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수를 품는 밤꽃

2019.05.19 06:14

홍성조 조회 수:12

암수를 품는 밤꽃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반 홍성조

 

 

 

 

   꽃은 여성을 상징한다. 그러나 유일하게 남성을 뜻하는 꽃이 있어 눈여겨 보았다. 서울서 내려오는 도중, 천안 논산 간 28번국도인 정안면 일대를 보면 천지를 황홀하게 하는 형상이 내 눈을 즐겁게 한다. 마치 어젯밤에 새하얗게 눈이 내린 듯 도로가에 꽃들이 흰색으로 장관을 이루었다. 5월 달인데도 한겨울로 착각을 하기도 한다.

 

   이 꽃들은 한 그루에 암꽃과 수꽃을 동시에 품고 있다. 다정한 한 쌍의 부부를 상징한다. 나무 한 그루에서 수꽃과 암꽃이 존재하지만 수꽃의 꽃가루를 암꽃에 묻혀 주어야만 열매를 맺는다. 수꽃만 피는 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 한다. 수꽃은 벌에게 이상야릇한 짙은 냄새를 풍겨 암꽃을 상대로 구애작전을 편다. 이 향기가 남성을 상징함으로 비구니 사찰에는 이 나무를 심지 않는다고 한다. 이 꽃이  한창 필 때는 부녀자들조차 외출을 삼간다. 이 꽃향기에 취하여 처녀들이 얼굴을 붉히기도 한다, 사랑이 식은 부부도 이 꽃이 한창 필 때 그 밑을 산책하면 사랑이 돌아온다는 속설도 전해진다. 사람들은 이 꽃를 '밤꽃'이라 부른다.

 

   밤나무 수꽃은 꼬리모양의 긴 꽃 이삭에 매달리고, 암꽃은 수줍은 처녀마냥 수꽃사이에 살포시 숨어 있다. 한 지붕 두 가족이 거처하는 셈이다. 수꽃 꽃가루를 암꽃에 묻혀야 만 열매를 맺는다. 수꽃에서 암꽃으로 꽃가루를 이동하는 매개체역할은 벌떼들이 담당한다. 벌들은 온몸을 뒤덮은 털로 꽃가루를 묻혀서 옮긴다.  사람이 꽃가루를 붓으로 일일이 찍어 묻혀주는 수고를 덜어주기도 한다. 이것을 보면 벌들은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일등 공로자임에 틀림없다.

 

   조선시대 유학자 서거정이 1481년에 펴낸 “동국여지승람”에서 산야를 하얗게 뒤덮은 밤꽃 눈송이들을 보고 “눈송이 같은 밤꽃 향기 물씬 풍기니, 주렁주렁 달린 밤송이가 수많은 별과 같아라.”라고 노래했다고 한다.

 

   충남 공주시 정안면 일대는 밤나무 생육에 적합한 기후와 토양이 형성된 지역으로 밤나무를 키우는데 안성맞춤이라고 한다. 이곳은 전업  양봉가들이 꽃따라 이동하여 꿀을 채취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양봉업자들은 이곳저곳으로 꽃을 찾아 정처 없이 무거운 꿀통을 짊어지고 옮겨 다닌다. 양봉업자들은 밤꽃이 천지를 뒤덮으면 눈은 즐겁지만, 코는 괴롭다고 한다. 꽃에서 따낸 꿀은 향이 비릿하고 맛이 씁쓸해서 벌도 꺼려 주변에 먹을 수 있는 꿀들이 없을 때 찾는다고 한다. 그러나 “몸에 좋은 약이 쓰다.”는 말처럼 쓴 맛을 내는 밤꿀은 한방에서도 항산화 효과가 높다고 한다.

 

   서울에서 내려오는 고속버스 창가에 기대여 눈송이 같은 밤꽃 내음새를 흠뻑 맡고 싶은데, 왜 이리 고속버스 창문은 열리지 않는가?

                                                  (2019.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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