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 전주 재현행사를 보고

2019.03.12 02:06

김길남 조회 수:4

 3·1운동 100주년 전주 재현행사를 보고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길님

 

 

 

 

  3·1운동이 일어난지 100주년이 되었다. 전주에서도 온 시민이 참여하여 뜻 깊은 재현행사를 했다. 6년 전부터 기독교와 광복회, 보훈지청, 신흥·기전학교가 참여하여 만세운동을 재현해 왔다. 전주는 1919년 313일 남부시장에서 만세운동을 했기 때문에 그날 행사를 가졌다. 흰 옷을 입고 태극 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며 행진했다. 그러다 이번에는 100주년을 맞아 시()가 주관하여 토요일인 39일에 성대히 재현한 것이다.

 건지산 산책을 마치고 오는 길에 객사에서 내려 재현행사를 보았다. 재현행렬은 신흥고등학교에서 2시에 출발하여 충경로를 지나 풍남문까지 이어졌다. 맨 앞에 35사단 군악대가 연주하며 행진하고, 학생들이 ‘독립의 함성에서 평화와 통일로’라는 슬로건을 들고 따랐다. 지프차에 학생대표가 타고 여러 명이 대형태극기를 들고 행진했다. 그 뒤로 시장, 국회의원 등 시민대표가 따르고 신흥고와 기전여고의 학생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지나갔다. 이어 초등학생도 고사리 손을 흔들며 나아갔고, 시민이 구청별, 동별로 깃발을 들고 따라왔다. 어찌나 많은 인파가 따라오는지 지루할 정도였다. 아마 3천여 명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이렇게 많은 시민이 참여할 줄은 몰랐다.

 그런데 내가 서있는 객사 앞에서는 행진만 했지, 태극기를 흔들지도 않고 만세도 부르지 않아 밍밍했다. 좀 서운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1시간동안 걸으며 계속 만세를 부를 수는 없는 일이다. 뒤에 알고 보니 계속 태극기를 흔들 수는 없어 요소요소에서 행사를 치르며 행진했다고 한다. 재현행사이니 그 모습을 보여주면 되었다. 당시와 같이 마음속에 절박함이나 애절함이 있는 것도 아니니 열성을 내어 만세를 부르고 태극기를 흔들 의욕도 적었으리라. 보는 사람의 욕심으로는 순서대로라도 계속 만세를 부르고 태극기를 흔들었으면 했다. 풍남문 광장에서 기념식을 갖고 여러 가지 행사도 했다하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가보지 않았다.

 전북에서는 35일에 군산에서 먼저 기독교를 중심으로 만세운동을 했다. 전주는 조금 늦게 313일에 서문교회 김인전 목사가 총 지휘하여 남부시장의 장날 만세운동을 벌였다. 독립선언서는 임영신 여사가 김인전 목사에게 전했고, 천도교도 인종익 씨가 전달했다 한다. 신흥학교 지하실에서 몰래 선언서와 태극기를 만들어 채소로 위장하여 남부시장으로 날랐다. 기전학교 학생들은 장꾼으로 위장하여 시장 곳곳에 숨어 있었고, 신흥학교 학생들은 여러 곳에서 장꾼에게 선언서와 태극기를 나누어 주었다. 정오의 인경소리와 함께 일제히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불렀다. 일제는 깜짝 놀라 어리벙벙하다 무력으로 진압했다. 그래도 사그라지지 않고 여러 날 만세운동을 벌였다.

 만세운동을 계속하다 신흥학교 학생 4명이 순국했다. 김경신, 이기곤, 김병학, 김점쇠 등이다. 김경신은 옥사했고, 나머지 3명은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김점쇠는 후손의 노력으로 1997년에야 독립유공자로 인정을 받았으나 나머지 순국자는 아직까지도 독립운동 유공자로 인정받지도 못했다. 후손이 없어 증거를 내놓지 못했고 기록으로 남지 않으니 인정도 받지 못했다. 애국자들의 영혼이 편히 잠들지도 못하겠다. 후손이 없어 기록을 찾지 못하면 순국도 헛되이 사라진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親日)을 하면 후손이 영광을 누린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것 같다.

 

 어렸을 적에 청년들에게서 애국심을 이어 받았다. 독립운동을 한 유명한 이름들을 그 때 들었다. 김구, 지청천, 김좌진, 김일성, 김규식, 여운형, 등을 지금도 외우고 있다. 일본이 망해야 우리가 살고 미국이 이겨야 한다고 들었다. 2차 세계대전 말기에는 미국 비행기 5만 대가 떠서 일본을 폭격한다는 소리도 들었다. 독립운동가들의 소식을 청년들은 듣고 있었다. 그들이 바로 독립운동가였다. 우리가 겉으로는 일본에 순응하는 듯했지만 속으로는 면면히 독립정신이 흐르고 있었다. 그런 흐름이 우리나라의 광복을 가져왔고 민주주의 정신의 기틀이 되었다.

 민족정신이 살아남아 오늘날과 같은 나라를 만들 수 있었다. 앞으로도 나라를 사랑하는 정신은 이어질 것이다. 민족수난의 시대가 온다면 다시 일어서서 싸울 것이다. 민족이 절박한 위기에 처하면 모두 일어서서 궐기할 게다. 그 정신이 길이길이 남겨질 것이라 믿는다. 고초를 받을 줄 알면서도 일어선 전주의 선열들에게 머리를 숙여 감사드린다.

                                   (2019.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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