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살이의 삶과 죽음

2019.04.05 13:30

김학 조회 수:36


img76.gif

하루살이의 삶과 죽음

김 학


하루살이(mayfly)는 진짜로 하루만 사는 곤충일까? 또 하루살이도 나이를 셀까? 하루살이는 성충(成蟲)의 경우 2시간 정도의 수명밖에 누리지 못한다는 이야기도 있고, 한두 주일 산다고도 한다. 깨끗한 물속에서 1년 동안 살다가 성충이 된다니 하루살이는 1년가량 산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 같다. 그런데 왜 ‘하루살이’라고 이름을 붙였을까? 그 하루살이도 잠을 자고 꿈을 꿀까? 사람 같으면 잠을 자야 꿈을 꿀 수 있고, 오래 살 수 있어야 크고 작은 꿈(희망)을 지닐 텐데…….
나이가 불어나면서 궁금한 일도 참 많다. 하루는 24시간이다. 그런데 하루살이의 수명이 2시간이라면 하루의 1/12밖에 되지 않는다. 그 짧은 수명의 곤충에게 슬기로운 우리 조상님들이 ‘하루살이’란 과장된(?) 이름을 붙여 준 것은 무슨 까닭일까? 제대로 하려면 ‘시간살이’라 표현하는 게 옳은 텐데…….
동물이나 식물의 수명은 천차만별이다. 조물주는 골치 아프게 왜 그렇게 동식물의 수명을 들쭉날쭉 멋대로 정했을까? 일률적으로 정해버렸으면 아주 편했을 텐데, 조물주의 셈법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하늘나라에는 이 지구에서 사는 동식물들의 수명을 관장하는 벼슬아치가 따로 있지 않을까?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은 100세 시대를 목표로 자꾸 수명이 늘고 있다. 사람들의 노력으로 그리 된 것이다. 그래서 9988234란 말까지 나왔다. 남자의 평균수명 50세 벽(壁)이 깨진 게 1947년 이후라고 하니,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불과 60여 년 만에 사람의 평균수명은 엄청나게 늘었다. 또 그게 종착역도 아니다. 세월이 갈수록 사람의 수명은 더 늘어날 테니까.
파리의 수명은 8일이고, 송사리는 1~2년, 지렁이는 10년 정도란다. 토끼는 8년이고, 개는 12년, 고양이는 18년, 그리고 곰과 염소, 원숭이는 20년 정도라고 한다. 동물의 왕인 사자는 25년인데 소와 돼지는 30년, 비둘기와 참새, 하마는 40년, 말은 60년이란다. 뱀장어는 90년이며, 악어와 독수리는 100년, 황소거북은 200년이라 한다. 그러고 보면 힘이 세거나 덩치가 크다고 수명이 긴 것도 아니다.
또 삼나무, 은행나무, 느티나무는 수백 년을 살고, ‘세콰이어(sequoia)’라는 나무는 수천 년을 산다니, 동물보다 식물의 수명이 훨씬 더 길다. 움직이는 동물보다 말뚝처럼 한 곳에 서있는 식물들이 더 오래 산다. 걸어야 건강해진다는 의사들의 처방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1년은 365일이다. 사람에게 1년이란 세월은 그리 긴 게 아니다. 그러나 하루살이에게 1년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긴 시간이다. 하루살이에게도 사람과 같은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이 있을까? 행여 그런 감정이 있다면 그걸 어떻게 표현할까? 하루살이는 입도 없다. 평생에 짝짓기를 한 번 하여 후손을 남긴다. 암컷은 한 번에 4천여 개의 알을 깐다. 그만큼 번식력이 강한 편이다.
하루살이는 외모가 작아서 잘 눈에 띄지 않는다. 여름밤에 시골길을 운전하고 나면 승용차의 헤드라이트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하루살이들의 시체가 들어붙어 있다. 하루살이는 어둠을 밝히는 불빛을 찾아 뛰어들었다가 자신의 천수(天壽)를 누리지 못한다. 그 짧은 목숨마저 다 채우지 못하고 앞당겨 죽은 것이다. 얼마나 슬픈 일인가? 하루살이는 밤거리의 가로등 틈새로 들어가서 죽기도 한다. 밝은 빛이 그리워서 찾아갔다가 목숨을 잃은 것이다. 하루살이들이 그렇게 죽어가도 눈물을 흘리는 이는 아무도 없다.
지렁이의 죽음도 애잔하기는 마찬가지다. 비가 내린 뒤 흙속에 살던 지렁이가 길가로 나와서 꿈틀꿈틀 기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지렁이는 날짐승의 먹이가 되거나 개미들에게 포박되어 끌려가기도 한다. 순하고 순한 지렁이 역시 제 수명을 다 누리지 못하고 죽음을 맞는다. 땅을 비옥하게 할 뿐 남을 해칠 줄 모르는 착한 지렁이가 왜 그렇게 일찍 죽어야 한단 말인가? 지렁이의 죽음은 날짐승이나 개미들에게 육보시(肉布施)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렁이의 죽음 역시 눈물겹도록 안쓰러운 일이다.
동물이나 식물이나 목숨이 있는 존재는 언젠가는 죽기 마련이다. 그래서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 한 것이다. 수명이 길건 짧건 꼭 한 번은 죽어야 한다. 죽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이 지구상에 존재한 생물들의 죽음은 똑 같이 슬프다. 유(有)가 무(無)로 돌아간 것이니 말이다. 백년 천년을 살다 죽든 단 하루를 살다 죽든 그 죽음의 의미는 차이가 없다. 사람이 오래 살다 죽으면 호상(好喪)이라 덕담을 하지만 100년 200년을 살다 죽은 동식물에게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하루살이의 죽음과 200년을 사는 황소거북의 죽음 그리고 수천 년을 살다 죽은 세콰이어의 죽음이 같은 의미로 평가되어도 좋은 것일까? 
                            

 

댓글 0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87 통일의 길 정근식 2019.04.13 39
586 가을 나들이 신효선 2019.04.12 3
585 은퇴도 능력이다 한성덕 2019.04.11 35
584 내가 공주님이라니 김창임 2019.04.09 6
583 아버지의 눈물 이경여 2019.04.08 33
582 맹물처럼 살고파라 고안상 2019.04.08 42
581 말못 한일신 2019.04.08 3
580 좋은 만남, 참된 행복 한성덕 2019.04.08 3
579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 두루미 2019.04.07 3
578 봄길따라 남녘으로 김효순 2019.04.06 3
577 만남의 기쁨 신효선 2019.04.06 8
576 메르켈 독일총리가 사랑받는 이유 한성덕 2019.04.06 7
» 하루살이의 삶과 죽음 김학 2019.04.05 36
574 참회와 행복 박제철 2019.04.05 4
573 [김학 행복통장(71)] 김학 2019.04.03 5
572 와이셔츠를 다리며 정근식 2019.04.03 3
571 어머니의 빈자리 고안상 2019.04.02 3
570 봄이 오면 오창록 2019.04.02 3
569 어쩌다 왼손이 김창임 2019.04.01 4
568 전북수필가들의 <나의 등단작> 출간을 기뻐하며 김학 2019.04.0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