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환점을 돌며

2019.04.15 02:12

이우철 조회 수:1

반환점을 돌며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이우철

 

 

 

 군산새만금국제마라톤대회, 오늘은 군산개항 120주년에 즈음하여 내로라하는 세계의 건각들이 장엄한 레이스를 펼치는 날이다. 새만금사업이 조금씩 진전을 보이면서 그 배후도시로 뜨고 있는 곳, 군산! 행사를 펼치는 월명체육관은 벚꽃이 만개한 탐스런 봉오리를 보니 탄성이 절로 나왔다.

 

 나는 고희(古稀)를 맞으며 나의 의지를 시험해보고 싶었다. 과거 십여 차례 뛰어본 경험은 있지만 그동안 묵혀버렸으니 10km 정도로 가볍게 시작해야 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다지만 그래도 긴장되는 순간이다. 아침 8시에 레이스를 시작하니 1시간 전에 현장에 도착했다. 아침 식사는 부담스럽지 않게 세 시간 전 찰밥 한 덩이로 해결했다. 운동장에는 이미 가족 친지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어떤 이는 트랙을 돌고, 또 준비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시간이 임박해지니 슬슬 선수들이 몰려들었다. 모두 스타트라인에서 출발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다섯 넷 셋 둘 하나! 우렁찬 함성과 함께 출발신호가 울렸다. 수많은 건각들이 스타트라인을 밟으며 장엄한 경주가 시작되었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꼭 이기고야 말겠다는 비장한 각오가 숨어있다. 나도 아침마다 갈고 닦은 기량을 발휘해야 한다. 촌각을 다투는 선수들이야 처음부터 탐색전을 벌이며 긴장할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완주가 목표인 나는 욕심을 내지 않기로 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거늘 옆 사람의 속도를 의식하지 말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왠지 예감이 좋다.

 

 비가 올듯 흐리지만 마라톤경주에는 더없이 좋은 날씨다. 비구름이 주자들의 땀방울을 식혀주며, 지치지 않게 해 줄 것이다. 벚꽃은 만개하여 선수들을 기쁘게 반기고 있다. ‘파이팅, 힘내세요!’ 연도 시민들의 한마디가 용기를 준다. 우리가 사는동안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서로 용기를 주고 버팀목이 되어주어야 한다. 간간이 자원봉사자들이 음료수를 나누어주며 파이팅을 외친다. 마라톤은 흔히 우리의 인생길에 비유하기도 한다. 삶의 길이 그렇듯 힘들고 지칠때면 ‘이처럼 힘든 일을 왜 시작했지?’ 하며 포기하고 싶어진다.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16:32)’고 했다. 이미 자신에게 완주를 약속했으니 끝까지 쉬지 않고 달릴 것이다. 주자들에게 코스는 생각보다 멀리 느껴지기 마련이지만, 30여 분을 달리다보니 반환점에 이르렀다. 그 모퉁이를 돌면서 '후유!'하며 안도의 숨을 내쉰다. 꽃이 필 때가 있으면 질 때가 있고, 산을 오를 때가 있으면 내려올 때가 있는 법, 주자들은 반환점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목표없는 삶은 나침반없는 사막을 가듯 막막하고 힘들기 마련이다. 반환점을 지나왔으니 목표지점은 가까워지기 마련이다. 발걸음은 가벼워지고 속도는 빨라진다. 이제야 주위건물이 보이고 도로변의 탐스럽게 핀 벚꽃이 제대로 보인다. 지난 몇 년간 현대중공업, 한국GM등 대기업이 철수하면서 군산의 경제가 휘청거리고 홍역을 치러야 했던 흔적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아렸다.

 

 

 드디어 운동장에 들어서니 기다리던 아내가 나를 발견하고 카메라를 눌러댄다. 나는 V자를 그리며 자랑스럽게 포즈를 취했다. 늘 그렇듯 나의 아내는 오늘도 새벽부터 일어나 동행해주지 않았던가? 발목은 무겁고 숨은 차지만 ‘내가 해냈구나!’ 하는 안도감에 피니쉬라인을 밟는 순간, 행복에 젖는다. 비록 십여 년 전의 기록에는 못 미치지만 공식기록 1시간15분으로 만족하려 한다. 고희를 맞으며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것 같아 스스로 감동했다.

 

 반환점을 돌며 삶의 뒤안길을 더듬어 보았다. 돌이켜보면 아슬아슬한 게 우리의 삶이었다. 어지러운 세상에서 살아남았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축복이려니 싶다. 아들이 아들을 낳고 나는 이미 할아버지가 된 지 오래다. 엊그제 같던 젊음이 고희에 이르러 멀리 떠나온 이방인처럼 느껴진다. 내 인생의 반환점은 어디였을까? 지천명? 이순? 아니, 아무도 알 수 없는 여정이니 비밀에 덮어두기로 하자. 하나님만이 아실 테지만 내리막길임은 분명하리라.

 

 은퇴이후 우연히 수필을 배우며 뒤안길을 자주 돌아본다. 녹슬어있는 마음의 창고에서 아쉬운 경험을 찾아내고 기름을 치는 일은 영롱한 아침이슬을 꿰는 작업이다. 여지껏 의무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삶이었다면 이제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으니 나의 즐거움이요 은퇴이후의 보람이다. 반환점을 돌고나니 발걸음이 가벼워져 행복이 나에게 다가온 듯하다.

                                                          (2019.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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