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창포 가는 길

2019.05.10 14:04

오창록 조회 수:1

무창포 가는 길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오창록

 

 

 

 

 

 북쪽으로 서해안고속도로를 한 시간쯤 달리다가 왼쪽으로 지방도로를 따라서 조금 내려가면 벚꽃이 하늘을 가리고 있는 터널을 만난다. 자동차가 꽃터널을 지나면 꽃잎이 휘날리면서 내려와 우리를 환영하는 듯 반긴다. 전주는 며칠 전에 벚꽃이 지고 그 자리에는 새싹이 움트기 시작하고 있다. 위도가 북쪽이어선가, 찬 바닷바람을 맞고 자라서인지, 무창포 가는 길에는 이제야 벚꽃이 활짝 피어있다.

 

 얼마 전에 평소 존경하는 형님과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다음 모임은 밖으로 나가서 바람이나 쏘이자는 의견을 모아 무창포여행을 하기로 결정했다. 서해안고속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무창포가 퍽 생소한 이름이었다. 충청도 해안에는 대천해수욕장이 알려져 있을 뿐 다른 곳은 교통편이 여의치 않아서 찾아갈 꿈도 꾸지 못할 때였다.  

 

 무창포는 신비의 바닷길과 주꾸미 도다리축제로 알려져 있고, 또한 보령의 석공예와 함께 유명한 곳이다. 그 가운데 보령 남포(藍浦)벼루는 조선시대부터 명품으로 중국까지 알려져진 곳이었다. 서예를 할 때 탐을 내던 벼루였다. 어느 날 사사(師事)를 받고 있던 산민(山民 李鏞) 선생께서 크고 좋은 벼루를 새로 장만하시면서 평소에 쓰시던 남포벼루를 물려주신 일이 엊그제 일처럼 스쳐지나간다.

 

 지금부터 10여 년 전 종중 일을 돌보던 동생이 선조의 비석을 세워야 될 일이 있어서 무창포에 같이 갔었다. 비석의 규모와 완성되는 날을 정한다음에도 글씨의 원고교정을 보기위해서 몇 차례 더 석공예원을 찾았다. 방문할 때마다 젊은 사장이 멀리 오느라고 수고했다면서 점심을 무창포 해수욕장 바닷가에 위치한 음식점으로 안내했다. 푸른 파도가 손을 뻗으면 닿을 듯 눈앞에까지 다가오는 오래된 건물이었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여늬 집과는 달리 이 식당은 이곳에 오래 살던 주민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관광객들이 찾기 쉬운 번듯한 건물보다는 구석진 곳에 위치한 이곳 토박이들이 많이 찾아오는 음식점이었다.

 

  주인은 배를 운영하는 선주 겸 어부였다. 안주인은 계절에 맞게 나오는 제철 생선을 맛깔스럽게 요리하는 분이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같이 시내를 벗어나서 바깥바람을 쏘이고 싶을 때 가끔 다니는 식당이다. 지금은 주꾸미가 가장 입맛을 돋우고 있을 때다. 살아서 꿈틀거리는 주꾸미로 샤브를 시켜놓고 야들야들한 그 맛에 소주 한 잔을 하고 고개를 들어보니 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가 바로 눈앞이 아닌가? 도심 속에서 겨울을 지내고 밖에는 처음으로 나온 나들이여서인지 모두 즐거워했다. 술잔을 비우고는 매콤한 주꾸미 볶음을 시켜서 식사를 하니 이렇게 좋은 별미를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주꾸미를 생각하니 아버지와의 추억이 서려있는 6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평소에 약주를 좋아하시던 아버지는 매년 이맘때 쪽파가 한 뼘쯤 올라올 때면 30리 길이 넘는 전주중앙시장으로 나를 보내 주꾸미를 사오라고 하셨다. 주꾸미를 20마리씩 철사 줄에 꿰어서 팔았다. 포장지도 여의치 못한 때여서 푸대 종이로 둘둘 말아서 건네주면 자전거 뒤 안장에 묶어서 자갈길 신작로를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지난 가을 텃밭에 심었던 쪽파가 겨울을 지내고 잎이 한 뼘쯤 올라왔을 때 주꾸미가 가장 맛이 좋을 때라는 것을 아버지에게서 배워 알고 있다. 쪽파를 물에 데친 다음, 아래 하얀 부분에 잎을 돌돌 말아서 접시에 주꾸미와 나란히 놓고 술 한 잔을 마신 뒤 초고추장을 찍어 먹으면 그 맛을 어디에 비하랴. 지금도 봄이 오고 쪽파가 한 뼘쯤 자라면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지와 주꾸미 생각이 떠오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창 밖으로 야트막한 야산에 농가 지붕들이 다정하게 옹기종기 모여 있다. 충청도 사람들의 평소 온순하고 평화로운 마음은 이렇게 좋은 자연환경에서 살기 때문인 듯하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음이 울적할 때는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무창포 가는 길을 여행해보는 것이 좋다. 제철 음식에 입이 즐거워지고, 그러면 사랑과 희망이 넘치는 행복한 여행이 될 것이다.

                                                                (2019.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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