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임새

2019.02.28 04:47

김학철 조회 수:7

[금요수필] 추임새

 


김학철김학철

국악인 박동진 명창이 언젠가 TV에 나와 “우리 몸에는 우리 것이 제일 좋은 것이여∼”라고 우리 먹거리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일이 있었다. 이렇듯 나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입으로 먹는 먹거리처럼 귀로 듣는 소리 역시 우리 소리가 들을수록 가슴에 와 닿게 되었다. 우리 소리는 언제 들어도 뚝배기에서 끓고 있는 구수한 된장찌개 맛이 난다.

며칠 전 어느 수필문예지 출판기념회에서 여류수필가가 <흥보가>를 불렀다. 판소리에서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 주연이라면 고수는 조연이다. 그리고 관객들은 판소리 사이사이에 흥을 돋구기 위해 고수가 북을 치며 ‘얼씨구-’ 또는 ‘좋고-’ ‘좋지-’, 아니면 ‘으이-’ 따위의 ‘추임새’를 넣는다.

이런 조흥사助興詞나 감탄사인 추임새는 소리를 하는 사람에게는 신이 나는 일이고, 관객은 관객대로 흥이 나는 일이다. 소리를 하는 사람이 김장철의 배추라면 고수는 양념이다. 배추와 양념이 제대로 버무려져야 맛깔스런 김치가 되는 것처럼 소리꾼과 고수가 일심동체가 될 때 완벽한 판소리가 되기도 한다.

고수 없이 소리를 하는 사람 혼자서 8∼9시간이란 긴 시간 동안 완창 한다는 것은 맥이 빠지고 지루한 일이다. 이는 소리를 하는 사람에게는 마치 드넓은 사막을 홀로 걸어가는 기분일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그런데 이번 기념회에서는 소리꾼은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이고 전문고수도 없었다. 다만 많은 참석자들 중 남자수필가 5∼6명만이 소리를 하는 사이사이 추임새를 넣은 것이다. 다행히도 그 수필가가 부른 흥보가는 맛깔스럽고 추임새가 잘 어우러져 행사장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

생각해 보면 ‘추임새’는 소리를 할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가령 성악가나 대중가수가 노래를 부를 때 박수를 치거나 환호하는 것도 일종의 추임새다. 또한 어린 아이가 착한 일을 했을 때 칭찬해 준다거나 또는 얼굴 없는 천사가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고 성금을 내는 일, 김밥할머니가 평생 고생해서 번 전 재산을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쾌척하는 일 등으로 사회적 찬사를 받는 일도 추임새다. 우리 사회 곳곳에 추임새는 널려 있다.

얼마 전 문우들과 함께 음식점에 갔을 때 밥을 먹다가 보니 반찬 그릇마다 비어 주인에게 추가반찬을 청하며 “반찬이 너무 맛있어 동이 났습니다. 앞으로는 맛있게 만들지 마세요.”라며 빈 반찬 그릇을 내밀었다. 그랬더니 맛있다는 말에 기분이 좋았던지 싱글벙글하며 반찬과 더불어 부침개 한 접시를 더 갖다 주었다. 이 또한 추임새의 덕을 본 셈이다.

나는 지금까지 세상을 살면서 남에 대해 험담이나 흉보는 일에는 익숙해져 있지만 칭찬하는 데는 인색하게 살아왔다. 선행을 하는 사람을 보고도 못 본 체하거나 그 순간에는 감동하다가도 곧 잊어버리는 일이 많았다. 인간 세상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각종 험한 사건, 사고가 터진다. 단 하루도 평안한 날이 없다. 저렇듯 바쁘고 복잡하며 불안한 삶에 정말 필요한 것은 추임새가 아닐까?

‘의식적인 추임새’나 ‘무의식적인 추임새’는 자주자주 넣어야 한다. 이는 소리를 하는 사람에게는 힘이 빠졌을 때 힘을 받쳐주기 위한 것이거나, 강약을 보좌해 주거나, 소리의 공간을 메워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추임새가 들어가는 곳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고수의 감각에 의해서 적절한 때에 적절한 추임새를 넣는 것처럼, 또 소리꾼과 고수의 호흡이 잘 맞을수록 좋은 소리가 나오는 것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추임새야 말로 인간의 마음을 바르게 하거나 밝은 사회로 나가게 하는 지름길이 아닐는지.

진정한 추임새는 곧 흥이고 칭찬이자 격려다.

 

* 김학철 수필가는 2013년 ‘대한문학’으로 등단했다. 전북문인협회 이사, 영호남수필문학회·한국미술협회 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댓글 0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07 행복 중독 백남인 2019.03.11 55
506 훈육과 편견 사이에서 길을 잃다 김성은 2019.03.10 16
505 쥐불놀이 구연식 2019.03.10 37
504 정정애 수필집 발문 김학 2019.03.09 52
503 두물머리 물처럼 나인구 2019.03.09 5
502 배째라이즘 권천학 2019.03.08 4
501 악성 배째라이스트들 권천학 2019.03.08 2
500 복수초 김세명 2019.03.08 4
499 고향 어르신들의 축제 김재원 2019.03.08 3
498 3월이 오면 한성덕 2019.03.08 8
497 곰같은 남편과 여우같은 아내 황복숙 2019.03.06 18
496 창고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책 김창임 2019.03.05 4
495 탁구장에서 백남인 2019.03.05 2
494 너도 바람꽃 백승훈 2019.03.05 3
» 추임새 김학철 2019.02.28 7
492 [김학 행복통장(72)] 김학 2019.02.27 6
491 [김학 행복통장(73)] 김학 2019.02.27 6
490 내 고향은 전주 김용권 2019.02.27 9
489 행복으로 초대해 주는 여심 곽창선 2019.02.27 4
488 뒤늦은 사과 정근식 2019.02.27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