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이 유익이라

2019.04.17 10:54

한성덕 조회 수:12

고난이 내게 유익이라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한성덕

 

 

 

 

 

 오래전의 이야기다. 시험비행 중이던 미 공군 전투기가 추락했다. 조종사는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추락원인이 조종사의 실수여서 다시는 비행기를 탈 수 없게 되었다. 베테랑 조종사였지만 어쩌겠는가?

  그가, 비행에 집중할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암 투병 중이던 어린 딸이, 며칠 전 세상을 떠난 슬픔 때문이었다. 딸과 직장을 한꺼번에 잃고, 실의에 빠져 낙심 속에서 살았다. ‘아빠가 하늘을 날아다닌다.’고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며, ‘나도 하늘로 날아 갈 거라’던 딸이어서 가슴이 더 미어졌다. 그러나 힘으로 자기 딸의 바람을 이뤄주고 싶었다. 그래서 참여한 것이, 미 항공우주국(NASA) 우주탐사 프로그램이었다. 극한체력과 정신력 등 모든 테스트를 무난히 통과하고, 결국은 미 우주선 선장으로 발탁되었다.

  1969721, 인류최초로 달에 발을 내디딘 사람, 그가 바로 아폴로 11호 선장이었던 ‘닐 암스트롱’이다. 그는, 장래가 촉망되는 비행기 조종사였지만, 단 한 번의 실수로 꿈을 날려버린 사람이었다.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여 결국은 우주비행사가 되었고, 세상이 깜짝 놀란 일을 해낸 역사적인 인물로 다시 태어났다.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이 한 권으로 묶여져 있으나, 실상은 66권이다. 그 책 중에 시편이 있다. 시편은 15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그래서 기독교 신자든 아니든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책이다. 특히, ‘시’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필수과목 이상으로 애독하며 시편사랑을 듬뿍 쏟아낸다.

  그 시편 11971절에서,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 라고 기록했다. 이 말씀에서 ‘고난이 내게 유익이라’는 제목을 얻었다. 하지만, 고난이 ‘유익’이라니 어느 누가 좋아하겠는가?

  닐 암스트롱은, 고난을 당했으나 전화위복이 되었다. 얼마든지 ‘고난이 내게 유익이라’고 말할만한 가치가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서 나올 법한 고백이기도 하다. 사람마다 고난 없이 평안히 산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세상은 고난의 여정’이라고 말하는 게 솔직할 듯싶다.

  이쯤에서 아내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실은 그 얘기를 하고 싶어서 여기까지 써내려왔다. 아내는, 두 종류의 암(유방, 갑상선)으로 고통을 경험한 전력이 있다. 형제나 친구들이 전화하면 건강부터 묻는 이유다. 지금은 잘 극복해서 건강하게 지낸다. 그 바람에, 전국교회를 순회하며 간증과 찬양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전화위복이요, ‘고난이 내게 유익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둘 다 5년이 경과돼 완치판정을 받은 상태다. 그래도 어디가 아프면 ‘또 암인가?’ 싶어서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아내가 3,4개월 전부터 배가 살살 아프다고 호소했다. 그때마다 한의원에서 뜸을 뜨고, 침을 맞으며, 찜질로 이겨냈다. 그러면 좋아져서 식사도 잘하고 탈 없이 지냈다. 410일 수요일, 아침부터 복부를 움켜쥐는데, 오만가지 ‘인상박물관’이었다. 역시 한의원에서 통증을 달랬다. 그날 밤 다시 도지면서 잠을 내던지고 끙끙 앓았다. 숨을 죽인 채 암이 아니기를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병원에 갔다. 초음파와 위내시경 검사결과 ‘십이지장궤양’이었다. 의사는, 조금만 더 진행됐으면 천공(穿孔)이 생겨 큰일 날 뻔했다며 되레 숨을 죽였다. 아내의 병력을 아는 터라 ‘암’은 아니라고 안심시켰다. 초긴장 상태였다가 그 말을 듣는 순간 안도의 날숨을 토했다. 곧바로 입원실로 들어갔다. 아내의 커다란 동자(瞳子)에서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나를 빤히 쳐다 보며 ‘암인가 싶어서 걱정했다’고 울먹였다. 그리고 내 품에 와락 안겼다. 아내의 등을 다독거리는 그 짧은 시간이, 천리를 걸어온 느낌이었다. ‘실은, 나도 걱정했다’는 말에 눈물을 흘렸다.

  두 번의 ‘암’이, 서로가 차마 입을 열수 없게 했다. 우리에게서 ‘암’이란, 그만큼 깊은 상처와 번뇌와 고통의 블랙홀이었다. 입원해서 치료를 받는다고 금방 좋아지지는 않았다. 심한 통증 때문에 2,3일 동안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 극심한 고통을, 아내는 ‘아이 낳는 통증 이상’이라고 표현했다.

  인생살이에서, 고난이 없다거나 피해갔다고 소리칠 자가 누군가? 어차피 오는 것이라면, 그저 ‘고난이 내게 유익이라’고 품어버리면 어떨까 싶다.

 

                                             (2019.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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