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빈자리

2019.04.02 19:10

고안상 조회 수:3

어머니의 빈자리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고안상

 

 

 

 

  나를 낳아주셔서 세상으로 나올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어머니, 지금까지 어머니가 내 곁에 계셔서 어려움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런데 세월의 무게를 이겨낼 수 없으셨던지, 어머니께서는 아흔둘이 되시면서 요양원으로 들어가셨다.

  이따금 찾아가 뵈오면, 어머니는 내가 그리도 좋은지 “아이고, 우리 큰아들 왔구나!” 하면서 반갑게  맞아주셨다. 그리고 어머니는 “주위에서 나를 복덩이 할머니라고 하니 참으로 좋구나!”라고 하면서 행복해하시니, 나는 얼마나 든든하고 편안했는지 모른다. 어머니와 서로 포옹을 나누고, 지난 시절 얘기를 나눈 뒤 “어머니, 항상 저희 남매들이 있으니오래오래 사셔야 해요.”라고 말씀드리면, 어머니는 “아이고 내 나이가 얼만데, 이제는 가야 할 때가 되었으니, 네 아버지 곁으로 가야지.”라고 말씀하시면서도 흐뭇한 표정을 지으셨다.

 그래도 지난여름까지는 건강이 좋아 보이셨는데 추석이 지난 뒤 찾아뵈었더니, 그냥 바라보기만 하실 뿐,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요양원을 다녀온 뒤, 가슴 졸이며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는데, 여동생한테 어머니께서 다시 웃음을 찾고 건강도 좋아지셨다는 연락이 와 그제야 짓눌렸던 마음을 다소나마 펼 수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 119, 여동생은 “아무래도 어머니가 이상하니 다녀오시는 게 좋겠네요.”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튿날 곧바로 남동생과 함께 어머니를 찾아뵈었다. 어머니는 이미 저 세상으로 먼 길을 떠날 채비를 서두르고 계셨다. 동생들과 어머니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대비하기로 하고, 하느님께 편히 가실 수 있도록 도와주시라며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다음 날, 하늘도 맑고 푸르른 11일 이른 아침, 어머니께서는 세상 모든 것들을 가볍게 훌훌 털어버리고 저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셨다. 어머니께서 편안히 가실 수 있도록 우리 남매들과 손주들, 친지와 교우들은 마음을 모아 기도를 드리며 온갖 정성을 다했지만 아쉽고 후회되는 마음이 가득했다. 어머니의 가시는 길이 복되고 편안한 꽃길이 되도록 염려해주고 빌어준 많은 이들이 있어서 슬픈 우리에게는 따뜻한 위로가 되었다.

 

 어느덧 어머니 떠나신 지 한 달이 다 되었다. 창밖에는 찬바람이 분다.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린 이파리 몇 개가 추위에 으스스 떨고 있다. 주위의 많은 이웃들은 어디론가 떠나버려 옆구리가 시리고 허전하게만 느껴진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과 우리 남매들, 그리고 친지들이 있어서 항상 마음 든든하고 행복했었다. 그래서 춥고 시린 줄은 전혀 몰랐다. 오히려 부모님과 남매들 그리고 친지들이 귀한 줄 모르고 때로는 버겁고 귀찮다는 생각마저 했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그들이 하나둘 내 곁을 떠나간다. 그러면서 내 주위는 헤싱헤싱해져 허허롭기만 하다.

 해마다 봄이 오면 만물은 희망찬 모습으로 새 생명의 싹을 틔우고 또다시 힘찬 도약을 시작한다. 그리고 치열한 몸부림 끝에 마침내 그 결실을 얻는다. 그러나 다시 시간이 흐르면 그들을 떠받쳐주던 이파리들마저 하나둘 떨어져 버리고 결국 온갖 것들은 헐벗은 채 수면의 아래로 잠기고 만다. 그리고 이런 현상들은 해마다 거듭된다. 우리 인간도 자연의 한 부분으로 그 과정을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더욱 쓸쓸하고 허무한 마음 가득하다.

 세상을 떠나신 나의 어머니! 어머니가 계시어 세상은 내가 살아가는데 그렇게 마음 든든하고 편안했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떠나시고 나니 그리도 마음이 시리고 헛헛하기만 하다. 어머니의 품속이 나의 마음을 그리도 편안하고 느긋하게 품어주던 곳이었음을 이제야 사무치게 느낀다. 어머니가 떠나신 빈자리가 너무도 크고 공허하게만 느껴진다.

                                                (2018.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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