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송시 '동방의 등물'

2019.05.10 16:06

곽창선 조회 수:5

나의 애송시 '동방의 등불'

  신아문예대학 수필 창작 수요반  곽 창 선

 

 

 

 

 

 지난 4월 중순, 전남 신안 천사교를 다녀왔다. 몇 해 전 임자도에 다녀 올 때의 모습은 간데 없고 주위가 몰라보게 변했다. 천사다리는 천혜의 고도 압해도와 암태도를 연결하여 주민들의 오랜 숙원을 해결해 주었고, 빼어난 주위 경관과 멋지게 어울려 향후 관광지로 손색이 없으니 일석이조를 이룬 복된 다리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모습을 보며 다음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주위를 연신 돌아보며 신기해하는 K에게 죽지 말고 오래 오래 살면서 즐기라고 했더니 싫지 않은 눈치다. 나 또한 그 욕심을 버리고 싶지 않으니 자연의 순리를 모르는 욕심인가 싶기도 하다.

 

 여행을 하다 보면 친교와 지루함을 달래기 위한 방법으로 레크리에이션만한 것도 없다. 유머러스한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노래나 장기로 분위기 전환을 꾀하며, 여행의 피로를 푸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한껏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사람들을 볼 때면절로 부럽다. 그러나 내 차례가 오면 부담감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시간을 끌다가 어물쩍 위기를 면하기 십상이니, 어딘가 모르게 허전한 기분이 들 때가 많았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흥얼거려 봐도 음치라서 노래보다는 종종 암송하던 시낭송을 택하게 된다. 여러 좋은 작품과 씨름하며 지내다가 우연한 기회에 세미나에서 타고르의 '동방의 등불'을 유창하게 낭송하는 강사에게 매료되었다. 그 뒤 원문과 번역문을 번갈아 읽고 또 읽어가며 익혔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분위기를 타지 못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친숙해졌다.

 

 '동방의 등불'은 아시아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인도의 라빈드라나트 타고르(Rabin dranath Tagore) 작품이다. 우리에게 전해지기 까지는 여러 설이 존재하고 있으나 내가 기억하고 있는 내용을 주관적으로 쓰고 있으니 약간의 상이한 부문이 있을 수 있어 조심스럽다.    

 

 이 시가 빛을 보기까지는 동아일보 주간이던 주요한 선생의 내밀한 일화가 숨어 있다. 1929년 초 동경에서 개최되는 세계 문인의 날 행사에 주빈으로 참석한 타고르 시인에게 일본 감시의 눈을 피해 은밀하게 조선 방문을 요청했으나, 타고르의 복잡한 사정으로 방문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시에 담아 선생께 전해 주었다고 한다.

 

 당시 인도와 조선은 영국과 일본의 식민지로 압박과 설움을 견디며 살고 있었다. 타고르는 비슷한 처지에 놓인 조선인들에게, 희망을 버리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기를 염원하는 뜻을 '동방의 등불'에 담았다고 한다. 주요한 선생께서 그해 42일자 동아일보에 게재하면서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주옥같은 깊은 뜻은 우리 민족의 암담한 현실에 큰 위안과 격려를 주었던 예언의 송시訟詩였.

 

 시의 서장은  “일찍이 아시아 그 등불 다시 켜지는 날, 동방에 밝은 빛이 되리라” 시의 최초 전문은 간략했으나, 1975년 동아일보에 지금의 형태로 재조명되어 전해지고 있다. 시 내용 중 내가 제일 의미 깊게 생각하고 감명을 받은 'Where wards come out from the depth of truth“과 마지막 ’My farther let my country awake'의 부문이다.

 

 '진리의 깊음 속에 말씀 솟아오르고' '아버지여, 내 마음에 조국 코리아를 깨워달라'는 간절히 소원한 부문이다. 시의 마지막 부문에 타고르의 진심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에 발표될 당시 상황은 일제의 침략이 조선을 넘어 아시아 전 지역으로 뻗치던 전성기에 조선이 독립하여 세계에 밝은 빛으로 밝혀지리라는 것을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불과 16년이 지난 1945년 광복을 맞이했고, 6.25 동족상잔의 쓰라린 파고를 넘어서 끈질긴 노력으로 만천하에 한국의 위용을 떨치는 쾌거가 이루어 졌으니, 타고르는 족집게 점쟁이보다 더 정확하게 조선의 미래를 예언했다. 얼마나 무서운 혜안인가?

 보라! 우리의 말과 글, 상품, 새마을운동, 스포츠, 연예계의 열풍이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동남아를 넘어 전 세계를 열광시키며, 국민 모두의 가슴에 자부심과 긍지를 심어 주는 저 모습을. 그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던 일인가?

 

 그러나 작금의 우리 정세는 19세기 후반 20세기 초와 별반 다르지 않게 돌아가고 있으니, 모두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불과 1세기도 지나지 않은 식민시대를, 다시 맞이하려는 우를 범하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 후대에 큰 재앙災殃을 남기는 죄악이기 때문이다.

 

 나는 종종 UPF라는 단체에서 주관하는 해외여행을 벗들과 다녀왔다. 일본과 미국 LA에서 한국인 초상화를 앞에 두고 두 손 모아 기도문을 한국어로 낭송하는 것을 보았다. 우리 곁에서 사교로 천대 받는 종교가 우리를 깔보는 일본과 미국의 수백만의 추종자들이 매일 이러한 집회를 개최한다니 눈과 귀를 의심할 일이었다.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세계 190여 개 국가에서 매일 천만이 넘는 신도들이 이처럼 예배를 드린다니 허언처럼 들렸다. 매년 십여만 명이 한국을 방문하여 그들의 성지를 순례하고 있단다. 특정 종교를 왜곡 선전하거나 폄해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타고르의 '진리의 깊음 속에 말씀이 솟아난다.(Where the Words come out from the depth of truth)'는 예언적인 구절의 의미에 놀랄 뿐이다.

 

 목포를 지나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경음악이 흐르더니 어김없이 사교社交시간이 되었다. 2시간 이상을 달려야 하니 어찌 보면 당연한 순서 같기도 하다. 그러나 18번을 연마하고 있으니 전처럼 긴장이 되거나 부담감은 적었다. 내 순번이 되자 지인들 앞에서 조심스럽게 인도와 조선의 식민역사를 되돌아보며, 광복 70년이 넘은 현재까지 국토가 양분되어 총부리를 맞대고 있는 현실을 설파說破하고, 말미에 시를 암송하니 약 10여분이 지났다. 사회자가 계속 마이크를 잡으라는 놀림을 뒤로하며 돌아서는 마음은 전처럼 무겁지 않았다.

 

 '동방의 등불' 배경에 대한 시시콜콜한 뒷얘기를 세세하게 분석하고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지만, 나에게는 깊은 감명을 주어 기쁘게 암송하고 있다. '나의 조국 코리아여, 깨여나소서' 90년 전 타고르가 간절히 염원한 것처럼 나도 조국의 미래가 기리 번영하기를 이 시를 낭송할 때마다 소원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 타고르의 최초 원문

The Lamp of the Eastby Tagore

 

"in the golden ago of Asia

Korea was one of its lamp-bearers

and that lamp is waiting to be Lighted once again

for the illumination in the E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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