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길따라 남녘으로

2019.04.06 20:03

김효순 조회 수:3

봄길따라 남녘으로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김효순

 

 

 

 

 

 올해도 어김없이 꽃샘추위가 찾아왔다. 주변머리 없이 덜렁 꽃을 피워버린 목련이 떨고 있다. 전주천변 벚꽃망울이 벙글어질까 말까 망설이는 날 아침이었다. 우리부부는 지인이 운전하는 자동차 뒷자리에 손님처럼 앉아 저 남녘으로 꽃마중을 나섰다. 한달음에 구례까지 달려갔다.

 이미 만개한 벚꽃들이 터널을 이루고 있었다. 우리는 저들을 처음 본 것처럼이나 눈이 커졌을 뿐만 아니라 입은 저절로 벌어졌다. 벚꽃터널이 끝나가는 곳에 자리한 자그마한 백반집에서 늦은 점심상을 받았다. 무를 도톰하게 썰어 넣은 꽁치 찌개는 시원하고 감칠맛이 났다. 파릇한 취나물과 미나리무침은 상큼했고, 빨갛게 버무린 게장은 마음까지 달콤하게 만들었다. 이 밥상이 우리 동네 콩나물국밥 한 그릇과 같은 값이라니 고개가 갸우뚱거려졌다.

 강진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순천은 이미 봄이 한창이었다. 겨우내 휑한 속내를 드러내던 숲에는 어느새 연록빛 커튼이 드리워졌고, 가로수는 아기 손바닥만한 이파리들을 흔들고 있었다.

 두어 시간을 더 달려 목적지인 강진 주작산 자연휴양림에 도착했다. 진달래꽃이 절정이어서 멀리 산봉우리가 벌겋게 보였다. 봄날 오후, 바닷바람은 눌러 쓴 우리의 모자를 벗기면서 다소 거칠게 환영인사를 해댔다. 하지만 우리는 산꼭대기에 있는 진달래밭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리 메마른 몸 속 어느 구석에 이리도 고운 빛을 품고 있었을까? 어쩌면 이르지도 늦지도 않는 이맘때가 되면 저 연한 것들은 일제히 타오르는 것일까? 산봉우리 저 너머 서녘 하늘이 붉어지고 있는데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연분홍 꽃 사잇길에서 제자리를 맴돈다. 세 살짜리 손녀 열음이의 볼을 부비듯 그 여린 꽃잎에다 내 거친 뺨을 대본다. 수줍은 향내가 스며들었다.

 다음 날, 한 달 전에 문을 열었다는 강진의 B골프장을 찾았다. 멀리 월출산 자락이 내려와 병풍처럼 둘러처져 있고 눈앞에서는 파란 호수 같은 강진만이 골프장을 감싸고 있었다. 우리는 지난 저녁 아쉽게 작별한 아기 진달래꽃을 거기서 다시 만났다. 두 번째 홀이었을 것이다. 페어웨이 양 옆에서 경비병들처럼 서 있는 잡목들 틈에서 흐드러진 진달래꽃들이 나를 반기는 게 아닌가? 이 봄날을 곱게 물들이는 분홍빛에 마음 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으랴. 함께 온 일행들도 ‘어제 오늘 진달래꽃 구경은 원 없이 한다.’며 즐거워했다.

 나주평야를 거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드넓은 보리밭을 건너가는 봄바람이 초록 물결을 일으킨다. 널따란 배밭에는 미처 봄기운이 당도하지 못한 걸까? 기대했던 하얀 이화() 대신 근방에는 혁신도시라는 이름으로 쏘아올린 로켓 같은 빌딩들이 눈앞을 막아섰다.

 호남고속도로에 있는 백양사휴게소에 들렀다. 아주 오래 전에 자주 오가던 곳인데 오랜 만에 찾아 왔어도 그다지 달라진 게 없다. 우리는 따끈한 커피를 앞에 두고 러시아워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올봄부터 현직에서 물러나 전직 교수 신분이 된 지인에게 ‘새로운 설계도를 잘 그렸느냐?’고 물었다. 그는 ‘지금 이 순간이 선물이다.’는 말을 자주 떠올리겠다고 했다. 성현들은 ‘과거는 흘러가 버렸고 미래는 모르는 일이니, 현재에 집중하면서 살라.’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다만 그렇게 살려고 노력은 하겠다고 했다.

 전주시내 들머리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도로가 한가하다. 하루 사이에 우리 동네에도 봄이 무르익었는지 벚꽃이 피어나서 전주천변이 눈 오는 날의 밤처럼 온통 하얗게 변했다.

                                                  (20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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