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2019.05.09 00:22

김창임 조회 수:4

누나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김창임

 

 

 

 

 

  목소리가 성우처럼 매력적인 남자가 일어나자마자,

  "오늘은 ‘복을 많이 받은 장인 장모님’ 이란 글을 쓰겠습니다. 창임 누나한테 잘 보이려면 그 글을 꼭 써야합니다.”

 나는 진즉부터 누나라고 불러달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이는 너무 어처구니없는 말이라면서 말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런 남편이 결국 오늘 2019571135분쯤 ‘누나’라고 불렀다. 역사적인 순간이다. 녹음해 놓아야 하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라 준비를 하지 못해 어쩔 수 없었다. 생물학적 나이는 분명 그이가 나보다 272일 먼저 태어났다. 그러나 그이는 너무 철이 늦게 들어서 아예 동생 취급을 해버리면 마음이 편하다.

  어느 날 붕어 손질 좀 해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 일은 못 한다고 잡아뗐다. 할 수 없이 내가 손질을 했었다. 어린 시절 붕어 손질은 그 시절에도 우리 아버지가 했었는데….  

 어느 날은 장롱 서랍을 열면서 조금 뻑뻑하여 열기가 힘들어 화를 내더니 이사할 적에 그 비싼 장롱을 북면에 사는 사람에게 주어버렸다. 잘 안 열리면 초를 발라서 쓰면 되는데 기가 막혔다.

 “여보, 그까짓 일에 그렇게 화를 낼라치면 앞으로 닥치는 여러 가지 고통과 환난을 어떻게 이겨내렵니까?

 그렇게 말해도 소용이 없다. 그리고 그 장롱은 내가 결혼할 때 사 온 것이기 때문에 아내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성격은 물건을 사면 조금 좋은 것을 사서 오래도록 쓰는 편이다. 새로운 장롱을 사려고 하니 200만 원이 순식간에 낭비가 되어버렸다. 그 돈을 벌려고 갓난이를 떼어놓고 출근하는 심정, 그리고 아들이 몸이 아플 때는 집에 가보기가 쉽지 않아서 마음이 무척 불안했고, 밤늦게야 아기를 엎고 광주까지 가서 백일해를 약 한 달간 치료를 해야 했고, 아침밥은 시간이 없어서 먹는 둥 마는 둥 먹으면서 출근해야 했었다.  

  어느 날은 목욕을 하러 가는 날인데 자기 혼자 살짝 가서 하니 사내아이 셋을 데리고 내가 여탕에서 다른 여자들 눈치를 보면서 하려니, 그 날은 내가 지쳐서 내 몸은 대충 씻었다.

  어느 날은 제사상을 차려놓고 막 음식을 먹으려는 순간 자기가 좋아하는 김치찌개가 없다며 그걸 기어이 해달라고 했다.

 “소고기 뭇국을 그냥 먹고 낮에 해 놓을 테니 그렇게 생각하세요.

해도 몸에 배인 조동버릇이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다. 옆에 계시는 시어머니는 당신이 나에게 미안하다며 안절부절 못하신다. 그래서 가족 모두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을 앞에다 놔두고 먹지 못하고 있는데 김치찌개를 대충 끓여서 주니 그걸 먹는다. 나는 지금까지 제사상에 김치찌개를 놓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제삿날이나 명절날은 바빠서 정신이 없는 날인데 동서는 이미 세상을 등져버렸고, 시누이는 온다고 해야 애완견을 손질하며 놀고 있다. 남편은 남의 어르신들이 시내버스 정류소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면, 그 분들을 이평면, 북면, 소성면까지 태워다 드리는 일을 하고 있지 집안에서 병든 시어머님과 개구쟁이 아들들 셋이 있을 뿐,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 그렇게 철이 안 들어서야 내가 어떻게 편하게 살 수 있을까? 그러던 남편이 조금 씩 조금씩 철이 들어가더니 지금은 180도로 바뀌어 버렸다.

  인생은 강물처럼 흐르고 꽃처럼 봄날을 장식한다. 난 그런 인생을 아끼기 위해 침묵의 소리를 엿듣는다. 그러니 나를 '누나'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2019.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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