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운전자

2019.05.19 07:01

정남숙 조회 수:6

고령운전자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정남숙

 

 

 

 

  밤새껏 고민을 했다.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 일어나보니 아직도 새벽이다. 오전 9시가 되려면 한 잠을 더 자도 남을 것 같다. 그렇다고 다시 잠을 청할 수는 없었다. 응급환자가 몹시 아파 병원을 찾아가서 의사의 검진을 기다리고 있는 초조함이 이런 것일까? 어제 저녁 늦게 직원들이 다 퇴근하고 아무도 없는 정비공장에 내 차를 입고시키고 돌아왔다. 요즘 ‘고령운전자’에 대한 제한 요구가 많아 운전하고 다니며 불편한 시선을 느끼고 있는데, 고장이 크고 비용이 많이 들면 이번 기회에 나도 한 번 운전면허 반납을 잠시 생각해 보았다.

 

  어젯밤, 황당한 일을 당했다. 하루의 모든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우리 집을 500m 남겨놓고 사거리 빨간 신호에 걸려 정차를 하고 있는데 브레이크가 쑥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파란신호가 들어와 액셀란트를 밟고 출발을 하려는데 이상한 소리가 났다. 펑크 난 자동차바퀴가 끌리는 느낌이었다. 곧바로 길가에 차를 멈추고 내려와 앞뒤바퀴를 살펴보니 아무이상이 없었다. 엔진소리도 평소와 다름없었다. 별일 아닌 것 같아 다시 출발을 시도해 봤으나 굴러갈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조금만 더 가면 우리 집인데 조바심이 났다. 지난해 타이어도 광폭으로 교환했고, 금년 3월 초 정기검사를 받아았는데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자동차가 멈추고 말았으니 어디가 고장인지 내 실력으로는 도저히 알 길도 없고, 이대로 길가에 방치하고 앉아있을 수도 없었다.

 

  보험회사에 전화를 걸어 지금 상황을 설명하고 기다린 지 거의 한 시간이 다 되어 견인차가 왔다. 집 가까운 정비공장까지 실려 가며 나는 어디가 고장일 것 같으냐고 물어보았다. 견인차기사는 미션이 나간 것 같다며 미션 값이 상당할 것이라 일러주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10여 년 동안 7만여 km를 타고 다니는 동안 소모품 외엔 한 번도 주요부품을 갈아본 적이 없었는데 큰돈을 들여야 한다니 주머니 사정부터 걱정이었다. 나는 가전제품을 사용하는데도 수명이 다할 때까지 중도에 교환이나 폐기처분 한 게 별로 없다. 나는 기계치이지만 내가 쓰는 전자제품은 거의 고장을 모르고 사용하는 편이다. 내 자동차도 큰 고장이 아니고 작은 부품만 교체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내게 있어 자동차는 내 수족과 같은 존재다. 당장 자동차가 없으면 나의 일상생활은 올 스톱되어 식물인간과 다름없다.

 

 아침을 뜨는 둥 마는 둥 9시를 기다려 정비공장을 찾았다. 어젯밤 메모를 해 놓았는데 거들떠보지도 않았나보다. 사무실에 접수를 하며 견인차기사의 말을 들려주니 사무원은 퉁명스럽게 오토미션은 대형정비공장으로 가야한다고 했다. 일이 점점 커진다는 불길한 예감이 몰려왔다. 사무실 밖에 있는 정비기사를 직접 만나 내 차의 고장을 설명했다. 사전검사를 하던 정비기사는 미션이 아니라 브레이크 라이닝이 닳아 생긴 현상이라고 했다. 앞뒤 라이닝과 다른 부품 몇 개를 교환하면 된다고 했다. 나는 명의를 만나 불치병을 가볍게 치료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 그렇지, 나는 아직 자동차가 필요하고 내가 할 일도 많은데 이대로 40여 년의 면허를 반납하고 집안에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나의 일상이 지금까지의 패턴으로 계속할 수 있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와 있는 것 같았다.  

 

 내 차가 공중부양되어 부품을 갈고 있는 동안 경차 하나가 들어왔다. 아는 젊은 집사였다. “여길 어찌 왔느냐?”고 물었다. 자동차 고치러 왔노라 하니 “아니, 권사님이 아직도 직접 운전을 하느냐?”며 의아해 했다. 운전은 젊은이들의 전유물인 양 신기해 했다.

 나는 내가 고령운전자라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40여 년간 서울에서부터 계속 운전을 해 왔고, 전주에 내려와서도 마찬가지로 대중교통은 한 번도 이용해 보지 않았다. 젊은이들 아무나 못하는 교회봉고차를 운전하여 교인들을 성지·역사순례와 사철 나들이를 수시로 해 왔던 나지만 지난해부터 우리 아이들의 만류로 봉고차운전은 가급적 피하고 있었는데 나를 완전 고령운전자로 취급하는 것이 왠지 무시당하는 것 같았다. 왜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로 고령운전자들은 “타인의 생명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자”로 몰아가고 있는지 심히 유감이다.

 

  우리나라 고령운전자 면허소지자는 전국적으로 지난해 3백만 명을 돌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10년 뒤에는 1천만 명을 훌쩍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고령운전자의 수가 늘면서 고령운전자가 일으키는 교통사고 비중도 늘고 있는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인지나 판단, 조작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사고를 막기 위한 방책으로 운전면허 갱신기간을 10년에서 5년으로 줄이더니 이제는 적성검사기간을 3년으로 하는 것 같다. 5년이나 3년으로 갱신기간을 축소하기에 앞서 고령운전 면허소지자들이 사전에 운전을 숙달되게 하고 있었는지 장롱면허로 소지만 하고 있다가 갱신을 하고 차를 구입해 미숙한 상태로 운전을 하다 사고를 내는지 구분되었으면 좋겠다. 10만원 상당의 교통비를 지원하거나 교통카드, 지역상품권을 제공하며 지자체 별로 고령자의 운전면허 반납을 유도하고 있다.

 

  교통사고의 원인은 환경적요인과 기계적(장치적)요인. 인적요인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현대사회의 교통사고는 양호한 도로 상태와 자동차기술의 발전으로 90%가 인적요인에 의해 발생한다고 한다. 젊은 운전자라고 다 숙달된 운전을 하는 것이 아니며 고령자라고 전부 인지능력이 제한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누구나 운전을 하다보면 실수를 하게 된다. 운전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시각기능은 20대 중반에서 50대에 이르면 급격히 저하된다고 한다. 고령운전자에게만 사고의 위험을 물어 면허를 제한한다면 그것은 타 면허와의 형평성에도 문제가 된다. 사실 운전면허만이 “타인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아니다. 의료인의 면허 또한 “타인의 생명과 연관”된 매우 중요한 면허제도이다. 그럼에도 왜 고령운전자의 면허에만 사고의 책임을 묻는가? 젊은 운전자의 교통사고는 젊으니까 실수로 용납되고, 고령운전자의 사고는 고령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다면, 남녀성별을 가르는 것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교통정책을 연구하는 이들은 노년의 삶을 살아보지 못한 세대들이다. 고령자일수록 이동권의 약자들이다. 약자의 권리를 침해하여 누군가 이익을 추구한다면 이것이 우리사회의 정의로운 사회인가 묻고 싶다. 보족의 원리를 이용 부족한 능력한계를 기계에 의해 노년의 삶을 풍요롭게 보낼 수 있다면 고령자 운전을 장려하며 불편함이 없는 정책을 도모해야 하지 않을까? 인간은 누구나 늙는다. 그리고 인간의 늙음은 신체적 정서적으로 그 변화를 불러온다. 이런 변화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존엄에 대한 차별로 이어진다면 결국 고령운전자의 운전면허 제한이 노화로 인한 인간의 존엄에 대한 또 다른 차별들을 만들어 내는 시작이 될 것이다, 사고를 줄이면서 ‘고령운전자’의 이동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소형무인운전 자동차’를 보급하는 방안이 나왔으면 좋겠다.

 

                                                               (2019.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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