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싹을 보며

2019.03.21 06:04

곽창선 조회 수:3

새싹을 보며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곽창선

 

 

 

 

어 제 단비가 내렸다. 많은 양의 비는 아니지만 천둥을 동반하며 내려서, 지긋 지긋하던 미세 먼지를 씻어내 주었다. 새싹들에겐 보약 같은 단비였다. 아침에 창문을 열고 공기를 들어 마시며 기지개를 펴니 가슴이 후련했다. 창을 닫고 생활하며 외출 시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다녀 답답하기 그지없었는데, 단비가 그 불편함을 덜어 주어 기분이 좋았다.

 

 창밖은 맑고 산뜻했다. 부지런한 매화며 산수유, 개나리는 고운 모습으로 우리 곁에 다가왔다. 집안의 살구나무 가지 끝이 봉긋이 솟아오르며 붉게 물들어 간다. 언 땅의 틈새를 비집고 돋아난 연한 새싹들은 단비에 더욱 푸르러 지는 느낌이다. 머지 않아 시샘어린 늦잠꾸러기 개구리, , 나비들이 깨어나면 대지는 새로운 모습으로 약동하리라. 기다리는 마음은 괜스레 들뜨고 바빠진다.  

 

 비가 내리니 무겁던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다. 무료함을 달래려 사진첩을 뒤적이다 어린 시절 사진 속에 묻힌 추억들을 되새겨 보았다. 동산에서 뛰놀던 천진스런 개구쟁이 모습, 아무런 꾸밈없이 생긴 그대로다. 오랜만에 보는 참 촌스럽고 어설프게 생긴 꼬맹이다. 내 모습을 내가 보아도 낯설고 초라하다.

 해맑은 하늘, 정겹던 들녘, 꽃피는 동산, 그리고 이웃들의 다정스런 얼굴들이 떠오른다. 이웃 집 순이, 손이 맞아 자주 싸우던 홍이, 그리고 어머니 같던 할머니, 모두 나를 지켜준 소중한 인연들이다. 빛바랜 흑백 사진 속에 진한 향수가 솟는다.

 

  온통 들과 산으로 뒤덮인 농촌마을에서 더불어 살며, 배우고 계절의 변화 속에 자랐다. 베가 고프면 산과 들에서 삐비와 진달래로 목을 축이며 허기진 배를 달랬다. 산야를 헤매며 심신을 단련하고 지친 영혼에 위로를 받았다. 자연은 나의 스승이요 정직한 벗이었고, 어렵고 힘들던 시절 모두에게 바라만 보아도 위로가 되는 안식처요 요람이었다. 나만이 아닌 같은 시대를 살아온 이웃들이 겪으며 얻은 경험이었다.

 

 점점 삭막해져 가는 세태에 내 변덕을 깨닫지 못할 때가 많다. 일상사에 쫒기고 현실을 도외시하며 낭만적인 가치와 동떨어진 삶을 살아 왔기 때문이다. 키워주고 이끌어 준 자연은, 인간들의 이기심 때문에 각양각색으로 변하여 옛날의 그 정취는 사라지고 말았다. 주위는 더욱 정형화되어 조형된 자태로 우리 곁을 지켜 주니 놀랄 뿐이다. 삭막해진 인생사, 오염된 생활 속에서 지치고 힘들 때면 어릴 적 뛰놀던 산야가 더 그립다.  

 

 이제 꿈을 펼치기도 전에 이미 그 한계를 느끼고 마는 슬픈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순수성을 잃어가며 때론 이기적이게 된다. 상대방이 진심을 다하면 당연히 같은 마음으로 바라봐 줄 줄 알았던 믿음도 사라지고, 삶을 살아가는데 진정이나 노력 말고도 보태져야 하는 요소들이 많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어느덧 어려움이 생기면 지레 짐작하고 내 그릇만큼의 삶을 살아가려는 소극적인 사람이 되어 버린다. 세월을 겪으며 두꺼워진 얼굴만큼이나 마음도 두꺼워지고 있다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세상으로 변해가니 탓할 용기도 잃었다.

 

 온 산야에 돋아나는 새싹처럼 내 안에도 사랑이 돋았으면 좋겠다. 햇볕이 연초록 새 잎새를 피워 내 주위도 감싸 줄 텐데. 더 늦기 전 응어리진 마음을 털고서 이들의 축복에 동참해야겠다. 눈으로 보고 즐긴 것만큼 마음에 새기며, 이웃과 함께 할 수 있는 마음을 가꾸고 싶다. 낡은 굴레를 벗어 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 삶을 준비하고 싶다.  

 

  봄비 속에 돋아난 새싹들이 무디어진 마음에 새 길을 알려준다. 동심을 잃지 말고 가다듬어 이웃과 어울려 살아가라며 “생명은 사랑과 떨어질 수 없다.” 는 대자연의 진리를 일깨워 준다. 생명 속에서 사랑이 숨 쉴 때 삶은 풍요로워 지고 행복의 문은 열리는 것 같다.

                                                           (2019.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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