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답은 만남이다

2019.03.21 06:49

한성덕 조회 수:3

해답은 만남이다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한성덕

 

 

 

 

  우리말에 ‘으름장’과 ‘윽박지르다’가 있다. 전자는 ‘남을 위협하거나 놀라게 하는 짓’이요, 후자는, ‘심하게 윽박아 기를 꺾는다.’는 뜻이다.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 도출에 실패한 걸 보면, 김정은은 으름장을 놓고, 트럼프는 윽박질렀던가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그리 쉽게 돌아서겠는가?

  북한은 바닥민심과 경제활력의 기회로 자신만만했고, 미국은 완전 비핵화 카드로 윽박지르며 자신만만한 것 같다. 그 자신만만함이 자칫 고집이나 오만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래서 정세분석가들은 ‘불발’을 예측했던가?  

  북미정상회담이 뒤틀리고 남북대화가 시답잖다. 대통령의 소통이 가물가물해지고, 여당과 야당간 대화가 꼬인다. 한없이 갑갑해서 기가 차고, 미세 먼지만큼이나 숨이 막히자 지난날 생각이 났다.

 19852,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이튿날부터 단독목회에 뛰어들었다. 목회경험이 전무한데, 전체교인 200명쯤 되는 교회의 담임전도사가 되자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사한 날 밤, 대충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어갈 시간이 1시쯤 되었다. 갑자기 장로님이 방으로 들어와 우리를 앉으라고 했다. 교회형편과 함께 목회지침까지 하달(?)하는데 그 벅차던 가슴이 먹먹해졌다.

  요지는 세 가지였다. 시골은 떠나고 죽는 사람이 많으니까 현 수준만 유지해도 교회부흥이다. 밭에서 일하는 교인들이 많으니 사모가 낮잠을 자면 안 된다. 핵심은, ‘나를 이끌 수 있으면 그렇게 하고, 그러지 못하겠으면 내말을 들으라.’는 게 아닌가? 충고를 넘어 겁박수준이었다. 깐깐한 외모와 성격이 꼬장꼬장한 장로님이었으니, 우리는 얼어붙고야 말았다. 30대 초반 전도사와, 50대 후반 장로님과의 시대차이를 절절히 느끼면서 목회가 시작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장로님은 사사건건 간섭했다. 숨 쉴 여유조차 주지 않았다. 심적 부담으로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불벼락을 맞는 느낌이었으니 아내는 오죽했을까? 장로님은 종종 헛기침을 하며 사택마당에 들어섰다. 괜히 왔다가는 건데 아내는 진저리를 쳤다. 상대방은 아랑곳하지 않고 수시로 그랬다. “거북이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이 실감났다. 그렇게 깜짝깜짝 놀란 아내는 몸이 점점 쇠약해지더니 두 번이나 기절을 했다. 정년(70)은 감감한데 길은 막장이었다. 목회가 이럴 줄은 상상도 못했다그렇다고 목회를 접을 수는 없었다. 숱한 고민 끝에, “어차피 가야할 길이라면 첫 관문을 잘 뚫어보자.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목회가 되겠나?” 싶어서 자주 만나 대화로 풀자고 다짐했다. 어떤 의제나 조건과 상관없이 수시로 만났다. 목회로부터 시작해서 가정사, 자녀들의 진로, 지난한 삶과 군대이야기, 농사와 동네상황 사회활동 등, 시시콜콜한 민담에 이르기까지 격식에서 벗어나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다 보니 시간가는 줄 몰랐다.

 

  그러나 장로님의 웃지 않는 고약한 인상, 칭찬하지 않는 습성, 상대방을 무시하는 태도, 소파에 마주앉으면 으레 다리를 꼬고 팔짱을 낀 채 뒤로 버티는 자세는 장로님의 흠이자 습관이었다. 무례(?)하다는 생각도 했으나 의식하지 않고 자주 만났다. 때때로 장로님 내외분과 식사를 나누기도 했다.

  회의 중 억지가 붙으면 장로님의 얼굴이 붉어지면서 언성이 높아졌다. 예배 중간의 광고시간은 초긴장이었다. 별것도 아닌데 핏대를 세우고 교인들을 다그치면, 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사무실로 불러서 ‘다 어른들이고, ~하면 어~할 정도인데, 어찌 그렇게 인상을 쓰면서 광고를 하시냐?’고 추궁(?)했다. 잔잔한 미소로 장로님의 무릎에 손을 얹고 조곤조곤 말을 했으니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빙긋이 웃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부임한 지 1년이 지났다. 교회의 전반적인 사항을 일임했다. 꼬고 앉던 다리도 팔짱도 풀어졌다. 나보다 먼저 나가 신발을 바꿔놓았다. 교회 내에서 큰소리가 사라지고, 인상 쓰던 얼굴은 웃음이 감돌았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출렁거리고, 교인들은 웃음꽃이 만발했다. 교회의 아름다운 소문이 동네로 흘러들면서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놀라운 변화요, 부흥이었다. 장로님의 나이가 갑자기 떨어지거나 성자가 된 것도 아닌데, 한 사람의 변화로 달라진 게 신기했다. 자주 만나 신뢰를 쌓으며 식사하고 대화로 풀었던 쾌거였다.  

  사람은 누구나 상대방을 알고자하는 성향이 있다. 첫 목회지에서의 장로님은 유난히 더 그랬다. 밤이 깊으면 새벽이 온다지 않던가? 나를 신뢰한 만큼 모든 것을 맡긴 것은 파격적이었다. 목회가 수월해진 것은 두 말 할 여지가 없다. 경험도 없던 처녀목회지에서 얻은 값진 보배였다. 그것은 곧 ‘만남’과 ‘신뢰’와 ‘대화’가 엮어낸 삼위일체였다. 그 어떤 경우에도 자주 만나서 대화를 나누면 풀리지 않을 게 없다는 나름의 진리를 터득한 셈이다.

  지도자 한 사람의 변화가 그토록 중요했다. 목회 전반에서 나를 다독거리고 세워준 교훈이자 큰 선물이었다. 장로님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내외를 못 잊어 하신다. 이제는 연륜도 쌓이고, 그 어떤 이야기도 소화시킬 만큼 성숙했다고 믿기에 수필에 담았다. 그 삼위일체의 선물은 목회하는 내내 버팀목이 되었으며, 나를 야무지게 해서 탄탄한 목회가 되도록 독려했다.

  수시로 만나서 신뢰를 쌓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풀지 못할 게 없다. 세상일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한두 번 만나고 성사를 바란다면, 씨앗을 심지도 않고 추수하겠다는 욕심이 아닐까?     

                                      (2019. 3. 15.)

 

댓글 0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47 더 퍼스트 펭귄 두루미 2019.03.25 4
546 떠나는 날, 금요일 송병운 2019.03.25 3
545 할매들의 추억 쌓기 신효선 2019.03.25 3
544 되나깨나 막말 한성덕 2019.03.25 4
543 좋은 걸 어떡해 곽창선 2019.03.24 6
542 부안 앞바다 이종희 2019.03.24 6
541 호락질하는 사람들 최기춘 2019.03.23 12
540 할머니의 연봉 정남숙 2019.03.23 4
539 묵은 친구 정남숙 2019.03.23 4
538 비행기 아저씨 고안상 2019.03.23 3
537 혼자 걷는다는 것 이진숙 2019.03.23 4
536 태국 여행기(1) 김학 2019.03.22 4
535 태국 여행기(2-4) 김학 2019.03.22 6
534 나이를 따지는 나라 한성덕 2019.03.22 6
533 수필아, 고맙다 김성은 2019.03.21 3
532 상처받지 않을 권리 전용창 2019.03.21 6
531 봄봄 밥차 정남숙 2019.03.21 4
530 새해 복 많이 짓게 해 주세요 최동민 2019.03.21 3
» 해답은 만남이다 한성덕 2019.03.21 3
528 새싹을 보며 곽창선 2019.03.2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