓가에 가깝게 들린다. 뒤돌아보니 하늘색 천막으로 포장을 한 화물차가 다가온다. 한 보따리에 5천원이면 참으로 싸다. 순간 나는 “사장님, 사장님!” 외치고 손짓을 하며 달려가서 차를 세웠다. 운전석에서 60대 초반의 부담한 아줌마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문을 열었다. 사장님이 내려왔는데도 화물차에서는 "사과 사세요. 사과 한 보따리에 5천원입니다…."라고 메아리치고 있었다. 세상은 참 좋아졌다. 녹음된 사장님의 목소리는 혼자서 반복하여 외치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어릴 적에 시골 골목길을 떠돌며 “찹쌀떡이나 메밀묵 사세요!” 외치던 어르신은 얼마나 춥고 목이 아프셨을까?

 

 “사장님, 5천원어치만 주세요.

 “네, 고마워요!

아줌마는 날씨가 차가우니 사람들이 나오지 않는다며 여간 반가운 기색이 아니었다. 차 안쪽에는 아직 뜯지 않은 박스가 여러 개 있었고, 입구에는 사과와 귤이 큰 것과 작은 것으로 구별되어 놓여있었다. 과도와 껍질이 담긴 비닐봉지도 있었다.

 “사장님, 귤 한 번 맛보세요.

귤 하나를 집어서 건네준다. 껍질을 벗겨 한 조각을 입에 넣어봤다. 시지도 않고 꿀맛이었다.

 

 “사장님 하나 더 싸주세요!

 “귤은 쉽게 상하니 드시고 또 사세요.

 “아니에요, 맛이 있어서 누나한테도 한 봉지 주려고요.

 “네 그래요?

 “사장님은 어디 어디를 돌고 다니세요?

평화동복지관과 코오롱아파트 주변을 두어 바퀴 돌고는 코롱아파트 후문 길가에 세워둔다고 했다. 그리고 오후에는 삼천도서관 앞 도로에서 판매하다가 퇴근길에는 장승백이 주공 아파트 쪽으로 간다고 했다. 서민이 서민의 심정을 안다며 서민아파트 근처로 가야 그래도 조금은 팔린다고 했다.

 “사장님 많이 춥지요?

 “추운 것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런데 잠시 배달 나갔다 오는 사이 불법주차 단속차가 지나가기라도 하면 4만원짜리 과태료 쪽지가 날아와요. 그러면 그날은 일당이 다 날아가고 몸에서 찬바람이 나요.

주차공간은 확충하지도 않으면서 단속거리만 찾아다니는 행정당국이 미웠다. 사장님은 서비스라며 두 개의 비닐봉지에 각각 3개의 귤을 덤으로 넣어주었다. 내가 그곳을 떠나는데 아줌마의 고맙다는 인사는 나의 뒤에서 여운처럼 울리고 있었다. 얼마나 남는다고 저리도 감사를 표하실까? 대형마트에서는 와도 그만 가도 그만인데….

 

 그리고 난 뒤 어느 날 동네 어귀의 채소가게에 들렀다. 말이 가게이지 노점상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 정문 앞 큰길과 골목길이 만나는 구석진 곳이 채소가게 여사장님 삶의 터전이다. 한 평도 채 안 되는 곳에 막대기를 세워 천막으로 눈비만 가릴 수 있게 해 놓은 게 전부다. 그곳에는 대파, , 당근, 호박, 오이, 콩나물 등 싱싱한 채소가 종류별로 놓여있다. 한 번은 그곳에 가서 대파와 무 그리고 호박을 사고 값을 물으니 8,500원이라고 했다. 동전까지 다해도 500원이 부족했다.

 “사장님 500원이 부족해요. 호박 하나는 빼주세요.

 “다음에 오실 때 주세요.

 “내가 어디 산다고 그러세요?

하니 내 얼굴 모습이 선하게 보인다고 했다.

 

 

 나는 한 달가까이 채소가게 외상값을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찾아갔다. 먼저 외상값을 바로 주지 못하여 미안하다며 건네주고 양배추와 상추, 호박, 그리고 대파를 샀다. 그런데 2,500원 하는 양배추는 2,000원에 주고 1,500원 하는 호박은 1,000원에 주고 대파도 천 원을 깎아 주며 이렇게 다시 찾아온 것만 해도 감사하다고 했다.

 “너무나 깎아 주어서 손해는 안 봐요? 정당하게 받으셔야지요.

 “아닙니다. 이렇게 다시 찾아와 주신 것만 해도 얼마나 고마운데요?

나는 그분의 마음이 너무도 감사해서 추가로 시금치까지 샀다. 그곳 채소가게는 노부부가 장사를 하는데 아저씨는 안쪽에서 조그만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다가 주문을 하면 비닐로 덮어놓은 싱싱한 채소를 꺼내 주는 일만 하고 손님과는 일체 말을 건네지 않고, 상냥한 아줌마가 손님과 대화를 하며 판매를 전담한다.

 “찬 바람을 막을 가리개도 없어서 얼마나 추워요?

 “손님만 많이 오면 추운 것은 상관없어요.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고 아줌마는

 “다음에 또 오세요.”라는 말을 남겼다.

 

 집으로 오는 길에 채소가게 아줌마와 과일가게 아줌마의 친절한 모습이 번갈아 가며 떠올랐다. 5천 원에 한 보따리를 주고도 덤으로 3개를 더 담아주는 과일가게 아줌마의 온정, 외상값을 주려고 다시 찾아온 손님에게 단골이 생겼다며 반기며 본전도 안 되게 에누리를 해주고도 친절을 다하는 이웃이 있기에 한겨울의 매서운 한파도 따스한 온기(溫氣)로 이겨낼 수 있었다.

                                         (2019.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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