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고 싶다

2019.05.16 06:40

한일신 조회 수:21

그곳에 가고 싶다

안골은빛수필문학회 한일신

 

 

 

 

 

 싱그러운 5월의 아침, 전화벨이 울렸다. 어머니와 함께 점심을 하자는 동생의 전화였다. 그러잖아도 내일쯤 가려고 했는데 오늘이 마침 어버이날이라 하던 일을 멈추고 부랴부랴 집을 나섰다.

 11시 20분쯤이나 되었을까? 어머니가 서신동 전북노인복지관으로 먼저 가자고 하여 그쪽으로 갔다. 복지관에 들어서자 최상기 관장님을 비롯하여 직원들이 반갑게 인사를 하며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주었다. 꽃처럼 환한 미소가 금세 얼굴에 번졌다. 식당 앞에는 점심을 드시러 온 어르신들이 두 줄로 길게 늘어서 있었지만, 식당문은 닫혀있었다.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거였다.

 한쪽에서는 기다리는 분들이 행여 시장할까 봐 ‘인산봉사단 회원들'이 자비로 마련한 따끈따끈한 국화빵 1개씩을 종이컵에 담아주었다. 빵을 받아들고 돌아오자 사람들은 어머니 나이를 묻더니 앞자리를 내주었다. 잠시 후 식당 문이 열리자 어머니를 먼저 들어가시라고 했다. 그 틈을 타 나도 얼른 따라붙었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꽃밭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어르신들 가슴마다 붉은 카네이션이 활짝 피어있었기 때문이다. 봉사원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직원들이 나와 있었는데 어쩌다 한 번씩 가는데도 이렇게 만나는 걸 보면 봉사원들이 이곳에 자주 오는 것 같았다. 오래전 어머니가 자주 이곳을 이용하실 때였다. 늘 받기만 하니까 뭔가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싶어 한 달을 작정하고 물리치료실에서 봉사활동을 한 일이 있었다. 지금은 당시 직원들이 안 보이지만 그때는 하루하루가 어찌나 더디게 가던지…. 봉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전주시 인구는 653,694명인데 65세 이상은 89.918명으로 노인 인구가 13.7%다. 이중 서신동 인구는 전주시인구의 7%쯤 된다. (2019.4월말. 행안부 주민등록인구통계) 평상시는 서신동에 있는 노인복지관 식당 이용자가 하루평균 200명 정도인데 오늘은 무려 400명 가까이 왔다니 다른 동에서도 오신 걸까? 아무리 무료로 음식을 제공한다 해도 정말 많이 오신 것 같다. 그들의 노고가 느껴진다. 나는 그동안 여러 군데 복지관을 다녀봤지만, 이곳이 여느 복지관보다 프로그램도 다양하고 직원들도 하나같이 친절한 것 같다. 더욱이 식당 음식도 입에 맞아서 가끔 어머니를 모시고 오는데 올 때마다 흡족해하신다. 오늘 점심 메뉴는 전복죽인데 치아가 없으신 어머니한테는 아주 딱 안성맞춤이었다. 내가 오늘 어머니를 모시고 이곳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고맙다’는 말을 수없이 되뇌며 밖으로 나왔다. 밖엔 여전히 차례를 기다리는 어르신들로 붐볐다.

 나는 지금 전주시 완산구 중노송동에 있는 아파트에서 어머니와 같이 지낸다. 내 나름대로 한다고 하지만 어머니는 항상 서신동 아들 집에서 복지관에 다니는 꿈을 꾸고 계시는 것 같다. 가만히 보니 이곳 복지관이야말로 실제로 노인을 공경하고 존중해주는 미덕을 실천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점심때도 우리 어머니 같은 상노인은 먼저 챙겨서 식당에 들어가게 할 뿐 아니라 봉사자들이 식판을 갖다주고 내가기까지 한다. 그런 사랑 때문에 한때는 복지관 주변에서 어머니가 계실 원룸을 알아보기도 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그만두었지만 말이다.

 어머니가 그리도 가고 싶어 하시는 서신동 둘째아들 집은 원래 부모님과 우리가 살던 집이다. 그 집에서 아버지 임종을 지켜봤고, 형제들이 결혼해서 각자 가정을 갖게 되었다. 어머니는 그곳에 사시면서 버려진 박스나 빈 병을 모아 돈으로 바꾸기도 하고, 동네 빈터를 일구어 상추, 깻잎, 고추 등 푸성귀를 가꾸어 자식들은 물론 이웃과 나누어 먹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그러다가 삶이 지치고 고단하면 복지관에 나가 낯익은 얼굴들과 어울려 이야기하며 피로를 풀고 맛있는 점심도 드셨으니 어찌 삶이 즐겁지 않았겠는가?

 그러던 어느 날, 예기치 못한 사고가 났다. 길을 가다가 넘어져서 꼼짝을 못해 병원 응급실로 갔더니 척추 압박골절이라고 했다. 그곳에 입원하여 2주간 치료를 받고 다행히 상태가 호전되자 딸인 내가 아파트로 모셔왔다. 갈수록 어머니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도 향수병처럼 옛날로 돌아가고 싶어 하시니 지난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는 아들 집은 언제나 어머니 집이고 영원한 마음의 안식처인 모양이다.

 오늘도 목욕을 시키고 옷을 갈아입히려는데 요실금 팬티가 안 보였다. 찾아보았더니 어머니 가방에 몇 가지 속옷과 함께 들어있는 게 아닌가? 어머니는 벌써 몇 년째 딸의 도움을 받으며 지내면서도 마음은 서신동 아들 집에 꽁꽁 묶어놓고 오셨나 보다. 그러기에 항상 옷가지를 따로 챙겨놓고 지난 추억과 그리움이 깃든 그곳에 가고 싶어 하시나 보다.

                                                             (2019.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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