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육과 편견 사이에서 길을 잃다

2019.03.11 02:02

김성은 조회 수:6

훈육과 편견 사이에서 길을 잃다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김성은

 

 

 

 

 "안 던졌어.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내 딸 유짱은 억울하다는 듯 통곡했고, 나는 맞받았다.

 "안 던졌으면 니가 똑바로 설명해. 왜 이 연필이 여기 있어?

며칠을 관찰했다. 받아쓰기를 하다가 한숨을 푹 쉬며 지우개를 던지기에 내심 놀랐다. 평소 보이지 않던 행동이었고, 요즘들어 부쩍 '싫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유짱과 실갱이하는 일이 잦아졌다. 지구상에서 폭력과 강요는 사라져야 한다는 투철한 소신을 갖고 사는 나지만, 유짱을 훈육하는데 잔소리는 필요악이었다.

 아동심리 분야에서 저명한 전문가의 저서를 탐독하고, 관련 상담방송을 애청하며, 유짱과 행복한 가정 생활을 누리고저 노력하지만, 번번이 감정적인 반응으로 아이를 대하고, 후회하는 순간들이 쌓여간다.

 인격자가 되기 위해서는 감정을 깎아내고, 문제의 인과 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철저히 이성적으로 대처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수필을 쓰고,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 부족한 침착성을 기르고자 부단히도 노력했다. 그런데 유난히 유짱에게 내 감정은 취약하다. 우선 유짱에게는 근원적인 미안함이 있어서일 게다. 아무리 내가 발버둥을 쳐봐도 유짱이 체감할 물리적인 공백은 명징할 것이므로.

 유짱이 영아기일 땐 나 스스로가 엄마로서의 건강한 정체성을 가지지 못해서 괴로웠다. 지금도 유짱에 대한 뼈아픈 미안함과 불안은 여전하다. 하지만 아이를 바르게 훈육하는 책무는 결코 감정의 영역일 수 없다는 자각이 회초리인 듯 내 긴장감을 깨웠다.

 

 유짱은 손발이 매우 민첩하다. 율동과 만들기를 즐기고, 수업 시간에도 번쩍번쩍 손부터 들고 보는 씩씩이다. 기다리는 것을 무척 괴로워하고, 긴 문장을 이해해야 하는 국어 과목보다는 명쾌하게 정답이 떨어지는 수학문제 풀기를 좋아한다.

 혼자 다닐 때도 노래를 흥얼거리고, 태권도를, 떡볶이를, 꿀닭을 사랑하는 개구쟁이다. 호기심이 많은 유짱이 공부에 더 즐겁게 집중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나는 수학 연산 문제와 받아 쓰기를 놀이처럼 함께 한다.

 실명하고서 연필 잡을 일이 없었던 나인지라 글씨체도 엉망이고 솔직히 맞춤법이 헷갈릴 때도 있다. 그런 내 수준이 차라리 유짱과는 경쟁하기 좋은 조건이라 해야할까? 승부욕이 동해서인지 유짱도 게임하듯 재잘재잘 정답을 적어나간다. 그렇게 친구 같은 엄마를 자처하다 보니 막상 아이를 엄격하게 훈육해야 할 때 곤란한 상황을 맞고 말았다.

 우리는 거실에서 깍두기 공책에 받아 쓰기를 하고 있었고, 남편은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나는 유짱의 맞은편에 앉아 문제를 불러 주고 있었고, 유짱은 몇 번 같은 글짜를 틀려서 짜증이 난 상태였다. 바르게 쓸 때까지 기다리며 반복해서 문제를 불러주는데, 이 녀석이 한숨을 푹 쉬며 연필을 던지는게 아닌가? 분명 연필이 맞은 편에 앉은 내 무릎 앞에 떨어졌고, 이전에 던지는 행동을 몇 번 목격했던 터였다.

 

 안되겠다 싶어서 엄하게 꾸짖으니 유짱은 안 던졌다며 악을 쓰고 울어댔다. 아무리 두 눈을 못 보는 나지만, 근거는 있었다. 두 귀로 충분히 아이의 행동을 감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던지는 행동에 대해 이미 몇 번 경고한 적이 있었으므로, 나도 물러서지 않았다. 안 던졌으면 이 연필이 왜 여기에 떨어졌느냐고 나는 유짱을 다그쳤다. 몇 분 간 우리 모녀는 팽팽하게 대치했다. 유짱은 끝끝내 던지지 않았다며 방 안에 있는 아빠 품으로 파고 들었다.

 "아빠, 난 안 던졌는데 엄마가 자꾸만 던졌대."

 "엄마는 눈이 안 보이잖아?"

혹여 내가 잘못 짚은 것이었더라도 중립적인 입장에서 얘기할 수는 없었을까? 방 안에서 들려온 부녀의 대화에 내 마음은 무너졌다. 그들이 남이었다면, 같은 상황이었더라도, 난 기꺼이 쓴웃음 한 번으로 상황 종료를 선언할 수 있었을 거다.

 아빠의 그 한마디로, 유짱이 그 전투의 원인을 '엄마의 안 보이는 눈'으로 치부해 버리지나 않았을까 조바심이 일었다.

 남편은 결혼 전에 시각장애인에 대한 예의를 말했던 사람이었다. 뭐 별다른 의도가 있었겠는가? 못난 자격지심이 내 마음을 갉아 먹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의 편견이 유짱의 영혼에 어지러운 발자국을 찍지 않았으면 좋겠다.

 훈육의 원칙은 어디까지나 담백한 대처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단호하게 유짱이 취할 행동을 제시해 주자. 그것이 엄마의 책무가 아니겠는가?

                                                            (2019.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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