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2019.05.17 09:15

박용덕 조회 수:3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박용덕

 

 

 

                                               

 

  내 말을 듣고 거의 다 거짓말 같다고 한다. 사실이라고 몇 번이나 되풀이 설명을 해도 그럴 수 있을까, 의문을 품은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똑같은 말은 “우리 부부는 1973년 결혼 후 오늘까지 한 번도 부부싸움을 해본 적이 없다.”이다. 그건 정말이다.

 

 나는 19735월 처갓집이 있는 목포에서 결혼을 했다. 큰형님이 목포에 직장이 있어 집안 사정을 다소 알기에 반 중매쟁이가 되어 197210월에 맞선을 보았다. 그 뒤 두세 번 데이트를 하는데, 등떠밀려 나온 듯하고 악수마저도 거절하는 등 극히 사무적일 뿐더러 아무런 의사 표시가 없었다. 그래서 알아보았더니 시집간 두 언니도 아버지의 승낙이 있어야 결혼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그날 밤 처녀 집으로 들어가 그 의 아버지와 솔직하고 진실한 대화로 승낙을 받아내 결혼을 한 것이다.

 

  그날 아버지께 말씀드리기를 “호강은 못 시키더라도 고생시키지는 않겠으며, 눈물 나게 하는 일은 없게 하고, 후회하지 않도록 잘 보살피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었다. 그 뒤 결혼하여 가정의 화목에 도움이 되는 것을 곰곰이 생각해 실행한 것이 결혼식 날, 아내 생일, 첫눈 오는 날을 부부 기념일로 정하여 실행에 옮겼다. 이날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데이트를 하고, 간단한 선물과 함께 내 마음을 담은 글을 써서 건네주었다. 기념일 3개 정도 지킨다고 가정의 화평을 보장받는 것은 아니지만 그 정성이 평소에도 접목이 되어 가정의 화목에 기여하는 바 컸다. 퇴직 시 발간한 <마냥 즐거워> 란 책과 칠순 때 발간한 <나는 행운아> 란 책도 거의 그동안 주고받은 글을 모아 책으로 엮은 것이다.

 

 나는 살아오면서 언행일치를 철칙으로 삼아왔다. 더구나 그토록 예뻐하시던 딸을 두고 아버지께 약속한 말을 이행하기 위해서라도 더 노력해야 했다. 그러나 부부관계는 상대가 있기에 혼자서는 어떤 일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아내 성품이 양보하는 미덕이 있어 다소 트러블이 있을 때는 한 발 물러서는 것으로 그냥 시들해져 버렸다. 그리고 싸울 수 없는 요인이 또 있다. 장모님의 사위 사랑이 내가 느끼기에는 낳은 자식 사랑보다 더 한 것 같아 딸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은 바로 불효하는 것 같은 생각을 가졌었다.

 

  결혼 2년쯤 되었을 때 장모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울보가 울음을 멈추게 한 비결이 무엇인가?” 내가 대답하기를 “울고 또 울다 보니 눈물이 메말라서 흐를 눈물이 없나 봐요.”라고 했더니 한바탕 웃은 적이 있었다.

 웃기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안다. 오늘까지 나와 함께 살아오면서 속으로 흐느끼는 눈물은 헤아릴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을. 자존심 강한 사람으로, 양보하고 인내할 때마다 속이 터질 것 같았겠지만 그동안 잘 참고 견디어 온 아내에게 지금까지의 모든 공을 돌린다.

 

  이 글을 쓰는 오늘은, 싫다 좋다 하면서 미운 정 고운 정이 들고, 밉다 곱다 하면서 고마움을 쌓아온 46번째의 결혼기념일이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길이라도 사랑하는 아내와 동행하는 동안은 서로 감싸주고 토닥여주며 지금까지처럼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다. 이미 돌아가셨지만 결혼을 승낙해 주신 장인 어르신과 나를 끔찍이 사랑해 주신 장모님께 약속 이행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아내에게는 초심을 잃지 않고 변함없이 사랑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2019. 5. (결혼 46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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