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비게이션 에피소드

2019.04.18 05:51

신효선 조회 수:4

내비게이션 에피소드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신효선

 

  남편은 부여 궁남지 버드나무 연두색을 사진에 담고자 목적지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한다. 요즈음은 자동차에 대부분 내비게이션이 있고, 스마트폰에도 이러한 기능이 있어서 초행길도 어렵지 않게 찾아간다. 운전대 잡은 남편에게 내비게이션 다시 점검하라는 말 한마디를 건네며 의미 있는 미소를 지었다.

  나는 며칠 전 남편과 하와이에 갔었는데  007 영화의 한 장면과 같은 일을 내비게이션 때문에 경험하였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신혼여행지로 많이 찾는 휴양지. 태평양 한복판에 자리한 수정처럼 맑은 에메랄드빛 바다와 야자수가 즐비하게 늘어선 이국의 정취가 느껴지는 낭만의 해변. 신혼여행, 가족여행, 커플여행의 세계적인 명소로 알려진 하와이를 남편과 나는 자유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자유여행 때 남편은 완벽하게 준비한다고 했는데, 인쇄물을 놓고 가는 바람에 여간 낭패가 아니었다. 이번에는 렌터카로 운행을 해야 하니 준비할 게 많았다. 남편은 이동통신사 대리점에 가서 스마트폰에 구글맵을 깔아 내비게이션 기능도 준비하고 데이터 로밍도 하고 자신 있게 떠났다.

  호놀룰루 공항에서 렌터카 사무실을 찾아가 자동차에 내비게이션을 우리말로 바꾸어 여행이 시작되었다. 이틀 동안은 내비게이션 도움으로 즐겁게 여행을 마쳤다.

  오늘은 공항에서 아침 8시 비행기로 작년에 킬라우에아 화산이 폭발하여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이웃 섬 빅아일랜드에 가는 날이다. 자유여행으로 외국을 갈 때는 언제나 낯선 곳이라 항상 긴장하게 된다. 자동차 기름도 채워 렌터카도 반납하고 비행기를 타기 위해 서둘러 430분쯤 호텔에서 나왔다. 자동차 시동을 걸고 내비게이션을 켜니 작동이 되질 않았다. 남편은 이리저리 한참을 살피고 조작하더니 가까스로 작동이 되었다. 이틀 동안 아무 탈 없이 안내했으니 오늘도 잘 되겠지 하고 출발했다.

  고속도로를 눈앞에 두고 갑자기 내비게이션이 작동을 멈추었다. 황당했다. 그동안 친절하게 도와주던 내비게이션이 갑자기 심통을 부리다니 어찌 된 일인가? 호텔에서 출발할 때 일도 있어 어떻게 잘 되겠지 하고 차를 세워 내비게이션을 살펴보았지만, 이번엔 어찌 된 영문인지 아무리 손을 써보아도 되지 않았다. 스마트폰에 다운받은 T맵을 켜보니 경로는 표시가 되는데 소리가 나질 않으니 쓸모가 없다. 시간은 흐르고 새벽이라 이따금 지나다니는 차량 외에는 아무도 없어 누구의 도움도 요청할 수가 없었다. 다급해진 남편은 한국의 이동통신사와 파리에 있는 아들에게 연락해 보아도 되질 않았다. 한국에서 데이터 로밍을 해왔는데 어찌 된 영문이지 통화는 두절 되고 엉뚱한 메시지만 떴다. 천리타향 낯선 곳에 둘이서 깊은 늪으로 떨어진 불안감이 엄습해 오면서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고속도로에 진입해서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 다행스러웠다. 남편에게 오늘 여행을 포기하자고 했지만 남편은 의외로 침착했다. 속담에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남편은 근처에 있는 주유소를 찾아갔다. 외국은 주유도 셀프인데 새벽 시간이라 한가해서인지 서비스해 주었다. 주유하면서 이사람 저사람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한국어 버전의 내비게이션을 누가 해결해 주겠는가? 이웃 섬 여행은 못 해도 렌터카나 무사히 반납했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남편이 주유하던 청년에게 내비게이션을 보여주니, 청년 역시 내비게이션은 어찌하지 못하고 본인도 공항까지 간다며 따라오란다. 너무나 고맙고 반가웠다. 사람 내비게이션을 만난 것이다. 공항 근처에 렌터카 회사가 있기 때문에 청년에게 천천히 가달라고 부탁하고 뒤따랐다. 고속도로에 접어들어 행여 앞 차를 놓칠세라, 다른 차가 끼어 들까,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청년 차를 따라갔다. 우리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무심하게도 어느 틈에 차량이 세 대까지 끼어들었다. 007 영화의 장면을 생각하며 무사히 도착하기만을 기원했지만 공항 근처 두 갈래 길에서 청년을 놓쳐버렸다. 청년은 천천히 가면서 우리 차를 향해 무어라 손짓을 했고, 남편은 고맙다고 응답했다.

  렌터카 회사를 찾아 차를 반납하고 비행기를 타야 한다. 남편은 이정표를 보면서 이길 저길 운전해 보지만 렌터카 회사를 찾지 못했다. 온 길을 다시 돌고, 때론 샛길을 역주행하다 후진하기도 하다가 다행히 친절한 운전자를 만나 가까스로 회사로 가는 길은 찾았지만 회사는 찾을 수 없었다. 주유소에 들러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으나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그곳에 주유하러 온 차에 탄 소년이 남편 이야기를 관심 있게 들었는지, 여기서 얼마 안 가면 렌터카 회사가 있다며 가르쳐 주었다. 그 소년의 설명대로 가는데 또 사거리가 나왔다. 남편은 우회전을 하다말고 깜박이를 켜고 차를 세워 아무래도 이상하다며 망설이고 있는데, 마침 그 소년이 지나가다가 우리를 보고 가는 방향을 이야기해 주었다. 가르쳐준 길을 따라 어느 정도 가니, 또 갈림길이 나왔다. 잠시 망설이다 둘러보니 바로 옆에 회사가 있었다. 서둘러 차를 반납하고 아슬아슬하게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오늘 일정은 포기했는데 무사히 비행기에 오르니 긴장이 풀려 온몸이 나른했다. 모두가 하나님의 보살핌이라 생각하며 감사 기도를 드렸다. 빅아일랜드에 도착해서도 차를 렌트하여 섬을 돌아 킬라우에아 화산을 보고 호놀룰루로 돌아가야 한다. 내비게이션 공포가 생긴 남편이 아침 사정을 이야기하고 좋은 내비게이션을 달라고 했더니, 새로운 내비게이션을 주었다. 내비게이션이 고장은 없었으나 조작이 새로워 어려움은 겪었지만 무사히 여행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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