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물처럼 살고파라

2019.04.08 20:24

고안상 조회 수:2

맹물처럼 살고파라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고안상

 

 

 

 

 육군화학학교에서 교육을 마치고 ○○사단 화학지원대로 배치를 받아 졸병 생활을 하던 19727월 중순이었다. 나는 부대 고참병 두 명과 함께 유격훈련을 받으라는 명을 받고 두려운 마음으로 사단유격훈련장에 입소했다. 날씨가 무더운 가운데 장마철이라 가끔 장대비가 내렸다. 조를 나누어 코스별로 훈련이 시작되었다. 코스마다 유격훈련을 시작하기 전 조교는 훈련병들이 긴장을 풀지 않도록 체력단련을 위해 피트 체조를 시킨다. 긴장이 풀린 훈련병이 있으면 단체로 오리걸음, 풋샵, 팔굽혀펴기, 원산폭격, 선착순 등 많은 기합으로 항상 긴장을 유지케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유격훈련 코스를 돌다 보면 병사들은 지칠대로 지쳐버린다. 나중엔 마지막 아기 젖먹던 힘까지 동원하여 악을 버럭버럭 써가며 훈련에 임해야만 한다.

  장대비가 내리는 가운데 지칠대로 지쳐버린 우리 조는 개울가에서 기합을 받고 있었다. 심한 기합으로 땀이 뒤범벅된 채 심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 무렵 우리에게 물속에 드러누우라는 지시를 한 조교는 우리를 지옥에서 벗어나도록 해주는 구원자였다. 물속에 드러누운 우리는 이미 흙탕물이 되어버린 개울물을 한동안 꿀꺽꿀꺽 마시며 갈증을 해소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사실 그 흙탕물은 그저 밍밍한 맹물이었지만, 꿀처럼 달게 마신 그때의 물맛을 40년이 훨씬 더 지난 지금도, 옹달샘 물이나 맑은 시냇물을 마실 때 느끼는 그 맹물 맛과 같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물에는 마실 때의 느낌에 따라 짠물, 단물, 떫은 물, 쓴 물, 맹물 등으로 구분되는데 그중 제일 좋은 것은 순수함을 잃지 않은 맹물이다. 장일순은 「노자 이야기」에서 맹물에 대해서

 “물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좋은 물은 무미(無味)한 맹물이다. 아무 맛도 없는 게 맹물로, 이물은 날마다 마셔도 괜찮다. 꿀물은 달지만 오래 마시면 마시기가 싫어진다. 그런데 우리는 가끔 마시는 것을 ‘귀하다.’고 하나, 매일 마시는 것은 별로 귀한 줄 모른다.

라고 맹물의 귀중함을 소개하고 있다.

 나도 여느 사람들처럼 맹물을 참으로 좋아한다. 꼭 옹달샘에서 퐁퐁 솟아나는 시원한 물이나, 산골짜기를 흐르는 맑은 시냇물, 또는 이름난 약수터에서 솟아오르는 그런 물이 아닐지라도 시원하고 상큼한 맛을 지닌 그런 물이라면 더 좋다. 맹물은 아무 맛이 없고 맹맹하다. 그렇지만 옛사람들은 맹물은 모든 맛을 포용하는 덕이 있다고 보았다. 그런 맹물처럼 나도 특별히 향기 나는 그런 사람은 되지 못할지라도 이웃을 받아들이고 품에 안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사람들은 항상 특별하고 자극적이기를 바라지만, 진짜 좋은 것은 맹물처럼 지극히 평범하고 담백한 것이라야 한다. 그래야 질리지 않는다. 나는 맹물이 좋아 친구들과 '맹물회'란 모임을 만들어 40여 년 가까이 잘 지내오고 있다.

  옛사람들은 맹물을 일러 현주(玄酒:제사를 지낼 때, 술 대신 쓰는 맑은 찬물)라 불렀다. 모든 술맛의 근본이 맹물에 있는 까닭에 연회를 시작하기 전에 늘 깨끗한 맹물을 한 잔씩 먼저 마셨다. 그래야 술과 음식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 맹물을 군자차(君子茶)라고도 했다. 온갖 차맛의 근본이 맹물에 있는 것이니, 연회의 마지막엔 군자처럼 맹물 한 잔을 시원하게 들이키며 입을 헹구고 마음을 담백하게 했다.

 노자는 물에는 일곱 가지 덕()이 있다고 했다. 첫째는 물은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높은 위치에 있다 하여 항상 거만하지 않고 스스로 낮은 곳으로 내려올 줄 안다 해서 이를 겸손이라 하였다. 둘째는 물은 흐르다 막히면 멈추지 않고 돌아서 흘러간다. 이러한 덕을 지혜라고 하였다. 셋째는 물은 심지어 구정물까지도 받아준다. 이러한 물의 덕을 포용력이라 했다. 넷째는 물은 어떠한 그릇에도 담긴다. 이러한 물의 덕을 융통성이라 보았다. 다섯째는 물은 바위도 뚫는다. 이러한 물의 덕을 인내와 끈기라고 했다. 여섯째는 물은 높은 계곡 낭떠러지를 흘러내리는 장엄한 폭포수가 되기도 한다. 이런 물의 덕을 용기라 했다. 마지막으로 물은 유유히 흘러가 마침내 바다를 이룬다. 이러한 물의 덕을 대의라 보았다. 이와 같이 노자가 본 물이 지닌 여러 가지 덕을 생각하면서 우리도 많은 것을 깨우치며 물처럼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 가운데, 특히 맹물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남녀노소, 동식물 구분 없이 어느 것에나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생명수이다. 시기하지 아니하고 뜨겁거나 얼었다가 다시 제 위치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 바로 맹물이다. 나는 특별히 달지도 않고, 맵지도 않으며, 쓰다거나 짜지 않은 맹물처럼 그렇게 순수함을 잃지 않으면서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될 그런 존재로 살고 싶다.

                                           (2019.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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