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 소야곡

2019.04.19 20:05

김삼남 조회 수:7

진달래 소야곡(小夜曲)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김 삼 남

 

 

 

 

 

 하동포구 매화가 피고 지면 진해에 벚꽃이 활짝펴 군항제가 열리고, 전국적으로 벚꽃놀이가 시작된다. 벚꽃은 밤사이에 만개해도 비바람에 흰 눈 날리 듯 우수수 진다. 예부터 화무십일홍(花無十日泓)이라 하지만 더욱 벚꽃은 단명하고 향이 없어 벌나비도 반기지 않는다. 그래도 벚꽃이 일시에 피고 지는 모습이 일본 국민성과 닮았다 하여 일본국화가 되었다. 벚꽃의 선조는 우리나라 제주도 왕벚꽃이어서 국민들이 좋아 하는지도 모르겠다.

 

 벚꽃이 지고 새잎이 돋아나는 4,5월이면 양지바른 척박한 비탈길에 진달래가 분홍색 꽃망울을 터트린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진달래는 잎부터 피는 철쭉과 대조적이다. 진달래는 봄볕으로만 피지 않고 지난 여름 뜨거웠던 사랑으로 추억을 깊이 새겨 겨우내 그리움 꾹꾹 눌러 두었다가 봄이 되면 울컥 뿜어내며 처연하게 핀다. 진달래는 배고픈 시절 먹을 수 있는 참된 꽃이라 하여 진달래꽃이라 이름지었다 한다. 꽃이 가지각색 지천으로 피고 정성들여 가꾸어도 먹을 수 없는 철쭉과 비교된다.

 

 진달래 종류도 털진달래, 흰진달래(희귀종), 왕진달래, 반들진달래, 한라산진달래(열매가길쭉) 등 여러 종류다. 진달래는 생명력이 강인하여 척박한 땅이나 산성 토양에서도 잘 자라고, 여수공단 옆 영취산 진달래 공원처럼 산업공해도 잘 견뎌낸다. 가난과 질곡의 일제식민 치하에서도 우리 땅을 지키며 고운 꽃을 피워 온 것은 우리 민족의 정서와 닮았다. 사치나 자만스럽지 않고 은은한 자태로 오래 피는 것은 수줍음으로 낯 붉히는 누님같기도 하고, 늦가을 밤 봉창을 두드리고 사라저 가는 여인의 발자국 여운처럼 오래도록 그리움 주는 꽃이다.

 

 벚꽃이 요란스럽게 활짝 피고 지는 모습이 소나타 첫 악장과 끝 악장을 듣는 것 같지만 진달래는 소야곡 선율처럼 잔잔하게 오래도록 여흥을 준다. 무궁화가 국화이듯 진달래는 오랜 질곡의 역사와 민족혼이 깃든 민족화라 부르면 좋겠다. 벚꽃축제라는 말은 일본국화잔치가 되어 국민정서에 맞지 않는다. 그래서 만개한 한강변 벚꽃을 봄꽃놀이축제라 부른다.

 

 내가 자란 옛 동네는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가 꽃대궐을 이루었다. 아버지가 진달래 한아름 꺾어 주고 버들피리 만들어 주어 골목길을 불고 다닌 추억이 그립다. 어머니가 만든 진달래 꽃전과 진달래 찹쌀술로 아버지의 화전놀이 하시던 모습이 어제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 나는 소월(素月)의 진달래꽃 시집과 오랜 인연으로 진달래꽃을 더욱 사랑한다. 20대 초 푸른 꿈을 안고 사법고시 준비를 절골에서 했었다. 관촌 윗머리 만덕산 줄기에 있는 신흥사 한증막에서 생활했다. 신흥사가 있는 상월리는 선조 대대로 삶의 터전이었다. 그곳에서 밤낯 가리지 않고 새소리 짐승소리를 들으며 전깃불도 없는 석유 초롱불 밑에서 유일한 말벗은 진달래꽃 시집이었다. 봄이면 한증막 주변에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었다. 신흥사 입구에 오래된 귀목아래 쉼터와 부도가 있고, 흙담 오두막 한 채에 노부부와 노총각이 화전을 일구며 살았다. 노총각은 장작지게를 지고 굽이굽이 재를 넘어 전주 싸전다리 시장에 가서 나무를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던 어느날 노총각은 전주처자와 결혼하여 새 살림을 차렸다. 새아씨는 외로움에 지치면 진달래꽃 한아름 안고 한증막 건넛길을 오가며 외로운 신세타령 노래를 자지러지게 부르곤 했었다. 애잔한 노랫소리는 김소월의 진달래꽃 여인을 닮은 것만 같았다. 무슨 인연으로 첩첩산중 이곳까지 시집을 왔을까? 아마도 진달래꽃 여인과 같은 사연을 가슴 깊이 안고 있는 것 같다. 노래소리를 들으며 짠한 마음으로 진달래 꽃이란 시를 읽고 또 읽었다.

 

진달래꽃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영변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라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중략)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김 소월[본명 김정식(金廷湜)]1902년 평북 구성군 서산면 외갓집에서 태어나 100일 후 본집 정주군 곽산면으로 돌아왔다. 오산중학교를 거처 배재고등학교 5학년 편입 당시 (1922) 엄마야 누나야>, <진달래꽃> 등을 발표했고, 진달래꽃이란 시집은 1925년에 발간했다.(127) 슬하에 딸2 아들3을 두고 1934년 원인 모를 이유로 32세의 짧은 삶을 마감했으니 얼마나 서글프고 애석한가?

 

 온 나라가 벚꽃 가꾸기에 경쟁을 벌인다. 반짝 피고 지는 벚꽃의 화사함에 넋을 잃은 광관객 손짓보다도 이곳저곳에 진달래 꽃동산을 만들어 진달래꽃 서정을 펼쳤으면 좋겠다. 이 봄날에도 영변 약산 진달래꽃이 핵시설 방사능 오염을 이겨내고 피어 있는지 궁금하다. 소월의 5남매 후손들은 지금쯤 북녘땅 어느 곳에 살고 있을까? 남과 북이 통일되어 진달래꽃동산을 가꿔 김 소월 시인의 넋을 위로했으면 좋겠다.

                                           (2019.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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