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우신 어머니

2019.05.01 05:54

고안상 조회 수:5

지혜로우신 어머니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고안상

 

 

 

  끼니를 거를 정도로 먹고살기 어렵던 1950년대 후반, 어느 마을이나 동냥을 하려고 날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들 중에는 탁발승이나 상의 용사, 장애인, 또는 사지가 멀쩡한 걸인이나, 심지어 천형을 받았다는 나환자도 있었다.

 대부분은 집주인이 그들에게 동냥으로 곡식을 주면 그걸로 끝이 났다. 그러나 나환자가 마을에 나타나면 애들인 우리는 쏜살같이 자기 집으로 달려가 몸을 숨겼다. 문둥이라고도 부르던 나환자가 아이들을 잡아간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숨을 헐떡거리며 방으로 숨어들어온 뒤, 문둥이도 뒤따라 집으로 찾아왔다. 그러면 우리는 문구멍으로 어머니에게 구걸하는 나환자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손가락이 없는 뭉툭한 손에 들린 동냥 바가지, 눈꼽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빨간 눈언저리, 문드러진 코를 보며 오돌오돌 떨곤 했었다.

 우리나라에서 소록도가 생기기 전까지는 나환자는 이리저리 떠돌면서 걸식하고, 온갖 험담을 들어가면서 감금되기도 하고, 돌팔매질을 당하거나, 때로는 죽임까지 당하는 가혹한 대우를 받았다. 현대의학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나병은 전염이 되지 않는 병이고, 도중에 치유되어 나을 수 있지만, 조선시대는 물론 그 당시까지도 이런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은 편이었다.

 그러면 왜 그들이 사람들의 기피 대상이 되었고, 또 어린이들에게는 그렇게 큰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을까? 오랜 속설에는 어린아이의 간이 나병의 특효약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그들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사람을 죽이거나, 사람의 고기를 먹었다는 소문이 심심치 않게 전해지고 있었다.

 명종 19년에 경상도 상주에 살던 정은춘은 같은 동네 일고여덟 살 된 아이를 꾀어 산에 들어가 배를 가르고 쓸개와 살을 구워 먹은 일이 있었다고 전한다. 이 사건으로 명종은 매우 놀라 자세히 취조토록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을 약으로 쓰는 일이 근절되기는커녕 오히려 유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명종 21년에는 한양에서 더 참혹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기록도 있다. 사람을 죽여 쓸개를 빼가는 일이 자주 일어났고, 이로써 처벌받는 사람도 많아졌다고 한다. 그 뒤에도 이런 사건이 이따금 일어나게 되자, 조정에서는 사람을 해친 자는 엄벌로 다스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 결과 차츰 그런 일이 줄었지만 그런 이야기들이 오늘날까지도 전해져서 어린애나 그 부모가 더 조심하게 된 것 같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도 실제 ‘나환자가 어린애를 잡아다 간을 빼먹었다.’는 무시무시한 소문이 나돌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환자에게 가까이 가는 것을 꺼렸다. 아이들은 나환자가 나타나면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무서워했다. 길을 가다가도 보리밭을 지날 때는 더 겁이 났다. 나환자가 보리밭에 데리고 가서 간질여 죽인 뒤 간을 빼먹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그래서 학교에 다닐 때면 여럿이 떼를 지어 보리밭이 있는 등성이를 지나가곤 했었다. 거기다 나는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이웃 마을에 사는 담양댁 이야기를 듣고 난 뒤부터 더욱더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담양에서 정읍 내장산 아랫마을로 시집와서 사는 담양댁이 큰아들을 낳아 기르다 친정에 다녀올 일이 생겼더란다. 친정에 가서 며칠을 지낸 뒤, 아이를 업고 담양군 용면 쌍태리에서 순창군 복흥면 소재지로 가는 추령재를 오르고 있었다. 땀을 펄펄 흘리면서 그 당시만 해도 인적이 드문 추령고개에 다다랐을 무렵, 바랑을 짊어진 나환자 두 사람이 그녀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이에 깜짝 놀란 담양댁이

 “웬일로 이렇게 내 앞을 가로막으시오?

라고 큰소리를 치니, 그들 중 한 사내가

 “그 아이 우리한테 주고 가시오.

하더란다. 이에 두려움이 가득 밀려와 까무러칠 것 같았지만 담양댁은 잠시 머뭇거리며 심호흡을 한 뒤, 순간 거부하면 아이를 빼앗아 갈 것 같아

 “알았소, 하지만 마지막으로 애한테 젖이나 먹인 뒤 드리겠소.

하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들도 ‘그것쯤이냐 못 들어주겠냐?’고 생각한 듯

 “그럼 저기 앉아서 젖을 먹이시오.

하고 말하더란다. 담양댁은 아이를 등에서 내려 보듬은 뒤, 가슴이 떨렸지만, 마음을 추스르며 아이에게 젖을 물렸다.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배가 고팠던지 젖을 그리도 잘 먹더란다. 이렇게 한동안 젖을 먹이고 있는데 한 사내가

 “인제 그만 먹이고, 우리에게 아이를 넘기시오.

하며 재촉을 하더란다. 이에 담양댁은 어머니로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심정으로

 “이제 이 아이와 마지막인데, 젖이나 양껏 먹인 뒤에 보낼 테니 조금만 더 기다리시오.

라고 사정을 했단다. 이렇게 해서 아이가 배가 부를 만큼 양껏 젖을 먹이고 있는데, 마침 저만치에서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건장한 남자가 그녀가 있는 곳으로 올라오고 있더란다. 담양 댁은 이때다 싶어 아이를 보듬고 일어나며

  “아이고 오라버니! 왜 이제 오세요. 여태까지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네요.

라고 반가이 웃으며 말하자, 그 남자도 분위기를 알아채고서

 “오다가 친구를 만나 이야기 좀 하느라고 늦었다. 어서 가자.

라고 대꾸를 했다. 그러자 두 나환자는 슬슬 그 자리를 피해 재 아래로 내려가더란다. 그제야 담양댁은 ‘이제는 살았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고 한다.

 

 나는 지금까지 나환자가 사람을 해친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실제로 그런 경우를 보지는 못했다. 그런데 아직도 이런 이야기가 남아있는 것은 옛날 이야기 때문이다. 그런 이야기 중에는 실제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 부풀려져 된 경우도 많을 것이다. 과거에 있었던 이야기로 인해 많은 고통 속에 사는 나환자들에게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래서 나도 이 글을 혹 나환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많은 고민을 하며 썼다.

 하지만 운도 따랐지만, 지혜롭게 행동한 담양댁에 관해 이야기하려다 보니 이런 글을 쓰게 되었다. 담양댁의 지혜로운 행동은 어머니에게서 들은 지 수십 년이 지났어도 잊히지 않는다.

                                                         (2019.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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