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30 05:35
당신이 있어 행복해요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한성덕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30분이면, 군산찬양콘서트 홀을 찾는다. 목사님 한 분의 온 가족이 자발적으로 운영하는 ‘찬양전문 홀’이다. 아내가 갑상선암 수술을 받은 뒤부터 줄곧 다니고 있다. 어느 덧 4년째다.
그 목회자에게 영리한 두 딸이 있다. 공교롭게도 둘 다 KBS라디오 전주방송국 PD들이다. 우리가 금슬 좋은 잉꼬부부라며 인터뷰를 요청했다. 정한 날 인터뷰를 마쳤다. 방송 프로그램이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여서 인터뷰에 이어 낭독한 편지가 전파를 탄 게 아닌가?
우리의 만남을 노래로 시작했으니, 인생의 마지막 또한 노래로 마치기를 바라며 당신에게 이 글을 띄웁니다.
1979년 시월, 당신은 선교유치원 교사요, 나는 총신대학교 2학년 스물여덟이었지요. 교육전도사로 있던 서울의 봉천동 한 교회에서 만났습니다. 가슴이 쿵쾅거려 피아노를 쾅쾅 두드렸더니, 진정은커녕 설렘만 더 커졌어요.
살며시 열리는 출입문 사이로, 살포시 웃음 띤 천사의 미소가 보인다 싶었는데 순간 함박꽃이었습니다. 당신의 그 함박꽃 웃음은 아직도 선명합니다. 여지껏, 내 삶의 에너지가 되고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눈이 큰 당신의 미모에 반하고, 피아노 치는 실력에 놀라고, 노래하는 천상의 소프라노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런 아가씨를 상상하며 기도 중이었는데, 당신이 바로 내 앞의 신데렐라였어요. 꿈인가 했지만 엄연한 현실이었습니다. 더 이상 뭘 바라겠어요? 첫 만남에서 난 결혼을 결심했습니다.
일 년 동안의 열애로 몸을 달구고, 누가 업어갈까 봐 애를 태우며, 그리움이 태산만큼이나 커진 이듬해 시월, 우리 둘은 한 몸이 되어 오늘까지 30여 년을 살고 있습니다.
“여보, 이왕에 만났으니 행복하게 삽시다.”
그랬잖아요? 그 행복은 천사의 미소로 다가왔어요. 당신이 가는 곳마다 연인처럼 좋아하고, 분위기가 살아나며, 피스메이커(peace maker) 같았으니 여름철의 시원한 사이다였지요.
그런 우리에게, 악마의 가혹한 시샘이 달라붙었어요. 칠팔년 전 당신이 유방암으로 판정받던 날, ‘내 아내 금숙이가 이렇게 죽나?’ 싶어서 난 그만 펑펑 울었답니다. 꿈이기를 바랐으나 현실이었어요. 그래도 노래는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기쁨으로 잘 극복하며 한 해 두해를 살고 있었습니다.
그 뒤로 4년쯤 되었을 때, 암이 또 숨어들어 당신의 갑상선을 손상시켰습니다. 성대에 치명적일 수 있는데 이 무슨 날벼락입니까? 울만한 기력마저 쇠진해버린 나 자신을 바라보며, 한없이 초라해서 원망을 토해냈습니다.
나는, 두 번의 암수술이 ‘나 때문’ 이라는 자괴감에 빠지고, 당신은 더 이상 노래할 수 없다는 좌절감으로 우울해졌어요.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의 행군이 우리 앞에서 요동치고 있었습니다. 앞길이 참으로 막막했어요.
그 뒤로, 당신의 성대가 점점 회복되었습니다. 활기가 솟아나고 사는 맛이 새삼스러우며, 두 번의 인생을 산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나 역시 이루 말 할 수 없는 기쁨이었으니, 행복이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왔어요.
“여보, 우리의 생애가 위대하지 않아도 좋아요. 가진 게 많지 않아도 괜찮아요. 낮은 자리에 처해도 상관없어요. 우리 스스로 위대하게 살고, 부자처럼 살아가며, 저 낮은 자리에서 겸손하면 되잖아요? 기쁨은 늘 우리 곁에 있을 거예요. 예수님의 모습을 조금씩 흉내 내는 것을 행복으로 느끼며 삽시다.”
당신의 이 말 생각나요? 내 인생의 좌우명으로 채워진 명언입니다. 나는 앞으로도 당신이 노래하는 곳에는 나도 함께 가고, 당신이 멈추는 곳에서 나도 쉬며, 당신의 호흡이 끝나는 그날까지 동행할래요. 오늘도 당신이 있어 나는 행복합니다. 한 몸 되게 하신 하나님의 은총을 더욱 감사드려요. 여보, 사랑합니다. ~샬 롬~
(2019. 4. 28.)
* 2016. 5. 17일, KBS라디오 방송에서, 아내에게 보낸 편지글을 낭독한 전문)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647 | 누나 | 김창임 | 2019.05.08 | 52 |
646 | 천운 지운 인운 | 두루미 | 2019.05.08 | 104 |
645 | 우리 만남은 | 송병운 | 2019.05.08 | 58 |
644 | 어머니의 손 | 한성덕 | 2019.05.08 | 52 |
643 | 어버이날과 효사상 | 고재흠 | 2019.05.07 | 55 |
642 | 아름다운 인연 | 최인혜 | 2019.05.06 | 7 |
641 | 이것 진짜입니까 | 홍성조 | 2019.05.06 | 5 |
640 | 아직도 아픔의 역사가 끝나지 않은 보스니아 | 이종희 | 2019.05.06 | 4 |
639 | 어머니의 유언 | 한석철 | 2019.05.05 | 7 |
638 | 유튜브 레볼루션과 수필의 적극적이고 다양한 독자 수용방법 | 최시선 | 2019.05.04 | 8 |
637 | 달챙이 숟가락 | 김학철 | 2019.05.03 | 23 |
636 | 천식이와 난청이의 불편한 동거 | 곽창선 | 2019.05.02 | 5 |
635 | 피아노소리 | 정근식 | 2019.05.02 | 6 |
634 | 유튜브 혁명과 수필의 역학성 | 유한근 | 2019.05.02 | 13 |
633 | 비비정을 찾아서 | 김용권 | 2019.05.02 | 5 |
632 | 지혜로우신 어머니 | 고안상 | 2019.05.01 | 5 |
631 | 직지(直指) | 김학 | 2019.04.30 | 6 |
» | 당신이 있어 행복해요 | 한성덕 | 2019.04.30 | 4 |
629 | 감동을 주는 칭찬 방법 | 두루미 | 2019.04.29 | 4 |
628 | [김학 행복통장(74)] | 김학 | 2019.04.28 | 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