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누가 합니까

2019.04.17 13:03

김상권 조회 수:18

그럼, 누가 합니까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상권

 

 

 

 

 참으로 오랜만에 영화를 봤다. <항거 : 유관순 이야기>. 19193 1 만세운동 이후 우리가 몰랐던 서대문 형무소 8호실 여감방의 1년을 담은 영화다. 유관순 열사를 그린 영화는 1974<유관순>을 끝으로 45년 만이다.

 첫 장면이 섬뜩했다. 용수를 쓴 채 손과 몸뚱이는 포승줄로 묶여있고, 두 발은 쇠줄로 감은 죄수를 개를 끌 듯 끌고 와서는 여간수에게 인계했다. 수감번호 371, 한자로 유관순이란 명찰을 가슴에 달고 8호실 여감방에 들어서자 작은 소란이 벌어졌다. 어느 아주머니 수감자가 다짜고짜로 유관순을 향해 “저 년 알지? 그깟 독립이 무엇이 중하다고.” 하며 대들었다. 알고 보니 그 여인은 같은 동네에서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라던 만석 어머니였다. 3 1 만세운동 때 아우내장터에서 만세를 부르다 자기 아들이 죽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를 본 어느 한 수감자가 나서서 “누가 시켜서 만세를 불렀습니까?” 하며 유관순을 감싸주었다.

 3평 남짓 비좁은 8호실에는 우리가 반드시 함께 기억해야 할 다양한 20명이 넘는 수감자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유관순을 비롯해 수원에서 기생 30여 명을 데리고 만세운동을 주도한 기생 김향화, 다방 직원이었던 이옥이, 이화학당 유관순의 선배 권애라, 시장통에서 장사하다 아들을 잃고 만세운동을 시작한 만석 모, 아이를 가진 수감자로 갖은 고생 속에서도 아이를 키워낸 임명애 등이다.

 그녀들은 교대로 잠을 자야 했고 가만히 앉아있으면 다리가 퉁퉁 부어오르니까 방안을 빙빙 돌며 걸어야 했다. 아리랑을 부르며 돌았다. 한두 사람이 부르기 시작한 아리랑을 점차 다 같이 부르면서 소리가 커졌다. 여간수의 조용히 하라는 말에 조용해지자 관순은 “우리가 꼭 개구리 같네요.”라고 했다. 울다가 사람이 오면 뚝 그치는 개구리. 다들 개굴개굴, 개굴개굴하며 울기 시작한다. 조용히 하라는 말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 개굴개굴, 개굴개굴 우니까 간수의 그치라는 소리에 수감자 가운데 누가 “우린 개구리가 아니다.”라고 명확한  일본어로 소리친다. 결국 주동자로 몰린 관순은 고문실로 끌려가. 벽관 형벌을 받는다. 몸 하나 움직일 수 없는 벽관에서 3일 버티기도 힘든데 7일을 버틴다.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온 관순은 기력이 회복하기가 무섭게 스스로 노역을 하겠다고 나선다. 시간을 알고 싶어서였다. 관순은 조선인이자 일본의 앞잡이로 자신을 고문하는 니시다(정춘영)에게 부탁한다. 그리하여 양잿물로 빨래를 하는 곳에 가게 된다. 지독한 노역에 시달리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관순에게 친일간수가 “자유란 무엇이냐?”고 묻자 관순은 “하나뿐인 목숨을 내가 바라는 것에 마음껏 쓰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몸도 성치 않은데 곡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는 동료의 말에 그냥 밖은 어떤지 알고 싶어서 그런다고 한다. 그녀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곧 다가오는 3 1 만세운동 1주년에 맞게 다시 만세를 부르려는 것이었다.

 

  요주의 인물로 감시가 심한 그녀는 빨래하던 중 갑자기 쓰러진다. 동료의 도움으로 감방으로 돌아온 관순은 “만세 1주년인데 빨래만 하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3 1운동 1주년이 되는 그날, 유관순은 감방 안에서 동료들과 함께 모두의 마음을 담아 만세를 부른다.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떳떳하게 외쳐라!”

 “대한독립만세! 대한독립만세! 대한독립만세!”

만세는 여감방 8호실을 시작으로 서대문 형무소 전체로 퍼지게 되고 형무소를 지나는 사람들에 의해 밖으로 소식이 전해져 다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게 된다.

 이 일로 유관순은 다시 고문실로 질질 끌려간다. 고문실로 끌려간. 관순은 니시다에게 무자비한 구타와 발길질을 당하고 손톱을 뽑히는 고문까지 당한다. 손톱을 뽑을 때는 비명이 서대문 형무소 전체로 울려 퍼졌다. 온몸이 오싹하고 떨렸다. 니시다는 무자비한 구타를 하면서 네가 그렇게 잘났느냐고 비웃자 관순은

 “왜놈 개 노릇을 하는 네 놈보다 잘났다.”

고 대꾸한다. 강도 높은 고문을 지시하는 일본인 보안과장. 손을 결박해 공중에 매다는 형벌 이른바 만세 고문을 시작한다. 3 1운동 정신을 모욕하려는 뜻이었다.

 “그게 너희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만세 맞지? 이제 만세를 불러 봐.”

 “야, 이 도둑놈들아, 너희들 세상이 오래 갈 것 같으냐?

끝까지 신념을 굽히지 않는 관순은 지하감방 독방에 갇힌다.

 “하느님께서 고통을 덜어주시진 않겠지만 견딜 수 있는 힘은 주실 거야.”

 반면 8호실 수감자들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지 않겠다는 조건에 서명한 뒤 형량이 반감되어 대부분 감옥을 나가게 된다. 하지만 유관순은 출소 이틀을 앞두고 심한 고문 후유증으로 옥중에서 순국한다. 열일곱 나이에 고문과 핍박을 견디면서도 끝까지 신념을 굽히지 않은 유관순이었다.

 “나는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다시 할 거에요.”

라고 말하는 유관순. 나 같았으면 이런 고문을 견딜 수 있었을까? 아마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어느 남자 죄수가 만신창이가 되어 누워있는 유관순에게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요?

 “그럼 누가 합니까?

가슴이 뭉클하고 부끄러웠다.

                                                       (2019.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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