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16 06:20
아내의 여행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백남인
오늘은 아내가 모처럼 여행을 가는 날이다. 어젯밤 늦게까지 이것저것 챙기고,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다는 아내는 새벽잠을 깨면서부터 기침을 심하게 했다. 건강한 사람도 여행을 하려면 힘들 것인데, 감기를 앓으면서 여행을 떠난다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며칠 전 큰처남 댁의 별세로 3일간 상가에서 지내고 나서 몸에 무리가 간 듯하다. 결혼 전부터 워낙 의좋게 지내온 시뉘 올케인데다가 친정조카들과도 정이 깊은 사이다. 그렇기도 하지만 적당히 쉬어가면서 몸을 돌보는 성미가 아니어서 더욱 피로가 누적된 것 같다. 그러더니 기어코 몹시 심한 감기를 얻고야 말았다.
내 생각엔 아무래도 감기를 짊어지고 여행을 가는 것은 마음이 놓이질 않아서 극구 만류하는데도 한사코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기야 약속 당일 아침에야 못 간다는 말을 할 수 없을 것임을 나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매일 복용하는 목디스크 약과 판콜 등 응급의료용품을 준비하여 여행을 떠났다.
한 동안 여행을 다니지 않은 아내가 며칠 전부터 이번 여행은 꼭 가려고 단단히 준비하고 있었다. 배낭도 멋있는 것을 사고, 동료와 나눠 먹을 간식거리도 정성껏 준비했다. 모처럼의 여행인지라 집안 일 모두 잊고 친구들과 실컷 즐겁게 다녀오라고 나도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아내는 모임이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동갑계를 비롯하여 대여섯 개가 있는데, 오늘은 동갑계에서 대전광역시 일원으로 2박3일 여정을 잡고 나선 것이다.
전에도 자고 오는 여행을 갈 때면 으레 그랬듯이, 이번에도 여행하는 동안 집에 남아있을 나를 위해 육개장을 끓여 놓았다. 또 내가 좋아하는 마늘나물, 미나리나물, 파나물, 머위나물도 만들어 놓았다. 내 걱정은 말고 건강하고 즐겁게만 다녀오라는 데도 여행 전날이면 그런 걸 모두 준비하느라 고생을 한다.
아침에 정읍역으로 태워다 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도 걱정이 되어 전화를 했더니 새벽보다는 조금 낫다는 것이다. 점심때도 전화를 했다. 목소리가 아침보다는 좀 좋아진 것 같았다. 참 다행이다 싶었다. 저녁에 전화를 하니 목소리가 그리 맑지 않다. 아무래도 이번 여행은 내내 고통을 많이 겪을 것같다.
모레면 아내가 돌아올 것인데 그 때까지 감기를 이겨내고 건강상태가 좋아질는지 또 걱정된다. 하필 여행가는 날 감기가 와서 즐거워야 할 모처럼의 여행을 제대로 하고 올지, 고통스런 시간만 보내다 돌아올지 마음이 편치가 않다.
아내가 집에 없어 세 끼 밥 챙겨먹는 것이 귀찮았던 그 때는 아내의 고마움에 대하여 깊이 느끼는 계기가 되었었는데, 이번에는 아내의 건강이 몹시 걱정되었다.
사흘간의 짧은 여행이, 아내에게는 그것을 통해 얻은 정보와 지식, 친구들과 쌓은 우정과 추억을 한 아름 안고 돌아와 앞으로 살아가는데 커다란 활력소가 되기를 바란다. 나에게는 아내와 떨어져서 느낀 그리움과 아끼는 마음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고, 아내가 집에 없을 때 집안일을 손수 해나가는 자립능력을 기를 수 있는 계기를 준 아내의 여행이다. 부디 일거양득의 멋진 여행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었으면 한다.
모레 정읍역으로 마중을 나가서 건강하고 밝은 아내의 얼굴을 맞이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또 집에 돌아와 말끔하게 정리된 베란다를 보고 활짝 웃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싶다.
(2019.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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