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으로 초대해 주는 여심

2019.02.27 05:48

곽창선 조회 수:4

행복으로 초대해 주는 여심(女心)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곽창선

 

 

 

 

 꿈속에서 ‘나는 행복 합니다.’란 노래를 기분 좋게 부르는데 깨우는 바람에 눈을 떴다. 자다가 웬 노래냐며 힐난했다. 시계를 보니 밤 10시가 조금 넘긴 시각이다. 일생을 통해서 그렇게 즐겁게 흥얼거려 본 적이 없었다. 무엇에 홀린 듯 몽롱한 기분이 들었다. 왜 그랬을까? 일상사를 돌아보았다.

 

 요즘 종종 지난 삶의 자취를 뒤돌아 보는 습관이 생겼다. 명상에 젖기도 하고 글을 써 보기도 한다. 태어나서 하고 싶었던 일과 할 수 있었던 일 사이에서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는지 되돌아 본다. 유년시절을 지나며 삶의 양식과 지혜를 배웠고, 경쟁 속에서 뒤지지 않는 방법과 처절한 패배도 맛보았다. 30대에 가정을 이루며 식솔들을 책임져야 하는 무한 책임에, 쫒고 쫒기다가 어느덧 황혼에 이르니 초라하기 그지없는 자화상만 남았을 뿐이다.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룬 게 없다. 도대체 무엇을 하며 살아 왔나 생각하니 답답함을 달랠 길이 없다.

 

 이제부터 남은 생, 건전한 삶속에서 행복해지고 싶고, 이타심利他心을 길러 이웃과 격의 없이 어울려 살고 싶다. 틈이 나면 여가를 선용하며 이웃과 함께 보내고 싶다. 즐기는 방법은 보고, 듣고, 배워 노하우가 풍부하지만 현실 앞에 서면 돌이킬 수 없는 후회가 뒤따를 때도 있다. 이기심을 버리고 이타심을 길러야 하는데, 살다보면 어느덧 이기심에 빠지고 말기 때문이다. 선의로 행한 것이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하기도 한다. 행복은 혼자 이룰 수 없는 것 같다. 행복의 가치는 주어지는 상대가 있고 거기서 어울려 얻어지는 자기만족이 있다. 자기 몫을 챙기려하지 않고 나누려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흡족함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복감이 나에겐 쉽게 다가오지 않으니 왜 그럴까? 그것은 아직도 버리지 못한 미련 때문이다. 나누려는 배려심이 부족한 탓이다  

 

 수요일 수필 수업을 마치고 허름한 백반집으로 간다. 밥상을 마주하고 옹기종기 모여 앉으면 사랑방처럼 훈훈한 사람 냄새가 난다. 산전수전 다 경험한 노익장들과 세상사를 나누며 식사를 하다 보면 새로움을 깨닫는다. 식사 후에는 정년을 마치고 수필반에서 같이 배우는 여심의 배려로 후식이 제공된다. 식사 후에 주어지는 밀감은 모두의 가슴에 담아주는 소화제 이상이다. 손에 들려주는 정성 때문에 모두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녀는 항상 조용하고 은근한 말씨에 세심한 배려가 몸에 배었다. 집에 찾아오는 들고양이를 주려고 먹다 남은 생선뼈를 주섬주섬 모을 때는 정이 많은 소박한 촌부의 모습이다. 얼굴 표정은 마냥 즐겁기만 하다. 요즘에 버려져 갈 곳을 잃은 길거리 동물들도 많다. 그들은 흉물로 퇴락하여 주위의 기피 대상이다. 그런 들고양이들의 춥고 배고품을 달래 주려고 주섬주섬 챙기는 그 정성, 그것은 곧 행복을 부르는 천사의 손짓이다. 그녀를 기다리는 들고양이 앞에 소중히 들고 간 양식을 나눌 때 들고양이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그것은 어미가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바라보는 심정이리라. 또 백년지기의 심기를 헤아려가며 13역을 소화해 가는 삶의 지혜는 뭇 남성들의 가슴에 동경의 꽃씨를 심어 준다. 참 요즘 보기 드문 사랑의 불쏘시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최대의 행복은 인격이라 했다. 누구나 바라는 것이 있다면 행복이다. 인격을 쌓으며 수련하며 이웃과 나눌 수 있는 마음에서 여유를 찾으라 했다.

 

 미국의 부호 카네기는 돈 많은 부자라는 소리 대신 이웃에게 정을 많이 베푼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다고 했단다. 행복을 느끼는 대상은 물적, 지적, 인적으로 수없이 많으나 결국 받으려는 것보다 베풂에서 얻어지는 보람이 곧 행복이 아닌가 싶다.

 

 사랑은 받는 것보다 사랑하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어느 시 구절이 생각난다. 사랑을 하면 예뻐진다는 유행가도 있다. 여기서 베푸는 것이 큰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밀감에서 기쁨을 얻었고, 고양이의 배고픔을 헤아리는 여심에서 사랑을 배우며 행복을 찾아가는 지름길을 배웠다. 이렇게 행복의 길을 찾으려는 간절함이 은연 중, 잠결에 노래를 부르게 된 것 같다.  

 

                                                            (2019.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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