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만남은

2019.05.08 14:46

송병운 조회 수:2

우리 만남은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송 병 운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

 가수 노사연의 ‘만남’이 조용하게 울려 퍼졌다. 고인이 되신 신부님이 당신의 장례미사 때 이 노래를 불러달라고 하여 마침성가로 부른 것이다. 성당에 모인 사람들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성당을 나서는 신부 · 수녀님들이나 신자들의 모습이 숙연했다.

 

 ‘지정환 신부님’.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던 분이다. 벨기에의 귀족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세속적인 부귀영화를 버리고 사제의 길을 택한 분이다. 신부생활 61년 중에 한국에서 60년을 보냈으니 완전한 한국인 신부가 아닐 수 없다. 6·25 동란의 참혹한 모습을 뉴스로 보고 한국으로 가야겠다고 결심했단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1년 동안 런던대학에서 한국어 공부를 하고 왔으니, 한국의 삶을 위해 철저하게 준비했던 분이다. ‘만남’ 노래 가사처럼 우연이 아니라 그 분의 바람이었을까, 아니면 운명이었을까? 신부님은 ‘모든 삶이 우연이 아니라 하느님의 섭리요, 당신은 하느님의 계획을 추진했던 도구에 불과하다.’고 말씀하셨단다.

 

 내가 신부님을 처음 뵌 것은 S여고에 근무할 때였다. 학생들에게 특강을 하기 위해 오셨는데 커다란 몸집에 덥수룩한 수염, 그리고 불편한 다리를 지탱하기 위해 지팡이를 짚고 오셨었다. 학생들은 서양 신부의 출현에 호기심과 놀라움으로 바라보았다. 더구나 통역을 통해서 말씀을 하시려나 하고 수근거렸다. 그러나 유창한 한국말로 말씀을 하시는데 외모만 외국인이지 한국인이었다. 더구나 우리보다 더 유창하게 전라도 사투리를 섞어가며 학생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어려운 사람들, 특히 장애인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호소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신부님은 강자에게 굴복하지 않는 성격으로,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1970년대, 박정희의 유신헌법 체제에 반대하는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는데 경찰에 체포되어 고초를 겪기도 하셨다. 특히 국외추방을 하기로 했지만 치즈산업을 성공시킨 신부라 하여 박정희도 차마 추방을 못했다고 한다. 1980년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을 때는 우유트럭을 몰고 광주를 찾아가 시민군에게 우유를 제공했으며, 당시의 참혹한 상황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가슴 아파하셨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해 몸소 앞장섰던 것이다.

 

 그러나 약자에게는 한없이 자비로운 모습으로 다가갔던 분이다. 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고민하셨다. 추상적으로 사랑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랑 실천에 몸소 앞장섰다. 1961년 부안성당의 주임신부로 발령을 받았을 때였다. 농민들의 가난한 삶을 보시고 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간척사업을 시작하셨다. 힘든 노력 끝에 30만 평의 농토를 만들었고, 그것을 100명의 가난한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농민들이 가난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절실한 바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농토를 받은 농민들이 그 땅들을 유지하지 못하고 돈 있는 사람이나 도시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보고 무척 마음아파 하셨다고 한다.

 

  1964년 임실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했는데, 역시 농민들의 어려운 삶을 목격하셨다. 곳에서도 농민들의 가난을 벗어나게 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산양 2마리로 치즈제조를 시작하셨다. 벨기에의 부모로부터 받은 2,000 달러로 허름하지만 치즈 공장도 설립했다. 그러나 기술이 부족하여 실패를 거듭하자 직접 벨기에와 이탈리아, 프랑스에 가서 치즈기술을 배우고 돌아왔다. 오랜 고생 끝에 치즈제조에 성공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치즈산업의 시작이다. 다행히 고급호텔 등 전국적인 유통망도 갖게 되면서 임실농민들에게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이제는 치즈하면 임실이요, 임실하면 치즈라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되었다. 그는 신부라고 하여 천주교 신자들만 돌본 것이 아니었다. ‘교회밖의 사람들도 모두 하느님의 자녀’라고 하면서 신앙과 상관없이 모두를 감싸는 삶이었다.

 

 신부님은 장애인들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갖고 계셨다. 그래서 중증장애인들을 보살피는 ‘무지개 가족’이라는 시설을 설립하여 운영하셨다. 전주시 인후동에서 시작했으나 지금은 완주군 소양면에 위치해 있다. 누군가가 휠체어로 움직여주지 않으면 어느 곳에도 가지 못하거나, 밥을 떠서 입에 넣어주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중증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이다. 간혹 학생들을 데리고 봉사를 갈 때마다 송구한 마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한국인 장애인은 한국 정부와 한국인이 책임져야 하는데 왜 외국인이 책임을 지고 있나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참으로 부끄러웠었다.

 

  2002, 신부님은 치즈사업과 장애인 돌봄의 공로로 ‘호암상’을 수상하면서 상금 1억 원을 받았다. 그 돈을 기반으로 ‘무지개 장학재단’을 설립하여 오늘날까지 장애인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임종 전에 전주교구 김선태 주교님이 찾아뵈었더니, 당신의 장례미사 때 신자들에게 전해달라는 몇 가지 말씀을 하시더란다. 그 중 첫 번째가 어려운 사람들이나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이 지속되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마지막 가시는 순간까지도 오로지 어려운 사람들을 걱정하신 것이다.

 

  201941388세로 선종하셨고, 416일 전주 중앙성당에서 장례미사가 있었다. 전주교구의 모든 신부 · 수녀님들과 많은 신자들이 참여했다. 벨기에의 가족들도 오셨는데 조카 되는 분이 유족대표로 인사를 했다. 신부님을 한국인으로 인정해주시고 많은 분들이 기도를 해주시어 감사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신부님은 대단히 쾌활하신 성품이었다며 학창시절의 일화도 한 가지 소개했다. 신부님은 학교 다닐 때 공부를 별로 못했다고 했다. 부모님이 많이 걱정하셨는데, 자기는 낙제하지 않고 학년 승급만 되면 행복하지만 1등을 해야만 행복한 친구들이 있다며, 자기는 그 친구들의 행복을 위해서 공부를 잘하면 안 된다고 하셨단다. 유머스러한 일화일 수도 있지만 신부님의 타인에 대한 배려정신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다.

 

  2016년 대한민국 정부가 어려운 봉사의 삶에 감사하는 뜻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하였고, 직계후손은 없지만 정부로부터 창성창본을 허락받아 임실 지()씨 시조가 되었다. 대통령 표창과 국민훈장 모란장도 받았다. 마음만 한국인이 아니라 행정적으로도 온전히 한국인이 된 것이다. 돌아가셔서도 고국 벨기에로 가시지 않고 전주 치명자산 성직자 묘지에 묻히셨다.

 

 ‘만남’ 노래 가사 중에 ‘… 돌아보지 마라, 후회하지 마라, 아 바보 같은 눈물 보이지 마라…’ 라는 구절이 있다. 어쩌면 신부님은 당신의 삶에 대해 아무런 후회 없이 떠나고 싶었고, 우리에게도 슬퍼하지 말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삶을 살아가라고 이 노래를 불러 달라고 했나 보다. 모든 삶을 한국인을 위해 바치고 몸과 영혼까지 한국에 남으신 지정환 신부님, 부디 하느님 나라에서 편안하게 지내시기를 빈다.

 

                                                    (2019.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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