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애 수필집 발문

2019.03.09 21:59

김학 조회 수:6

<정정애 수필집 발문>

신앙심과 그림그리기와 글쓰기로 잘 버무려진 여심을 드러낸 수필

-정정애 수필가의 첫수필집 『나이테 팔십 되어』출간에 부쳐-

                                                                                                              수필가 三溪 金 鶴




1. 수필가 정정애와 수필의 만남

  수필가 정정애, 그녀가 드디어 여든 살에 처녀수필집을 묶게 되었다. 얼마나 설레고 기쁠 것인가? 그녀가 살아온 80평생의 삶이 정선된 한 편 한 편의 수필로 그려져 이 수필집에 담기게 되었다. 정정애 수필가의 희로애락의 인생역정이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에게 선보이게 된 것이다. 자랑스럽고 축하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정애 수필가는 1940년 전주시 완산구 삼천동에서 태어나 우전초등학교와 전주사범병설중학교, 전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육자의 길로 들어섰다. 정정애 수필가는 삼천동에서 과수원을 경영하던 아버지 정이용과 어머니 김효순의 2남6녀 중 셋째 딸로 태어났다. 선도 보지 않고 데려간다는 셋째 딸!

  머리가 좋아서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우등상을 받아 부모와 선생님의 귀여움을 독차지했고, 졸업식 때는 졸업생을 대표하여 답사를 읽었던 추억을 갖고 있다. 전주사범병설중학교 때는 문예부 활동을 하면서 교지『鶴』에 「화실에서」란 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일찍부터 글쓰기에 소질이 있었던 것이다.

  1959년 전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진안군 마령초등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았고, 3년 뒤인 1962년에는 동료 교사인 최연식과 결혼하여 1남4녀를 낳았다.

  수필가 정정애는 머리만 좋았던 게 아니라 예술분야에도 소질이 뛰어났다.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부단히 노력하여 1972년에는 중등학교 미술교사시험에 합격하여 중등학교 미술교사자격증을 얻었다.

  1974년 봄 진안군 백운중학교 미술교사로 부임했는데 그곳에서 우수교사로 추천을 받아 전주중앙여중으로 전근발령을 받기도 했다. 근무지가 전주로 옮겨지면서부터 미술가로서 폭 넓은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전라북도도전에 입선하고, 중등미술교사전 특상, 목우회전 입상 등의 실적을 쌓을 수 있었다. 전일여중, 김제여중, 중앙여중을 거쳐 1999년에는 군산기계공고에서 교직생활을 마감하고 만 59세에 교단에서 명예퇴직을 하기에 이르렀다.

  교직에서 물러난 뒤 가톨릭에 귀의하여 전주중앙성당에서 ‘미카엘라’라는 세례명을 받고 레지오활동을 하고 있다.

  2010년부터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문예창작반에서 시를 배우고, 2011년부터 꽃밭정이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에서 수필쓰기공부를 시작했다. 그 문학공부가 헛되지 않아 드디어 2014년에는 월간 『한국시』에서 「매화마을」이란 시로 신인상을 수상하여 등단했고, 또 2014년에 계간『대한문학』45호에서「쇳대」와「베개」로 신인상을 수상하여 수필가로 등단했다. 같은 해에 두 가지 문학 장르에서 등단 2관왕의 영광을 차지한 셈이다. 이처럼 신앙심을 바탕으로 그림그리기와 글쓰기가 잘 버무려진 종합 예술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으니 얼마나 흐뭇했겠는가?

  정정애 예술가는 자녀농사도 잘 지은 편이다. 큰딸 최민숙은 중학교 영어교사이며 사위 백훈승은 전북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활동 중이며, 둘째딸 최충민은 특수학교 교사이고 사위 강현근은 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다. 또 외아들 최일걸은 뛰어난 문인으로서 신춘문예 6회 당선의 실력을 보여주었고, 문학상을 열두 번이나 받는 등 크게 주목 받는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셋째 딸 최윤정은 경기도 광명시에서 남편 이기돈과 함께 치과의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넷째 딸 최희윤은 언니 치과에서 일을 돕고 있고, 남편 이병기는 컴퓨터 관련 직장에서 일하고 있다.

  여든 살인 정정애 예술가는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도 모자람이 없는 보람찬 삶을 누리고 있다. 화가 정정애는 1984년 전북예술회관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가진 이래 도내에서만 세 번의 개인전을 가졌고, 2008년에는 서울로 진출하여 서울평화갤러리에서 네 번째 개인전을 마련하여 미술계에서 확고한 기반을 다지게 되었다.

정이 많은 정정애가 정의 문학이자 겸손의 문학인 수필을 택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수필가 정정애는 전북의 사임당 같은 분이다. 수필가 정정애, 그녀의 깊은 신앙심과 그림과 문학에 대한 지적 호기심 그리고 끊임없는 열정은 그녀의 앞날에 찬란한 광채를 드리워 줄 것이다.

  정정애 선생은 팔순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그칠 줄 모른 채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리고 펜을 들어 시와 수필을 빚는다. 이번에 처녀 수필집 『나이테 팔십 되어』를 출간하게 된 것은 뒤이어 나오게 될 시집과 수필집의 물꼬를 트는 일에 불과하리라 믿는다. 끝을 모르는 그 열정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2. 수필가 정정애의 수필세계

  수필에서 가장 크게 요구되는 것은 수필삼이(隨筆三易)다. 수필은 보기 쉽고, 알기 쉬우며, 읽기 쉽게 써야 한다는 뜻이다. 수필가라면 누구나 다 아는 금언이지만 막상 창작에 들어가면 제대로 되지 않는 게 바로 그것이다. 오죽하면 헤밍웨이 같은 대 문호도 ‘글은 쉽게 쓰기가 더 어려운 법’이라고 했겠는가?

수필은 자기반조(自己返照) 문학이기 때문에 작가의 인격이 그 글 속에 그대로 들어나게 마련이다. 자기를 찾는 문학, 그것이 바로 수필인 까닭이다.

이쯤에서 정정애 수필가의 글 속으로 들어가 보자.

 

 옛 고향마을 상거마는 ‘윗동네’, ‘아랫동네’, ‘사사골’, ‘오송정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촌락이 합쳐져 형성된 마을이었다. 우리 집은 아랫동네에 속했고 윗동네에는 우리 조부모님이 사셨다. 오송정이에는 우리 과수원이, 사서골에는 일곱 마지기 논이 있었다. 좁은 논둑이나 산등성이를 따라 좁다란 길들이 구불구불 핏줄처럼 뻗어 있었다. 지금은 높이 솟은 아파트들이 밀집되어 있고, 넓고 곧은 백제로가 시원스레 뻗어 있는 도시로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여기가 옛날 상거마 마을의 윗동네였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유일한 표적이 바로 이 곰솔나무다.

-<고향마을의 터줏대감> 중에서

 

 정정애 수필가의 옛 고향마을을 그림처럼 깔끔하게 묘사한 글이다. 곰솔나무라면 전주 사람들이 다 아는 전주의 명물이다. 그 일대가 작가가 태어나서 자란 곳이라니, 얼마나 추억이 많겠는가?

  수령 250살쯤으로 추정되는 이 곰솔나무는 1988년에 천연기념물 355호로 지정받았고, 그 나무 주변은 개발금지구역으로 제한되었다. 그 당시 곰솔의 높이는 40미터였다. 2, 30미터의 나뭇가지 열여섯 개가 4미터 둘레의 몸통을 빙 둘러 뻗어서 거대한 우산을 펼쳐놓은 듯 위풍당당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얼마나 그 위용이 아름다웠겠는가? 그런데 이곳이 도시화 되면서 개발제한구역이 되자 누군가가 그 곰솔나무에 드릴로 구멍을 뚫고 독극물을 삽입하여 그 아름답던 곰솔나무가 시름시름 죽어가도록 해코지를 하기도 했었다. 그러자 전주시와 주민들이 이 곰솔나무 살리기에 힘써서 지금은 열여섯 가지 중 겨우 동남쪽으로 뻗은 네 가지가 살아서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 이곳에서 태어나 이 곰솔나무와 더불어 성장했을 수필가 정정애의 마음은 어떻겠는가?

  이 곰솔나무 후손이 완주군 대아수목원에서 자라고 있다니 어서 그 곰솔나무가 잘 커서 이곳으로 옮겨지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정정애 수필가는 이런 곳에서 자랐기 때문에 꽃과 나무와 벌‧나비를 사랑할 수 있었고, 그 덕으로 화가가 되고 시와 수필을 사랑하게 되었으려니 싶다.

  수필가 정정애는 화가로서 아름다운 물상을 찾아 캔버스에 그림으로 옮겼듯이 좋은 글감을 찾아 수필로 빗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녀의 눈에 띄면 그림이 되고 글이 된다.

  화가이자 시인이고 수필가인 정정애, 그녀는 주부라는 자기의 본업을 결코 소홀히 여기지 않는다. 그녀가 즐겨 찾는 곳은 남문 새벽시장이다. 새벽시장을 찾아보며 그녀가 묘사한 시장 풍경은 그야말로 생동감이 넘친다. 보통사람들이 곤한 잠에 빠져있을 새벽 5시쯤이면 새벽시장은 살 사람과 팔 사람이 모여 성시를 이루기 마련이다. 김장철이 되거나 제사 등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이 있을 때면 이곳을 찾아 새벽시장을 본다.

 

 전주에만 있다는 노란색 황포 묵은 저녁 때 가면 품절이 되는 경우가 많아서 꼭 이 시간에 가야 마음 놓고 살 수 있다. 전국적으로 명성이 높은 콩나물은 새벽시장 갈 때마다 산다. 시원한 맛으로 입맛을 잡아주는 매력도 있지만 콩나물가게 주인 선영이를 만나기 위해서다. 그녀는 처음에는 시중에서 양품점을 하더니 지금은 아가씨 콩나물집 주인으로 산다. 콩나물은 값이 싸서 ‘저것 팔아서 무슨 벌이가 될까?’ 싶은데 생각보다 실속이 있는가 보다. 누구에게나 부담 없는 먹거리인데다 듬뿍듬뿍 주는 인심 때문에 그 가게 앞에는 항상 손님들이 많다. 내가 가게에 갈 때마다 선영이는 누가 묻지도 않는데 “우리 선생님이에요.” 하고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하며 싱글벙글 나를 맞는다. 때로는 귓속말로 전주교대 부속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아이의 자랑을 하기도 한다. 제법 공부를 잘 하는 모양이다. 이 장사를 하며 조금씩 남도 돕고 있으니 자부심을 느낀다고 한다. 그런 그녀의 당당한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새벽시장> 중에서

 

 좋은 수필을 쓰려면 단어 하나를 선택하는 일에서부터 치열한 고민을 해야 한다. 글쓰기에 어떤 왕도가 있겠는가? 쓰고 고차고 또 쓰고 고치고 해야 할 뿐이다. 오죽하면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를 쓴 뒤 4백 번이나 퇴고를 했다고 하겠는가? 그런 노고를 거쳐야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을 것이다. 퇴고의 생활화가 곧 좋은 글쓰기의 바탕임을 알아야 한다.

 

 나는 털털해서 정리정돈을 잘 못한다. 게다가 요즘엔 건망증까지 겹쳐서 하루 전에 만졌던 물건도 어디다 두었는지 기억하지 못하여 고생을 한다. 오늘도 잠긴 서랍열쇠를 찾지 못하여 한바탕 곤혹을 치렀다. 오늘처럼 열쇠가 간절한 적은 없었다. (중략)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영어를 가르치고 계셨다. 하루는 나에게 교무실에 가서 키 좀 가려오라는 심부름을 시켰다. 그런데 키라는 물건이 무엇인지 몰라서 쩔쩔맸던 생각이 난다.

-<쇳대> 서두

 

 쇳대와 열쇠 그리고 키는 같은 말이다. 사투리와 표준말 그리고 영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키가 무엇인지 모르는 제자에게 키를 찾아오라고 심부름을 시켰으니 그 제자의 심정은 어땠을까를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난다. 팔순에 접어든 화자가 중학교 1학년 때의 그 에피소드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수필에는 대개 예시단락과 일반화단락이 있기 마련이다. 예시단락은 작가의 체험을 서술하는 것을 말하고, 일반화단락은 형상화 의미화를 뜻한다. 그 두 가지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야 좋은 수필이 될 수 있다.

  정정애의 눈에 띄면 그림으로 탄생하거나 수필로 빚어진다. 그녀가 즐겨 가꾸는 완산칠봉 밑자락에 있는 2백 평의 텃밭은 한 편의 수필 소재로 태어난다.

 

 주택가에 위치한 텃밭이다 보니 이곳을 오가는 사람마다 여러 말이 많다. 집을 지어 살지 그러느냐는 사람, 땅을 팔 의향이 없느냐는 사람, 때론 자기에게 채소 심을 땅을 조금 달라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나로서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다, 어떤 경제적인 이득을 떠나서 이곳이 나에게 건강과 기쁨을 주는 터전이기 때문이다. 올겨울에도 내가 가꾼 무와 배추로 맛있는 김장을 할 것이다. 나는 이 텃밭을 우리 가족의 건강을 지켜주는 터전으로 오래오래 남겨두고 싶다.

-<텃밭> 결미

 

 주관이 뚜렷한 작가의 심상을 진솔하게 그려낸 글이다. 천이 천말을 하더라도 자기의 소신대로 가족의 건강을 지켜주는 터전으로 이 텃밭을 오래오래 지키고 싶다는 의지가 뚜렷하다.

  수필은 평범한 일상에 새로운 의미의 옷을 입히는 문학이다. 텃밭도 가족의 건강을 지켜주는 터전아라고 의미를 부여하니 그럴듯하지 않은가?

화자는 남편과 더불어 이따금 완산칠봉에 오르곤 한다. 그녀의 눈에 띄는 완산칠봉의 봄은 꽃 피고 새우는 아름다운 낙원이다. 매화꽃이 만발한 매화봉은 풍경이 호화찬란하리라. 그 산길을 오르는 화자의 눈에는 어떤 정경이 비칠까? 화가의 눈초리는 매섭기 마련이다.

 

  늘 푸른 소나무 사이로 여린 새순을 틔우고 있는 활엽수들의 새로운 연출이 온 산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다. 나목으로 추운 겨울을 이겨낸 마른 나뭇가지 끝에 피어나는 새순들은 노란 색으로 시작하는 것도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붉은 빛, 보랏빛, 황토색, 회백색을 띈 것들도 있어 각양각색이다. 여러 수목들이 어울린 새순들의 하모니는 어떤 화가의 그림보다 절묘하다. 땅속에 여러 가지 염료들이 간직되어 뿌리를 통해 저렇게 아름다운 색들을 뿜어내는 것이 아닐까? 나무들 사이사이로 산 벚꽃들이 섞여 피어 운치를 더하고 있다.

-<완산칠봉의 품에 안겨서> 중에서

 

 문학은 감동의 예술이다. 감동 없는 문학작품은 향기 없는 조화(造花)와 같다. 문향(文香)이 풍기는 작품을 빚어내려면 작가의 혼과 열정이 합성되지 않으면 안 된다. 문학의 길은 끝없는 수도(修道)의 길이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송준호 교수는, ‘좋은 글을 쓰려면 아무리 작고 초라하며 남루한 사물, 사소한 현상이나 사건이라도 성실하고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습관을 가지는 일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관계되는 책을 읽어보고, 그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을 만나서 얘길 들어보고, 직접 가서 눈으로 확인하는 번거로움도 기꺼이 감수할 줄 알아야 된다.’고 했다. 철저한 관찰과 충분한 자료조사를 강조한 말이다.

 

 ‘최일걸’, 내 아들의 이름이다. 오늘(2017. 1. 12.) 전북일보에 내 아들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역대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자 중 중앙무대까지 진출하여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는 역량 있는 작가들을 소개하는 지면이었다. 아들이 전북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에 당선된 것은 1995년이었으니, 첫 등단을 한 지도 24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 6회의 신춘문예 당선{전북일보, 한국일보, 조선일보, 전남일보, 광주일보, 경남일보)의 영예를 얻었고, 해양문학상 4회(부산 1회, 여수 2회, 전북 1회), 일반문학상 8회 수상 등 귀한 족적을 남겼다.

-<나의 ‘느티나무’에게> 서두

 

 엄마로서 얼마나 자랑스럽겠는가? 번번이 뛸 듯이 기뻤을 것이다. 더구나 문학의 길에 뛰어들어 시와 수필로 등단하여 문단에 얼굴을 내민 엄마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아들의 문학적 입신양명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화려한 문단 경력을 방패삼아 작품집을 출간하면 바로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지도 모르는 아들이 작품집을 내지 않고 글만 쓰고 있으니 답답할 것이다.

 

 요즘 우리 내외는 그에게 많이 쌓인 글들을 묶어서 책을 내라고 권한다. 그것도 그는 별로 내키지 않는 눈치다. 작품 창고에 가득 쌓인 작품들을 세상에 내어놓고 햇볕도 쏘이고 바람도 맞으며 소통하기를 바란다. 곁눈 한 번 팔지 않고 험난한 외길을 혼자서 헤쳐 나온 단련된 체력이 그에게 있으리라 믿고 위안을 삼는다.

어느 쾌청한 가을날 쌓아놓은 작품들을 펼쳐놓고 풍년가를 부를 날이 꼭 오리라 이 어미는 믿는다.

  “아들아, 이제 작품창고의 평수를 늘리지만 말고 창고 문을 열어 세상과 소통 하렴! 그리고 앞만 보지 말고 뒤도 돌아다보고 옆도 살펴보며 이 아름다운 세상을 천천히 둘러보아라! 느티나무 같은 내 아들아! 오늘은 넓고 푸른 들녘의 봄날을 너에게 안겨주고 싶구나!”

-<나의 ‘느티나무’에게> 결미

 

  이 결미에는 팔순 노모인 화자 정정애 여사가 유능한 외아들 ‘최일걸’에게 전하는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절절한 엄마의 이 소원을 들어주지 않다가 나중에 그 아들이 후회의 눈물을 흘리게 될지도 모른다. 화자의 부군은 이 글을 읽고 박수를 치겠지만, 아들인 최일걸 작가는 이 글을 읽는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수필은 독자에게 느끼고 깨달음을 줄 수 있도록 생각할 여유를 남겨놓아야 좋은 수필이 될 수 있다. 수필가가 먼저 흥분하면 독자는 구경꾼이 될 수밖에 없다. 수필가라면 마땅히 귀담아 들어야 할 명언이다.

 

 사람을 나무에 비유한다면 발은 뿌리에 해당되고, 팔은 가지일 것이다. 신체의 가장 아랫부분에 붙어서 온몸의 체중을 감내하며 고생하는 것이 발이다. 주인의 의도에 따라 길고 험한 동선을 묵묵히 이동시켜 준다. 그래도 혼자가 아니고 왼발 오른발 둘이서 해내니 많은 위로가 되고, 수고로움을 얼마간 덜 수 있을 것이다.

-<소리 없는 아우성> 중에서

 

 무좀의 후유증으로 밤이면 발가락이 소리 없이 아우성을 치는 내용을 화소로 쓴 수필이다. 비유법이 그럴 듯하여 공감이 가는 글이다. 사람의 신체 부위 가운데 가장 힘들어하고 고생하며 불결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게 발이 아니던가? 손은 날마다 몇 십 번씩 씻지만 발은 그런 대접을 받지 못한다. 발은 자기의 입장을 알아주는 화자에게 고마움을 느낄 것 같다.

  현대인들은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 더구나 스마트폰이 대중화 되면서 사진 찍기는 더 일상화 되었다. 추억은 기억에 의존하지만 사진은 오래 갈무리할 수 있는 보물창고다. 생각해 보자. 사진을 버린다고 추억조차 다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추억이 많은 수필가는 좋은 수필을 쓸 수 있는 많은 자산을 소유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우주만물이 다 수필의 소재가 된다더니 이번에는 황태가 수필의 소재로 등장했다. 큰언니가 소재를 제공한 것이다.

 

 매년 이맘때면 항상 보내왔던 택배다. 오늘 큰언니가 사 보낸 대관령 황태 한 상자가 우리 집을 찾아왔다. 일 년 내내 보관해 두고 먹고 싶을 때면 우리 집 식탁에 오르는 음식재료가 될 것이다. 상자 안에는 커다란 황태가 튼실한 칙넝쿨 꼬챙이에 꿰어져서 가지런히 담겨져 있다. 노랗게 바짝 마른 황태는 장작개비 마냥 딱딱해서 바로 먹을 수는 없다.

-<황태> 서두

 

황태요리를 식탁에 올리려면 주부들의 손길이 많이 가야 한다. 술국으로도 좋고 찌개나, 코다리, 보푸라기 등 맛깔스런 요리로 변신하기도 한다. 맥주 안주로도 무척 사랑을 받는다. 동해에서 많이 잡히던 명태가 줄어들어 수입산에 의존하고 있는데 다행히 명태 양식에 성공했다니, 국산 명태가 옛날의 그 영광을 되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수필쓰기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데서 비롯된다. 수필은 거짓 없는 자화상(自畵像)이어야 한다. 호두 이야기도 그래서 한 편의 수필로 탄생된다.

 

 하루가 무료해서 손 둘 데가 마땅치 않을 때가 있다. 그 무엇도 손에 잡히지 않는데 무언가 붙들고 놓고 싶지 않을 때면, 내 손안으로 데굴데굴 굴러들어오는 게 있다. 바로 호두 두 알이다. 십년 넘게 손으로 만지작거린 탓에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색깔이 짙어진 호두 두 알, 익숙함이란 미묘한 감정이어서 호두 두 알이 빚어내는 마찰음은 내게 있어 경쾌한 이중주로 앙상블을 이룬다. 그 선율에 기대어 산 세월이 강산을 변하게 했지만, 호두는 변치 않는 우정으로 내 삶의 일부로 자리를 잡고 있다.

-<호두 두 알> 서두

 

 수필가 정정애는 때때로 이 호두 두 알을 굴리면서 추억에 잠기며, 행복의 세레나데를 부른다.

 

 그 추억에 장기면 내 소중한 새끼들이 나를 향해 조막손을 뻗어온다. 그들이 태어날 때 어미로서 느꼈던 경이로움, 자라면서 수시로 어미에게 안겨주었던 기쁨, 대학합격, 교사 취업, 신춘문예당선, 배우자를 맞을 때, 손주들의 탄생, 이제는 손주들이 취업하는 경사까지 가슴 벅찬 기쁜 소식들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호두 두 알> 결미

 

 행복에 겨운 팔순 할머니, 정정애 여사! 그녀의 삶은 행복의 꽃밭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듯하다. 그녀는 나이도 잊은 채 또 다른 꿈을 키우고 있을 것이다. 장미꽃을 잘 그리는 화가로서는 다섯 번째 개인전을 열고 싶을 것이고, 처녀 시집도 선보이고 싶을 것이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내친 김에 두 번째 수필집도 출간하고 싶을 것이다. 그녀에겐 꿈 너머 꿈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어서 잠시도 게으름을 피울 수 없을 줄 안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으니 기대가 된다. 오감(五感)의 안테나를 활짝 열어 놓고 부단히 글감을 찾기 바란다. 좋은 수필의 소재는 저절로 찾아오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란다.


3. 수필가 정정애가 걸어갈 길

  수필가 정정애 여사는 팔순의 해에 처녀수필집을 상재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첫걸음을 뗀 셈이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말고 불광불급(不狂不及)의 정신으로 뚜벅뚜벅 정진하기 바란다. 지금은 인간백세 시대가 아닌가?

  수필은 자기를 찾는 작업이요, 자기 마음의 무늬를 문자로 그려내는 문학예술이다. 나무는 클수록 그 나이테가 많고 멋지듯 인생의 연륜이 많이 쌓일수록 깊이가 있는 글, 공감대가 넓은 글이 나올 것이다. 더구나 정정애 수필가는 집념과 열정 그리고 노력이란 3박자를 다 갖춘 분이기에 앞날이 더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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