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차이나타운

2019.03.12 15:02

정남숙 조회 수:48

인천차이나타운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정남숙 

 

 

 

 

  “아이 앰 어 걸(I am a girl), “유 아 어 보이(You are a boy)

 시골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시내 중학교에 들어가 영어를 배웠다. 세상 처음으로 배운 알파벳과 영어가 어찌나 신나고 재미가 있는지 배운 것을 활용하고 싶어 상대를 찾아야 했다.

 “마이 네임 이스 ,,, (My name is,,)

입에 붙지 않아 서툰 발음이지만, 나도 영어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때 그 심정이 생각나는 요즈음, 내 속마음은 조바심이 인다. 2년 동안 중국어를 배웠기 때문에 중국어로 대화할 수 있는 상대를 찾아보고 싶어 기회를 찾고 있었다.

 

  옛날처럼 명절이라 하여 며칠 전부터 음식을 준비하고, 설빔을 장만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명절에 식구들이 다 같이 모이면 우리는 간단한 나들이를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큰며느리가 설 연휴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 물었다. 계획을 세우기에 앞서 내 스케줄을 먼저 물어보았다. 나는 서울에 올라오기 전, 기회가 있으면 서울 구로동이나 인천차이나타운을 둘러보며, ‘라오쓰! (, 선생님!), ‘니하오! (你好, 안녕!)’ 등, 간단한 말이라도 중국인들을 만나 중국어로 대화를 한 번 해보고 싶었다. 학기 중, 수업시간에 젊은이들과 21조가 되어 문장을 읽어보는 것에 갈증이 났었다. 발음은 영 자신이 없었지만 기회가 되면 생활에 적용시켜 중국인들을 만나, 내 중국어 실력을 테스트해 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생각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와 인천차이나타운에 가 보았느냐고 되물었다.

 

  핵가족으로 사는 자식들이, 부모들의 의사를 우선으로 존중해주며 부모의 의견과 스케줄을 불평 없이 따라주는 자식들은 박물관에나 가서 찾아야 한다고 한다. 부모자식이라도 생각이 다르고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을 나이든 부모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내 의사를 따라주지 않으면 ‘내 자식이 나를 무시한다.’ 생각하고 원망이 앞서,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 하며 서운함이 앞선다. 나 혼자의 생각에 빠져 있다가 되묻는 내 맘을 알아 차렸나보다. 큰며느리는 “인천 대교를 건너가면 되니, 거리도 가깝다”며 곧바로 제 동서에게 전화로 의견을 나누는 모양이었다. 둘째며느리는 몇 년 전 아이들과 다녀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망설임 없이 좋다고 했다. 재고의 여지도 없이 인천차이나타운으로 결정됐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중계동에서 출발한 둘째와 일산에서 출발한 우리는,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인천차이나타운에서 만나기로 했다. 인천은 서울 가까운 곳이라 서울에 살고 있을 때 수시로 찾았던 곳이다. 인천 시내로 들어와 차창을 두리번거리며 월미도, 을왕리, 인천항거리 옛 기억을 떠올려 보았으나 영 짐작이 가지 않았다. 이정표가 차이나타운을 안내하고 있었다. 그러나 연휴중이라 거리는 이미 관람객들로 붐비고, 주차장은 만원사태라 안내원들의 도움을 받았어도 뱅뱅 돌고 돌아 고가 밑에 겨우 주차할 수 있었다. 걸어서 굴다리를 지나오니 중국 특유의 빨간색 건물들이 눈앞에 줄지어 보였다. 말하지 않아도 중국인들의 거리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인천차이나타운은 1883년 인천항 개항과 함께 이 일대가 청나라의 치외법권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130여 년이 넘는 역사 동안 화교 고유의 문화와 풍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붉은색으로 치장된 골목 구석구석을 둘러볼 때마다 마치 중국으로 여행 온 듯한 기분이 든다. 특히 중국 화교들이 물품을 판매하는 상점과 식당들이 들어서면서 현재의 차이나타운 거리로 발돋움하며 발전했다. 과거에는 중국에서 수입된 물품들을 파는 상점들이 대부분이었으나 현재는 거의 중국음식점이 차지하고 있다고 큰아들이 설명해 주었다. 초기 정착민들의 2~3세가 이어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 전통문화를 많이는 지키지 못하고 있지만, 중국의 맛만은 고수하고 있다.

 

  작은아들이 찾기 쉬운 곳에서 기다렸다. 우리나라 주민자치센터인데 중국풍으로 꾸며놓았다. 건물은 물론 주변에 반달가슴곰 가족과 커다란 황금용 두 마리가 꿈틀거리는 포토존을 만들어 놓았다. 기다리다 낮은 쪽을 바라보니 양꼬치, 공갈빵, 화덕만두 등 여러 맛있는 먹을거리 가게 앞엔 까만 머리들만 빈틈없이 꽉 들어차 길을 메우고 있었다. 전주한옥마을에 국적 없는 길거리 음식 때문에 한옥마을의 이미지가 훼손된다는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어디든 길거리 음식이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길게 줄지어 있는 풍경을 바라보며 나도 그 속에 들어가 일부러 어깨를 부디치며, ‘떼우뿌치(, 미안합니다), ‘메이꽌씨(, 괜찮습니다)’등의 간단한 중국어를 구사해 보고 싶었다.

 

  온 식구가 합류하여 투어를 시작했다. 짜장면박물관은 화교역사를 거론할 때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건물이다. 1905년 산동성에서 온 우희광은 산동회관을 열고 간단한 음식점과 여관업을 운영하다 공화춘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중국 음식점으로 이름을 날리며 인천 짜장면의 시초라고 한다. 경사가 심한 거리를 두 아들의 부축을 받아가며 오르내렸다. 인천 근대박물관과 한중문화관은 중국에 가보지 않고서도 다양한 중국 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 청일 조계지 계단 중간에 커다란 공자석상이 서있고, 자유공원 올라가는 길 양쪽 벽면에는 삼국지의 중요 장면을 설명과 함께 타일로 제작한 벽화가 나왔다. 삼국지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림으로써 남에게 설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총 80여 컷의 장면과 옆 계단의 초한지 벽화거리 등이 볼거리였다.

 

 ‘동화마을’ 거리에 들어서자, 잉어가 품고 있는 아이스크림부터 구입했다. 동심으로 돌아가 주위를 살피니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각종 애니매이션과 동화를 입체적으로 구성해 놓은 것이 너무 많아 덩달아 나도 어린아이가 된 것 같았다. 인어공주,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사랑에 빠진 피노키오, 잭과 콩나무 등 벽면도 모자라 지붕을 뚫고 하늘까지 오를 기세다. 길옆에 우람하게 서있는 자이언트트리와 무지개 계단에서 사진들을 찍는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식당을 찾았다. 그러나 보이는 곳 가는 곳마다 긴 줄이 늘어서있다. 하얀 짬봉이 유명하다는 연경도, 짜장면 원조라는 공화춘도 긴 줄은 마찬가지였다. 망설이다 보면 해가 질 것 같았다. 공화춘 앞 긴 줄 뒤에 서서 기다렸다. 우리는 일행이 7명이라 우리차례가 됐어도 2~3명 일행들에게 계속 양보를 해야 했다. 3층까지 완전히 들어차기도 했지만 원탁은 몇 개가 되지 않아 기다려 달라고 했다. 원조 짜장을 먹기로 하고 음식 값은 나에게 양보해 달라 사정하며 카드를 내밀어 계산을 하게 했다.    

 

 음식도 삭일 겸, 마지막 코스로 자유공원에 올랐다. 공원 광장을 지나 맥아더 장군 동상 앞에 서서 단체사진을 찍던 큰아들은, 스마트폰에 저장된 옛 사진 한 장을 꺼냈다. 네다섯 살짜리 연년생 두 아들을 데리고, 자유공원 맥아더 장군 동상 앞에서 찍었던 우리 세 모자의 사진이었다. 옛 추억을 그리며 그 때 그 모습 그 자리를 찾아 리마인드 사진을 찍자며, 제 마누라에게 촬영을 부탁했다. 조그만 두 아들을 양손에 잡고 찍은 옛 모습을 재현해 보았으나, 큼직한 두 아들은 늙고 초라한 나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괜히 성의 없이 찍었다며 제 마누라에게 핀잔을 주며 다시 포즈를 잡자 했다. 나를 웃기려 한 것인 줄 어찌 모르겠는가?

 

   커피숍에 들어가 커피와 라떼를 마시고 나오다가, 포춘쿠키 과자 속에 들어있는 운세를 읽어보며 한 바탕 웃어도 보고, 공갈빵 한 봉지씩 사가지고 헤어져 작은아들 집으로 돌아오는 차속에서, “중국말을 하는 사람들이 전혀 없더라.” 하는 말을 듣던 작은며느리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잘됐네요, 금년 애비 25년 근속 상휴가가 25일이나 되는데, 아들과 둘이 중국여행을 다녀오시라” 고 했다. 다리는 아프고 중국말을 할 기회는 얻지 못했지만, 인천차이나타운 나들이는 나를 아껴주고 배려해주는, 효자효부들의 모습을 또 한 번 보여준 하루였다.

                                                                             (2019.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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