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는 못 속인다더니

2019.03.20 11:11

구연식 조회 수:4

피는 못 속인다더니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구연식

 


 

유전공학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부모와 자식 간 신체적 특징인 외모와 특유의 행동 양식 그리고 인지능력 등이 비슷하게 나타나기에 피는 못 속인다.’고 하여 유전인자의 공통점을 표현했다.

 

 모든 생명체의 공통된 종()의 형태나 행동 양식이 고정된 것은 그 종()의 유전적 형질이며 본능 때문이다. 바닷가에서 옆걸음 치는 를 아무리 교육시키고 강요해도 도로 옆걸음으로 기어간다. 나뭇가지를 감고 올라가는 호박 넝쿨손을 제거하거나 감지 못하게 방해해도 어느 사이 새로운 넝쿨손이 생겨 나뭇가지를 기어이 감고 올라가는 경우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본능적인 유전의 습성이다. 인간 개성(個性)의 특징은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유전인자는 열성과 우성의 차이일 뿐 결국에는 유전은 그대로 이어진다.

 

 며칠 전에는 손자의 초등학교 입학식이 있었다. 다음날에는 정식 등교다. 낯선 교실에서 처음 만난 친구들과 생소한 수업을 받아야 하고, 학교에서의 공동생활에 적응해야 한다. 여덟 살 초등학생의 공식적 사회화의 첫걸음이다. 그래서 많은 학부모는 어린 자녀와 함께 등·하교를 하면서 기대와 염려 속에 3월을 보낸다.

 

 손자의 초등학교는 5분 거리로서 아파트 바로 옆이다. 오늘은 며느리, 아내 그리고 나도 손자와 같이 등·하교하면서 손자가 학교에서 용변처리 및 점심시간에 식당 이용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여 시간에 맞춰서 멀리서 관찰해 보았다.

 

 드디어 점심시간이 되었다. 어린이들은 왁자지껄하거나 함성과 활개를 치면서 좁은 복도에 물밀듯이 밀려 나왔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손자는 보이지 않았다. 아뿔싸! 손자는 맨 뒤에서 뒷짐을 지고 뚜벅뚜벅 걸어 나오면서 식구들을 힐끗 쳐다보더니 그대로 식당으로 갔다. 식구들은 의아해서 왜 그러느냐는 식의 표정으로 물어보아도 손자는 집게손가락을 입술에 대고서는 '쉿!' 하는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표정이나 여러 상황을 종합하여 보면 별일은 아닌데도 전혀 예상치 못한 행동이라 궁금증은 더했다집으로 돌아와서 손자의 하교 시간까지 기다리면서 친구들 사이에 주눅이 들어서일까, 아니면 단체생활에 부적응 상태에서 나오는 행동일까,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았다.

 

 하교 시간에 맞춰 학교 정문에서 기다리는데 이번에도 등에는 커다란 책가방을 메고 또 뒷짐을 지고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식구들은 이구동성으로 왜 뒷짐을 지고 말없이 걸어 나오느냐고 물었더니, 손자는 어제 입학식 후 교실에서, 오늘 아침에도 교실에서 담임선생님이 학교 교실이나 복도에서 절대 뛰지 말고 활개를 치면 옆 친구가 다칠 수 있으니 손은 뒤로 잡고 조용히 걸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면서 뒷짐을 지고 활개를 치지 말고 뛰지도 말며 걸어야 하고 시끄럽게 떠들어서도 안 된다고 하셨기 때문이란다.

 

 지난달에는 손자의 유치원 졸업식이 있었다. 유치원 졸업식 후에 가족들은 이곳저곳에서 기념사진 촬영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손자가 갑자기 유치원 벽시계를 보더니 졸업가운을 벗었다. 가족들이 왜 사진 촬영을 하다말고 그러느냐 물으니 유치원 담임선생님이 12시까지 가운을 반납해야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란다. 가족들은 할 수 없이 졸업가운을 반납 후 사진 촬영을 했다. 유치원 졸업식 때 예절상 대표 수상이 그냥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했을 뿐인데, 오늘 학교에서 뒷짐 지고 걷는 모습이 첨가되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자신의 결함과 아쉬움은 2세를 위하여 또 다른 유전인자 즉, 결혼을 통하여 보충 극복하려고도 한다우수한 유전인자의 손자를 낳으려고 자식의 결혼 배우자를 선택하기도 한다. 대개는 결함의 유전인자를 대체해 줄 수 있는 쪽으로 혼사 자리를 결정하기도 한다. 인간의 평균 수명을 생각하면, 선택하고 결과 증명이 가능한 세대는 아들까지 선택할 수 있으며 결과 증명은 손자까지만 할 수 있는 것 같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나의 성격이 손자 대()에서도 우성으로 나타나는 듯하여 사뭇 걱정스럽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 속에서 진취적 삶의 기회도 스스로 포기하면서 중도적 성향으로 안정적인 삶만 추구하여 아쉬움도 많았다. 손자는 더 진취적이고 활발한 삶을 살기를 바랐다, 그런데 피를 못 속이고 할아버지를 닮을까 걱정스럽다.

                                                        (2019.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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