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장에서

2019.03.05 17:12

백남인 조회 수:2

탁구장에서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백남인

 

 

 

 

  인간이 존재하는 곳에는 경쟁이 있고, 승자와 패자가 있다. 우리는 거의 운동경기장에서 그런 광경을 쉽게 보기 때문에 승부의 세계는 운동경기에서 일어나는 일을 많이 떠올리게 한다.

  우리 아파트에는 아담한 탁구장이 있다. 2001년 입주하던 봄,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 구성원으로서 나는 체육분과를 담당하여 첫 업무로 탁구교실 개설을 추진했다. 그러다보니 그 때부터 지금까지 세 차례에 걸쳐 10여 년 동안 회장을 역임하면서 탁구와 인연이 깊어졌다.

  처음엔 관리소 3층의 좁은 공간에 탁구대 한 대를 겨우 들여와 회원 10여 명을 모집하여 운영해 오다가 4년 전부터는 관리소 지하공간을 이용하여 시청에 예산을 요구하여 바닥공사부터 천장과 벽면을 정비하고 조명시설을 비롯하여 서브로봇까지 설치하고 탁구대 다섯 대를 들여와 회원도 30여 명을 확보하여 그럴 듯한 면모를 갖추었다.

  매일 저녁 7시 반부터 모이기 시작한 회원들은 서브로봇을 이용하여 갖가지 기량을 다지기도 하고, 회원끼리 기본기를 연습하기도 하는데, 8시경이면 10여 명이 모여 개인경기 또는 복식경기를 하게 된다. 오늘은 3월 첫 토요일, 월례회 날이어서 여느 때보다 많은 회원이 모였다. 언제나처럼 편을 갈라 경기를 했다.

  경기를 할 때마다 보아오고 느낀 것이지마는 탁구경기를 하면 반드시 승자와 패자가 생긴다. 시합을 하기 전부터 승자와 패자는 정해져 있다. 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두 팀의 실력을 비교해볼 때 조금이라도 실력 차이가 나게 마련이다. 상대편의 실수나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우연한 기적이 일어나 예상 밖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긴 하다. 그렇지만 그러한 경우는 그리 흔한 게 아니고 대개는 실력대로 결과가 나온다.  

  개인과 개인끼리 경기를 하여서 지게 되면 스트레스를 받거나 자존심이 상하기도 한다. 이기면 우쭐한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 그것은 잠시이고 곧 상대에게 괜히 미안하고, 상대에 따라서는 원한을 사기도 한다. 겨루기를 하면 반드시 한쪽은 이기고 한쪽은 지기 마련이다. 경기를 계속하다 보면 라이벌 의식이 생기게 된다. 선의의 라이벌 의식은 개인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할 수도 있다. 다음 기회에 그 상대와 겨루게 되면 이겨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연습을 부지런히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젊고 발랄하고 연습을 열심히 하는 한 회원이 나와 개인경기를 한 번 해보자고 여러 번 말했지만, 내가 이겨도 미안하고, 지면 기분이 덜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미루어 왔는데, 다른 회원들이 오지 않아 단 둘이만 있는 어느 날 시합을 했다. 나는 그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해 온 터인데, 의외로 30으로 내가 이겼다. 나도 그도 어이가 없었다. 물론 내가 부족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전심전력으로 시합에 임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 뒤로 그와는 시합을 하지 않고 있는데, 나에게 라이벌 의식을 느끼면서 아마 그는 어디에선가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복식경기를 많이 하는 편인데, 그날그날 모인 회원들을 두 명씩 탐을 짜서 시합을 하게 된다. 자기보다 기량이 모자란 회원이 한 편이 되었을 때 불평스런 표정을 짓는 회원도 더러 있다. 그렇지 않아도 위축된 짝꿍의 심정을 헤아리는 아량이 아쉽다. 그보다는 져도 괜찮으니 한 수 배운다는 심정으로 열심히 하자고 격려하면 그 짝꿍은 최선을 다하여 경기에 임할 것이다.

  오늘도 복식경기를 하는 동안 나의 짝꿍이 불만을 표하는 것을 보았다. 그렇지만 내 실력이 금방 달라질 수 있는 것도 아니므로 참으면서 최선을 다하기는 했으나 최고의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음은 분명하다.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경기하는 동안 마음이 편치 못했기 때문이다.  

  기량이 딸린 선수는 항상 심정이 괴로움을 이해해야 될 것이다. 경기 결과가 안 좋으면 자기 때문에 진 것처럼 생각되고, 결과가 좋으면 기량이 앞선 짝꿍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영원한 승자는 없다. 그리고 영원한 패자도 없다. 지금은 비록 기량이 딸리지만 어느 날엔가는 입장이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젊은 사람들은 나이 많은 사람보다 가소성(可塑性)이 커서 발전의 속도가 빠르고 적응도 잘한다.

  경기가 끝나고 나면 승자와 패자가 있기 마련인데, 승자는 패자의 심정을 헤아려 너무 우쭐해하지 말고 겸손하게 패자를 위로하고, 패자는 진지하게 패인을 되돌아보고 깨닫는 계기로 삼는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일까. 이겼다고 오만하지 않고 졌다고 비굴하지 않는 모습을 보일 때 이곳은 인격수양과 함께 행복을 확인하며 추억을 쌓아가는 도장이 될 것이다.  

                         (2019. 3. 2.)

 

 

댓글 0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07 행복 중독 백남인 2019.03.11 55
506 훈육과 편견 사이에서 길을 잃다 김성은 2019.03.10 16
505 쥐불놀이 구연식 2019.03.10 37
504 정정애 수필집 발문 김학 2019.03.09 52
503 두물머리 물처럼 나인구 2019.03.09 5
502 배째라이즘 권천학 2019.03.08 4
501 악성 배째라이스트들 권천학 2019.03.08 2
500 복수초 김세명 2019.03.08 4
499 고향 어르신들의 축제 김재원 2019.03.08 3
498 3월이 오면 한성덕 2019.03.08 8
497 곰같은 남편과 여우같은 아내 황복숙 2019.03.06 18
496 창고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책 김창임 2019.03.05 4
» 탁구장에서 백남인 2019.03.05 2
494 너도 바람꽃 백승훈 2019.03.05 3
493 추임새 김학철 2019.02.28 7
492 [김학 행복통장(72)] 김학 2019.02.27 6
491 [김학 행복통장(73)] 김학 2019.02.27 6
490 내 고향은 전주 김용권 2019.02.27 9
489 행복으로 초대해 주는 여심 곽창선 2019.02.27 4
488 뒤늦은 사과 정근식 2019.02.27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